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수) 카카오 음(시를 읽는 아침)

오늘의 주제 : 꽃 3 [주영헌 시인의 새벽 시낭독 6시~6시 50분]

by 주영헌
평일(월~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주영헌 시인'이 진행하는 ‘카카오 음mm’과 '클럽하우스'의 <시를 읽는 아침>을 방문해 보세요. 프로그램에 앞서 블로그를 통해 낭독할 시를 미리 소개하고, 같이 읽으실 수 있도록 미리 소개해 드립니다.같이 듣고 싶은 노래와 시가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시는 저작권 문제로, 일주일 동안만 게시를 하고 비공개로 전환함을 알려드립니다.



【12월 1일의 주제 : '꽃(코스모스, 능소화)'과 관련된 시 3】



코스모스 1.jpeg 내 마음속에서 흔들리는 흔들리는 코스모스 (사진출처 unsplash.com)



흔들리다 / 문태준



나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나는 중심

코스모스는 주변

바람이 오고 코스모스가

흔들린다. 나는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다

코스모스가 흔들린다고 생각할 때

중심이 흔들린다

욕조의 물이 빠지며 줄어들듯

중심은

나로부터 코스모스에게

서서히 넘어간다

나는 주변

코스모스는 중심

나는 코스모스를

코스모스는 나를

흔들리며 바라보고 있다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중에서




코스모스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는다 / 이규리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라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코스모스 학교길 / 유안진



도시 아이들은 별 볼 일이 적어서

별 볼 일이 많은 아이들을 찾아서

유성(流星)들은 밤마다 시골로 모인다

아이들이 개울물에 다이빙하듯

별들도 다투어 시골로 다이빙한다


아무도 모른다. 밤 하늘에서 다이빙한 유성들이 날 새는 줄 모르고 놀다가 올라가지 못한 줄을, 그래서 아이들 목소리 자욱한 학교길도 코스모스꽃 자욱이 피는 줄을, 별눈 반짝이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교실 밖 꽃밭에서 까치발 돋우어 공부도 같이 하고, 철봉대 뒤켠에서 손뼉도 치는 줄을,


밤마다 유성이 모이는 시골도 학교길에

별 볼 일 많은 아이들은 모두가 코스모스꽃이다

그래서 학교길 가을볕은 한 촉수 더 밝다

아이들 목소리도 한 옥타브 더 높다.


『다보탑을 줍다』(창비) 중에서




당신을 향해 피는 꽃 / 박남준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기억 속에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적막』(창비) 중에서




저 능소화 / 김명인



주황 물든 꽃길이 봉오리째 하늘을 가리킨다

줄기로 담벼락을 치받아 오르면 거기,

몇 송이로 펼치는 생이 다다른 절벽이 있는지

더 뻗을 수 없어 허공 속으로

모가지 뚝뚝 듣도록 저 능소화

여름을 익힐 대로 익혔다

누가 화염으로 타오르는가, 능소화

나는 목숨을 한순간 몽우리째 사르는

저 불꽃의 넋이 좋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 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그게 암 덩어리라도 불볕 여름을 끌고

피나게 기어가 그렇게 스러질

너의 여름 위에 포개리라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지성사) 중에서




능소화 / 문성해



담장이건 죽은 나무건 가리지 않고 머리를 올리고야 만다

목 아래가 다 잘린 돼지 머리도 처음에는 저처럼 힘줄이 너덜거렸을 터

한 번도 아랫도리로 서 본 적 없는 꽃들이

죽은 측백나무에 덩그렇게 머리가 얹혀 웃고 있다

머나먼 남쪽 어느 유곽에서도

어제 밤 그 집의 반신불수 딸이 머리를 얹었다고 한다

그 집의 주인여자는 측백나무처럼 일없이 늙어 가던 사내 등에

패물이며 논마지기며 울긋불긋한 딸의 옷가지들을 바리바리 짊어 보냈다고 한다

어디 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우둘투둘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코리아) 중에서




와글거리는 시간 / 주영헌



가로등 주위에 웬 씨앗들이 와글거린다.

우수수 떨어진 검은 씨앗들의 눈

붉게도 아닌 뜨겁게 달궈진 등꽃 밑

씨앗들이 날개를 접고 있어 가볍다.

땅으로 옮겨 심지도 못한 저 부러진 날개는 무엇이 되었을까.

날개 없는 것들의 동경이

바람을 만들었다는 이국의 서(書)에

와글와글 적혀 있던 검은 씨앗들이 생각난다.

그 씨앗 누군가의 눈에 따끔, 잡티라도 되었을 것이다.

수 만 마리의 저녁이 몰려들고 있는 환 한 가로등 밑

문장에서 빠진 모음 하나가

소리를 우르르 무너트리고 있는 것처럼

목이 부러져 버린 백열전구가

난감한 어둠을 불러 모으고 있는 저녁

저 능소화 눈을 멀게 할 향기만 빈 나무에 흘려보내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 향기가

눈을 멀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눈물의 효과는 바람 한번 불었을 때의 시차보다도 짧게 고인다.

날 벌래 한 마리가 눈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고 있는 붉은 아침

저 쪽에서 불어온 것은 날개가 없는 바람이었다.

캄캄한 나무 밑

필라멘트가 다 끊어진 꽃들이 깨져 있다.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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