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화) 카카오 음(시를 읽는 아침)

오늘의 주제 : 꽃 2 [주영헌 시인의 새벽 시낭독 6시~6시 50분]

by 주영헌
평일(월~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주영헌 시인'이 진행하는 ‘카카오 음mm’과 '클럽하우스'의 <시를 읽는 아침>을 방문해 보세요. 프로그램에 앞서 블로그를 통해 낭독할 시를 미리 소개하고, 같이 읽으실 수 있도록 미리 소개해 드립니다.같이 듣고 싶은 노래와 시가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시는 저작권 문제로, 일주일 동안만 게시를 하고 비공개로 전환함을 알려드립니다.



【11월 30일의 주제 : '꽃(수선화, 수련)'과 관련된 시 2】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수선화에게』(비채) 중에서




수선화 / 이정록

- 어머니 학교 71



텃밭 둑이 자꾸 무너져야.

아버지가 백 년 묵은 탱자나무 둥치를

팔아치운 뒤로 흙탕눈물을 내뿜는 거지.

머위도 심고 호박덩굴도 늘여봤지만 허사야.

그래 골똘히 생각해보니까, 답은 수선화여.

해마다 멍석 테두리를 넓혀가는 수선화를

둥글게 떼어내서 탱자나무 섰던 데부터

늙은 감나무 밑동까지 꿰매 붙였지.

수선화가 피어서는 감나무 새잎을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감나무 이파리들이 간지러워 죽으려고 해.

그럼 좀 있다가 감꽃이 노랗게 피어서는

꽃진 수선화 위로 훨훨 흩뿌리는데 꼭 사랑을 주고받는 것 같아.

달빛 내릴 때 보면 삼삼하니 아버지 생각이 사무쳐야.

맥주 한잔에 내가 왜 이리 수선 떠나 모르겄다.

하여튼 무너진 데 수선은 수선화가 최고여.

탱자처럼 시고 떫은 인생 남겨준 것도 아버지니께

산소에 갈 때 몇 뿌리 옮겨놓든지.


『어머니 학교』 (열림원) 중에서




수선화에게 묻다 / 복효근



말라비틀어진 수선화 알뿌리를 다듬어

다시 묻고 나니

비 내리고 어김없이 촉을 틔운다

한 생의 매듭 뒤에도 또 시작은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잎사귀 몇 개로

저 계절을 건너겠다는 것인지

이 무모한 여행 다음에

기어이 다다를 그 어디 마련이나 있는지

귀 기울이면

알뿌리, 겹겹 상처가 서로를 끌어안는 소리

다시 실뿌리 내려 먼 강물을 끌어오는 소리

어머니 자궁 속에서 듣던 그 모음 같은 것 자음 같은 것

살아야 함에 이유를 찾는 것은 사치라는 듯

말없이 꽃몽오리는 맺히고

무에 그리 목마르게 그리운 것 있어

또 한 세상 도모하며

잎은 잎대로 꽃대궁은 또 꽃대궁대로 일어서는데

이제 피어날 수선화는 뿌리가 입은 상처의 총화라면

오늘 안간힘으로 일어서는 내 생이,

내생에 피울 꽃이

수선화처럼은 아름다워야 되지 않겠는가

꽃, 다음 생을 엿듣기 위한 귀는 아닐까


『목련꽃 브라자』(천년의시작) 중에서




수선화 / 이재훈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을 잘 무렵이면, 내 몸에 꽃씨 앉는 소리가 들린다. 간지러워, 암술과 수술이 살 부비는 소리가 사물거리며 온몸에 둥지를 틀고, 어머 꽃피네, 마른버짐처럼, 간지러운 꽃이 속옷새로 피어나네, 내 몸에 피는 꽃, 어머 내 몸에 핀 꽃, 나르키소스의 영혼이 노랗게 물든, 수선화가 핀다. 아름다운 내 몸, 노랑 꽃파랑이 쓰다듬으며 어깨에서 가슴을 지나 배꼽으로 핀 꽃과 입맞추고, 시커먼 거웃 사이에도 옹골지게 핀 꽃대 잡는다. 아아, 아 에코가 메아리치네, 아름다운 내 몸, 거울에 비추어 아아아 에코가 흐느끼네, 내 몸이 하분하분 물기에 젖네, 꽃들이 더펄거리며 시들어가네, 나르키소스여 내 몸에 오지 마소서 오성(五感)에 물든 몸 꽃피게 마소서
한밤중이 되면 내 몸에 수선화가 핀다 방 안의 모든 소리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문학동네) 중에서




약속 / 정일근



늦여름 장마비 속에서

흰 꽃을 밀어올리는

수련睡蓮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집과 집 속의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젖고 있는데

한사코 자신의 야윈 몸 위로

화사한 꽃을 피우려 애쓰는

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의 굵은 손바닥 후두둑 후두둑

세상의 등을 때려

큰 절집과 열세 채 작은 절집 품은

영축산 통도사도 단단한 결가부좌를 풀고

눅눅한 오수에 빠져드는데

산山 번지도 사라진 빈터

깨어진 돌확 속에서

단정한 앉음새로 앉아

가을이 오기 전에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찬 빗속에서도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예, 라고 대답하며 수런거리는

수련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시와시학사) 중에서




첫물 수련 / 문성해



수련이 언제 이리 피었나

흙탕물 논물 위에 첫 수련이 돋았구나

오늘 아침 세수도 못하고 짓무른 눈가 비비며 보는데

누가 지어주나 이름도 기다리지 않고

수련이 작년의 이름으로 내 곁에 왔네

첫 수련의 주둥이가

막막한 수면을 뚫고 나오는 그 힘으로

드넓은 고추밭에 첫 고추가 매달리고

아이 몸에 첫 두드러기가 돋고

마른하늘에선 첫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야

그다음엔

후득후득 일제히 돋아나면 되는 것

터져나오면 되는 것

그 힘으로

희부윰한 새벽을 찢으며

첫 기러기떼가 날아오르는 것이야


『입술을 건너간 이름』(창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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