2024년 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듯하다.
'멀리서 보면 행복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했다. 처음부터 비극은 아니었다. 정말 멀리서 보나 가까이 보나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돈이 없고, 사는 게 조금 고단해도 엄마를 모시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 왠지 모르게 따뜻해졌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사실 엄마가 영화를 정말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가끔 무슨 영화를 봤는지 잘 이해를 못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다른 집 아들들은 엄마랑 시간을 잘 안 보낸다면서 겉으로는 무뚝뚝함이 줄줄 흘르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아들을 둔 것을 벼슬처럼 생각하며 자랑하고 다니셨다. 쑥스러웠지만 엄마가 좋아하니 우리도 좋았고 그래서 더 많이 그런 시간을 가졌었다.
불행인지 아직까지 다행인지 엄마는 아직도 우리와 함께 어디든 다닌다. 이제는 극장이 아니고 주로 병원이 되었다. 멀리 있어도 병원 예약이 잡히면 최대한 서울에 가려고 그래서 더 애를 썼던 거 같다. 조금이라도 덜 외로우라고. 아직도 이렇게 두 아들이 옆에 있으니 자랑하라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간 것이 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것은 서글프다. 적어도 2024년도 중반까지 나름 포근했다.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와 편안하게 집에서 쉬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은 편해지곤 했다. 자기전에 홈카메라로 엄마의 모습을 보몀 혼자 울기도 많이했지만 지금은 그 순간이 그러워진다. 물론 엄마의 냉장고 시위가 가끔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대소변 문제로 아침마다 동생은 전쟁같은 출근을 했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엄마의 귀여움이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엄마가 두 발로 돌아다니셨기에 같이 마트도 다니고, 엄마가 잠시 실종되었지만 여행도 갔었다. 무엇보다 같이 밥을 먹고 식당을 다니는 그 짧은 시간들이 이토록 그리워질 줄 몰랐다.
어쩌면 엄마는 뇌출혈이 아니었어도 무엇인가 다른 합병증으로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에게 자유를 빼앗아간 것에 하늘이 원망스럽기는 하다. 조금만 더 따듯한 온기가 퍼지도록 우리를 놔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작은 바람조차 허락해주지 않아서 사실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 남들은 너무 당연한 듯 누리는 그 작은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왜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건지 묻고 싶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2024년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 시간 엄마에 대해 써온 글을 보면 여러 감정들이 올라온다. 그 감정들로 지칠 때면 독자분들의 응원과 위로가 우리를 다시 포근히 감싸주곤 했다. 다들 사정이 있기에 진심을 담아 우리 형제를 응원해 주고, 엄마를 걱정해 주셨다. 그 마음들을 돌아보니 참으로 감사하다.
사실 엄마 치매와 우리 형제의 병간호에 대해 방송 출연 제안이나 인터뷰 요청이 몇 번 있었다. 유명 방송사도 있었고, 다큐 형식의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다. 동생은 형이 원하면 하라고 말을 던졌지만 나는 행복하지 못한 엄마의 모습을 공개해야 할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방송 주제로 충분한 이슈와 사회의 문제 중 해결해야 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했으나, 우리 엄마가 이런 비극에 주인공이 되는 것이 싫었던 거 같다. 좋게 포장하고 차분히 글을 써서 그렇지 엄마의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쁜 손녀딸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자기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이 어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살아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고 싶지 않다. 삶이라는 게 어느정도 정상 범주에 속해야 삶이라는 것을 처절히 지켜봐왔기에 죽음과 비교하는 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 것이다.
사소한 것을 잃어보면 그 사소함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이었는지 비로써 알게 된다.
우리 형제는 그 사소함이 부러워 두 눈을 감고 귀를 막아둔다. 어디를 가나 그 부러움은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제는 아무리 아파도 두 발로 걷고 침대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환자분들을 보기만 해도 미친 듯이 부럽다. 발버둥 치며 살았던 인생이 이런 식으로 끝을 향해가는 것을 보면서 허탈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보통 살아남기 위해서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앞만 보고 질주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뭐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지도 모르고 옆에서 달리니까 같이 달렸다. 그러는 사이 소중한 것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많이 놓치기도 했다. 생각하면 참으로 미련했다. 뭐가 인생에서 중요한지 생각 할 틈도 없이 살았던 거 같다.
사실 어떤 아픔이 찾아오기 전에 보통은 잘 깨닫지 못한다. 만약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나는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더 많은 것을 바라고 갈망하느라 작은 행복을 그냥 스쳐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픈 엄마에게 받은 큰 선물 중 하나는 하루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자기 전에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저녁을 해주고 그냥 그렇게 집안이 어두워지고 다음 날 아침이 찾아오는 이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이게 행복이고 이게 축복이라는 것을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과 아픔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내려놓기 위해서 전역도 결심하고 새롭운 터전에서 2025년 새 출발을 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해를 돌아볼 때 아마 우리보다도 엄마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엄마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고통스럽다고 힘들다고 항상 말하고 있다. 하지만 2024년 엄마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말씀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해도 엄마는 그 온기로 우리에게 언제나 말을 건넨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열심히 살아가라고. 내 자랑이자 내 전부였던 우리 아들들 잘 살아줘서 엄마는 자랑스럽다고. 그러니까 하루하루 엄마 걱정하지 말고 더 행복해지라고.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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