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 : 꽃 3 [주영헌 시인의 새벽 시낭독 6시~6시 50분]
평일(월~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주영헌 시인'이 진행하는 ‘카카오 음mm’과 '클럽하우스'의 <시를 읽는 아침>을 방문해 보세요. 프로그램에 앞서 블로그를 통해 낭독할 시를 미리 소개하고, 같이 읽으실 수 있도록 미리 소개해 드립니다.같이 듣고 싶은 노래와 시가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시는 저작권 문제로, 일주일 동안만 게시를 하고 비공개로 전환함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나는 중심
코스모스는 주변
바람이 오고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코스모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중심이 흔들린다
욕조의 물이 빠지며 줄어들듯
중심은
나로부터 코스모스에게
서서히 넘어간다
나는 주변
코스모스는 중심
나는 코스모스를
코스모스는 나를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다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라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도시 아이들은 별 볼 일이 적어서
별 볼 일이 많은 아이들을 찾아서
유성(流星)들은 밤마다 시골로 모인다
아이들이 개울물에 다이빙하듯
별들도 다투어 시골로 다이빙한다
아무도 모른다. 밤 하늘에서 다이빙한 유성들이 날 새는 줄 모르고 놀다가 올라가지 못한 줄을, 그래서 아이들 목소리 자욱한 학교길도 코스모스꽃 자욱이 피는 줄을, 별눈 반짝이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교실 밖 꽃밭에서 까치발 돋우어 공부도 같이 하고, 철봉대 뒤켠에서 손뼉도 치는 줄을,
밤마다 유성이 모이는 시골도 학교길에
별 볼 일 많은 아이들은 모두가 코스모스꽃이다
그래서 학교길 가을볕은 한 촉수 더 밝다
아이들 목소리도 한 옥타브 더 높다.
『다보탑을 줍다』(창비) 중에서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기억 속에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적막』(창비) 중에서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
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
몇 송이로 펼치는 생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
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
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
여름을 익힐 대로 익혔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
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째 사르는
저 불꽃의 넋이 좋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
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
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 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렇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어제 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그 집의 주인여자는 측백나무처럼 일없이 늙어 가던 사내 등에
패물이며 논마지기며 울긋불긋한 딸의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짊어 보냈다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우둘투둘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코리아) 중에서
가로등 주위에 웬 씨앗들이 와글거린다.
우수수 떨어진 검은 씨앗들의 눈
붉게도 아닌 뜨겁게 달궈진 등꽃 밑
씨앗들이 날개를 접고 있어 가볍다.
땅으로 옮겨 심지도 못한 저 부러진 날개는 무엇이 되었을까.
날개 없는 것들의 동경이
바람을 만들었다는 이국의 서(書)에
와글와글 적혀 있던 검은 씨앗들이 생각난다.
그 씨앗 누군가의 눈에 따끔, 잡티라도 되었을 것이다.
수 만 마리의 저녁이 몰려들고 있는 환 한 가로등 밑
문장에서 빠진 모음 하나가
소리를 우르르 무너트리고 있는 것처럼
목이 부러져 버린 백열전구가
난감한 어둠을 불러 모으고 있는 저녁
저 능소화 눈을 멀게 할 향기만 빈 나무에 흘려보내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 향기가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눈물의 효과는 바람 한번 불었을 때의 시차보다도 짧게 고인다.
날 벌래 한 마리가 눈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고 있는 붉은 아침
저 쪽에서 불어온 것은 날개가 없는 바람이었다.
캄캄한 나무 밑
필라멘트가 다 끊어진 꽃들이 깨져 있다.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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