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 : 꽃 [주영헌 시인의 새벽 시낭독 6시~6시 50분]
평일(월~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주영헌 시인'이 진행하는 ‘카카오 음mm’과 '클럽하우스'의 <시를 읽는 아침>을 방문해 보세요. 프로그램에 앞서 블로그를 통해 낭독할 시를 미리 소개하고, 같이 읽으실 수 있도록 미리 소개해 드립니다.같이 듣고 싶은 노래와 시가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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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
식탁 위에서 고요하다
추억은 힘이 없다
내 손에 꺾여
여기까지 와서 시드는
가장 아름다웠던 들꽃
먼 길을 왔다
추억으로 가는 길은 힘이 든다
들꽃 들판에 내가 걸어가고 있었지
길을 잃지 않으려고 길을 내고 있었지
들꽃 사이에서
들꽃 가득 핀 들판에서
목이 꺾인 들꽃이 길을 내고 있었지
불운한 들꽃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길을 나는 걸어갔지
키 큰 나무 한 그루
다른 들꽃 세상을 위해 길을 낸 들꽃을 추모하고 있었지
추억도 힘이 된다
뿌리 뽑히는 아픔도
아픔을 넘으면
아픔 아니게 된다
들꽃 한 송이
식탁에서 도인(道人)처럼 자기 길을 내고 있다
『가족박물관』(문학동네) 중에서
넝쿨이 나무를 덮어버렸습니다
이불을 덮어주려는 마음은 아닙니다 온 몸으로 나무의 몸통을 누르고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몸 위에서 환하게 흐드러지는 넝쿨 꽃,
조문하는 봄밤의 새하얀 조등(弔燈)
파견노동자의 생이
조금씩 말라비틀어져 갑니다.
『학산문학』 2021년 가을호 중에서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번 피는 꽃입니다
『연애시집』(마음산책) 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때리고
닥치는 대로 팔다리를 꺾는 바람을 피하느라
뼛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파는 추위를 견디느라
이토록 작아지고 뒤틀린 우리들의 몸통을
말하지 말자 아름답다고
메마른 돌밭에 뿌리박기 위하여
천길 벼랑에나마 매달려 살기 위하여
보아라 굽었지만 더욱 억세어진 이 팔다리를
햇빛을 향하여 꼿꼿이 들려진
이 짧지만 굵은 목덜미를
말하지 말자 눈물겹다고도
아픔과 눈물을 보랏빛 꽃으로 피울 줄 아는
눈비 속에서 얻은 우리들의 슬기를
서로 받고 준 상처를
안개에 섞어 몸에 두르기도 하는
악다구니 속에서 배운 우리들의 웃음을
우리들의 울음을
※ 난장이패랭이꽃은 백두산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늦여름에 줄기 끝에 엷은 보랏빛 꽃을 피운다.
『쓰러진 자의 꿈』(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저 사람은
왜 꽃을 보면서 꽃의 이후를 생각할까요
꽃은 관념이거나 체념이죠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독자적인
어떤 미지를
우린 꽃이라 하고 싶어요
땅속에 삼발이를 박고
알코올 램프의 노란 심지를 올려요
타오르는 불꽃이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신체입니다
저 사람은 그걸 기다렸어요
알코올이 다 증발할 때까지를
그때부터 보이는 마음이 진짜죠
흩어지거나 또 다른 영토를 가져요
저 사람은 램프를 들고 있는 사람
저는 노랗게 그득 차오르고요
『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시인동네) 중에서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三月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리.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오늘 들꽃 여관에 가 다시 그 방에 들고 싶다.
『아내의 문신』(문학의전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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