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제 : 꽃 4 [주영헌 시인의 새벽 시낭독 6시~6시 50분]
평일(월~금) 새벽 6시부터 6시 50분까지 '주영헌 시인'이 진행하는 ‘카카오 음mm’과 '클럽하우스'의 <시를 읽는 아침>을 방문해 보세요. 프로그램에 앞서 블로그를 통해 낭독할 시를 미리 소개하고, 같이 읽으실 수 있도록 미리 소개해 드립니다.같이 듣고 싶은 노래와 시가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시는 저작권 문제로, 일주일 동안만 게시를 하고 비공개로 전환함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중에서
지난 겨울 매설했다
초록 톱니를 두른
밟히고 밟혀 문들어진
문들레 민들레
잔디밭 가로지르는 발꿈치 뒤로
수백 개 해가 뜬다
째깍, 째깍,
조심해라! 밟으면 터진다, 노-란
발목을 날려버리는 대인 지뢰
하늘에도 피었다
흰 구름 폭발하는 곳 꽃,
절름거린다
목발 짚은 봄
『말뚝에 묶인 피아노』(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서초동을 걷다가
보도블록 속에 끼여 있는
키 작은 민들레를 본다
무작정 상경한 후 아직도 거리에서 서성이는
코 납작한 내 고향 친구
강남 한가운데
불빛 밝은 골목 어귀
밤새우는 벤처 기업들 속으로
겁도 없이 포장마차를 끌고 나와 참새를 굽는
순정 많은 그녀의
옷깃에 매달린 노란 하현달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흙을 쥐고 있는
오롯하고 뭉클한 손목을 본다
『오라, 거짓 사랑아』(민음사) 중에서
찢어진 비닐하우스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낳아놓고
어미는 오지 않았다
밤바람이 영혼 하나를 데려갔는지
한 마리는 이미 식어 있고
나머지 셋은
서로의 숨결 끌어안은 채
데워지지도 않은 햇살을
돌아가며 핥았다
비닐에 깔려 있던 꽃들이
서둘러 노란 가스 불을 켰다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걷는사람) 중에서
주인 내외가 나를
저수지 가 비닐하우스지기로 임명한 건 지난 가을이다
갇혀 지낸 지 이백육십구 일이 흘렀다
대체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한겨울 밤 추위는 따로 기록해둘 만한 시련이었다
목줄에 바투 묶인 탓에 운동을 할 수도 없었던 것도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럭저럭 봄을 맞이하자
하우스 안 닭장에 병아리 스무 마리가 추가 입양됐다
내 임무는 한층 뚜렷해졌는데, 목줄은 더 꼬이며 짧아졌다
주인 내외는
앞마당을 에워싼 철망 울타리에 강낭콩 덩굴을 올리고
하우스 출입문 위에는
공사장에서 주워 온 '안전제일'이란 플라스틱 팻말을 달았는데,
최근엔 철책 게이트 옆에다 '민들레하우스'라는 앙증스런 팻말까지 달았다
그리하여 뜻밖에 평화롭다는 민들레영토의 지킴이가 되었지만,
목줄에 묶인 신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름 오기 전, 장맛비가 얼마간 열기를 식혀주겠지만
본격적인 더위를 견딜 각오 역시 만만찮을 게다
내 유일한 전략이란 명상과 낮잠,
그나마 낮잠이 조금 더 편한 선택사항인 셈이다
민들레하우스 철책 안에는
상치며 쑥갓, 그리고 국화 화분 몇 개가 전부인데,
나는 목줄이 풀리더라도 닭장은 물론이고
푸성귀며 화분 따윈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것인데,
주인 내외는 그런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해서
오늘도 목줄이 단단히 매였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데
죄송하다고 합니다
꼭 입고 싶은데
지금이 아니면 못 입을 것 같은데
바람이 불고
딸랑, 당신 눈동자가 빛났습니다
미안해요,
모래쯤 배달해 드릴게요
나는 그녀에게
민들레꽃처럼 반짝이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사랑도 택배가 될까요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 사람) 중에서
괄시해선 안 되는 목숨들이라고
유월의 햇살이 말했다
토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추방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작고 여린 목숨일지라도
저항의 방식 하나쯤은 있는 법
여린 홀씨 하나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노란 꽃대 밀어 올리는 저 견고한 힘
이제 여기가 내 집이라고 명토 박듯
그렇게 섬의 생명으로 거듭 환생한
노란 꽃 무더기들이
한라산 들판에 피어 흔들리고 있다
제 근본이었던 땅을 떠나고 싶어 떠났겠냐고
바다 건너 이 섬까지 흘러오고 싶었겠냐고
살아보겠다고 씩씩하게 살아보겠다고
연삼로 꼼장어구이 집에서 서빙하던
베트남 여인 꿍웬
그는 오늘도 노랗게 노랗게 웃고 있을까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삶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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