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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이 사라졌으면 좋겠어.

다문화가정 자녀, 이주배경 청소년... 왜 구분 짓는가?

by 고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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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고 나름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딸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무리 집이 좋아지고 주변 환경이 좋아져도 예전의 그 편안함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말문 막히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생각해서 표현을 절제하는 내 작은 우주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기에 그 집은 떠나야만 했다. 물론 그 지역에 머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런 선택을 염두하지 않았다. 지방이 싫어서라기보다 그래도 조금 더 나은 인식이 존재하는 곳으로 더 늦기 전에 터전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린 딸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던 거 같다.


가만히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예민한 아빠의 시선에서는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특히 내 성향을 많이 타고난 아이라서 그런지 충분히 어떤 생각을 머리에 담고 사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추축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많이 예민한 딸아이에게 편안한 안식처게 되어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는 부쩍 많이 자랐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말하는 것에도 그렇고 친구들의 영향도 받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질문이나 내게 하는 말속에서 걱정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 둘이서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엄마가 없어서 인지 자기 속마음을 내게 털어놓았다.

이사를 오고 집에 놀러 온 친구 얼굴이 기억나냐고 내게 묻더니 그 친구가 이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는 그냥 귀여운데 그 친구는 정말 이쁘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 눈에는 내 딸이 최고로 이쁘지만 나는 딸아이 시선을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조곤조곤 물었다.


아이는 그 아이 눈이 좌우로 길게 늘어지고, 날카로운 것이 정말 이쁘다고 했다. 쌍꺼풀이 없어서 정말 한국사람 같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눈을 타고난 딸아이가 아주 고전적인 동양인의 눈을 선망하는지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속마음에는 자신에 대한 부정도 있음이 보였기에 나는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속마음을 말하는 일이 드물기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이것저것 더 물어봤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아이는 자신의 눈에 쌍꺼풀을 없애고 싶다고 말하며 외국인 같이 생긴 외모가 싫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자기를 외국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싫다고 말이다.


작년까지는 이런 대화가 없었는데 나는 걱정이 앞섰다.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말을 듣고 지내는 전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딸이 안쓰러웠다.

다문화학 박사과정 논문 심사를 받고 있는 아빠를 두었다고 이런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이론적인 지식으로 그냥 막 말하는 그런 것들이 실제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긍심을 가지라고, 다문화가정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다름을 인정하면 된다고..


이런 교과서적인 말들을 수천번 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딸이 느끼는 것과 받고 있는 시선은 부모인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한국사람도 모두 다르게 생겼고 충분히 지금 이 상태도 이쁘다고 딸을 위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아마도 딸아이의 감성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초에도 '다문화'가 뭐야? 왜 그렇게 불러?라고 저녁에 책을 읽는데 내게 물었다.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지만 충분한 답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미 자신도 '다문화'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단지 뭔가 답답했던 것을 내게 잠시 털어놓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남들과 아니 다수와 소수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비교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날이 올 것을 당연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일에 잘 대응하기 위해 다문화를 학문으로 배우고 공부를 했다. 어떤 사례가 있었고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연구를 하면서 고민하고 고민했다.


밖에서 부족한 다문화 인식으로 공격당하는 것을 내가 막아 줄 수 없으니 그 상처라도 잘 챙겨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냥 다른 거라고, 이런 가족도 있는 거라고 너무 쉽게 말하기에는 아이의 감수성이 너무 풍부하고 민감하기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일찍 철이 들어버린 딸아이는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아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결국은 학창 시절 동안 계속 이런 불편함과 싸워야 하는 당사자는 바로 본인이라는 것도 말이다.


바라만 봐도 너무 빛이 나고 아름다워서 빠져버릴 것 같은 사랑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소심해진다. 그리고 도와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속으로 울어본다. 물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꼭 다문화가정이라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와 비교하고 부러워하면서 느끼는 건강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순수한 아이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큰 상처를 받는다. 작은 돌맹이 하나를 그냥 던진거라고 하겠지만 숲속에서 작은 생명체는 그 작은 돌맹이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이런 보호막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그 학교라는 울타리가 과연 내 딸과 같이 배경이 조금 다른 아이들에게 안전할까?


이런 글을 읽으면 안 그런다고 모두 수용하고 차별없이 행동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무의식중에 어떤 말들이 일반 가정내에서 오고갈까?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떤 말을 아주 쉽게 입 밖으로 던질까?


물론 내 생각보다 딸은 더 잘 대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단지, 그냥 자식바라기인 부모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이 상처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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