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웹소설/습작
지은은 작은 섬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이 바뀌었다. 단 한마디 때문에.
***
“지은아, 부탁해.”
“싫어. 조용히 살고 싶어.”
“나, 이러다 회사 잘릴 수도 있어. 부탁이니까 친구 목숨 살린다 생각하고 한 번만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아무리 그래도….”
학창 시절 제일 친했던 친구 선이 서울에서 연예인 매니저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랑스러워했었다.
TV를 통해 친구를 본 순간 어찌나 반갑고 기분이 좋던지 참 흐뭇했었다.
“예뻐서 연예인 할 줄 알았는데, 매니저 하고 있었구나.”
선이는 초등학교 동창 중 제일 예뻤다. 서울 가서 연예인이 되어서 돌아온다 하더니 매니저가 되어서 돌아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부탁이야.”
선이가 부탁하는 것은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것이었다.
원래 출연하기로 한 연예인이 갑자기 올 수 없게 되어 버렸단다.
“그럼 다른 연예인 불러.”
“야, 배편도 없고, 우린 당장 필요해. 우리도 풍량이 심해서 하루 늦게 들어왔는데, 어디서 구해. 부탁한다. 응?”
“그 배우는 왜 안 한데?”
“그게 아니고 아프데. 많이 아프데. 중요한 배역은 아니지만 꼭 필요해.”
“그러면 다른 사람 알아봐.”
“네가 데려와 봐. 그럼 내가 설득할게,”
“어?”
말하고 나니 자신이 제일 어렸다. 여긴 섬이다. 거의 대부분 도시로 나가 살고, 집에 사는 사람들은 노인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탁해. 출연료도 나와.”
“지금 출연료가 중요하니?”
“네가 버는 것보다 많을 거다.”
“여기서 버는 것보다야 당연히 많겠지.”
섬에서 가게를 해봐야 하루 5천 원도 못 벌었다. 아예 못 벌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무료하게 있는 것보다 나아서 가게를 차린 것이었다.
그녀의 본래의 직업은 시인이었다.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혼자 섬에서 살기엔 충분했다. 선이는 모르지만.
“알았어. 생각해 볼게.”
“고맙다.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시간은 빨리.”
“뭐야? 그게.”
“급하니까 그렇지.”
“저녁까지 답 줄게. 대본 줘.”
“어?”
이번엔 선이가 당황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출연하지.”
“대본? 없어. 여유분이 없네.”
“그럼 나는 뭘 믿고 출연하냐?”
“별 것 없어. 넌 그냥 계속 가게 운영하면서 쪽 대본이라고 있거든. 그거 내가 만들어 줄게. 너 프린트 있지? 아까 보니까 있던데.”
“그건 언제 봤데?”
“단칸방에 떡 하니 창가에 있는데, 어떻게 모르냐?”
“그렇지. 일단 알았어. 그럼 무슨 내용인지만 알려줘.”
“중년의 남자가 인생 실패하고 섬에 들어와 휴식을 취해.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 여자를 통해서 치유를 하지. 그리고 다시 일어나.”
“그 여자는 누구야? 다른 여자 배우 안 보이던데.”
“그게 너야.”
“나?”
“그럼 단역 아니잖아.”
“잠깐 나와. 여기서 씬은 영화에 일부일 뿐이야.”
“영화에서 얼마나 나오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것은 10분에서 15분. 여기서 촬영은 네 하는 것에 따라 다르지. 가능하면 다 찍고 간다고 하셨는데… 사정에 따라 추가분 생길 수도 있어.”
“대본, 진짜 없어?”
“어, 지금은 없어. 감독님한테 물어볼게.”
지은은 선이와 대화를 마치고, 가끔 시구절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가는 장소로 이동했다.
‘이 나이에 영화배우라….’
인생은 참 재밌는 것 같다. 지은은 웃었다. 사실 무료하던 차였다.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볼까 생각하던 참에 선의의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재미는 있겠지. 이미 고민은 끝나 있었다.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나이에 부끄러울 게 뭐 있을까?
이 덕에 섬도 알려지면 관광객도 와서 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줍지 않다은 생각도 했다.
해가 지고, 다시 집이며 가게인 구멍가게로 와보니 이미 선이가 와 있었다.
“야, 천 원.”
“친구사이에 아이스크림 값을 꼭 받아야겠니?”
“친구사이수록 돈거래는 확실하게.”
“치. 더럽고 치사해서 안 준다.”
“뭐?”
둘은 그렇게 한참 웃다 나란히 앉아 노을을 봤다.
“어찌 생각은 어떻게 됐어?”
“할게.”
“고맙다.”
“이상한 씬 있거나 하진 않지?”
“어? 어.”
“진짜지?”
"어."”
“정말?”
“어.”
선의의 확답을 믿고, 다음 날부터 촬영이 시작되었다. 남자 배우는 오현우.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지만, 나름 알려진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오현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지은보다 2,3살을 어려 보였다. 지은은 TV를 안 본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갔다. 섬에 들어온 스물다섯 이후 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현우는 큰 키에 비해 마른 몸을 했다. 손을 컸고, 눈 주위에 주름이 매력적이었지만, 그래봐야 지은보다 동생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김지은입니다. 이선 매니저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그렇군요. 대본은 보셨어요?”
“아직. 대본이 없다고.”
“아, 그러면 잠시만요. 제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던 현우가 10분쯤 지나 하늘색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앞머리로 살짝 가려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시겠지만, 괄호가 쳐진 부분은 지시사항이고, 그 옆에 있는 게 대사 부분입니다. 그 외 감독이 원하는 것은 별도로 메모하시면 됩니다. 앞에 이름 써두시면 혹 다른데 두셔도 바로 다른 분들이 챙겨 주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영화배우의 대한 선입견은 없지만, 그래도 신입 배우한테 이리 친절한 배우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처음이라고 하시던데….”
“학창 시절 연극은 몇 번 해봤지만,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이야기이라 실수 많이 할지도 몰라요.”
“괜찮습니다. 편하게 하세요.”
“여기서 촬영은 오현우 씨 혼자 밖에 없어요?”
“독립영화에 저예산 영화라 저 밖에 없습니다. 거의 저 혼자 촬영이고 다른 분들은 카메오 출연정도 일거예요.”
“아, 몰랐네요.”
“그런가요?”
그때 감독이 현우를 불렀다. 현우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감독이 지은 앞으로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영화감독 윤정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두 분 촬영이 전부이고, 카메라는 장식정도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큐처럼 찍을 거라 평소처럼 행동하셔도 되고요.”
“네.”
“저는 가능하면 컷 안 할 테니 작정입니다.”
정호는 깐깐하게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털털해 보였다. 서른 살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이번이 두 번째 영화라고 했다.
“대본 오늘 처음 받아보신다고 하셨으니, 오늘은 합만 맞춰볼까요?”
“합이요?”
“아, 서로 대사 읽어보자는 말이었어요.
“어디서 해요?”
“어디서 할까요?”
충분히 도시에서 와서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 임에도 경계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이가 데리고 온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았다.
“음, 조용한 곳에서 해야겠죠?”
“아무래도?”
망설임 없이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은 장소로 그를 데려갔다. 이유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러고 싶었다.
“제가 자주 가는 곳 있는데 거기 가서 하실래요? 아님 여기 근처에서?”
“오늘은 촬영 없으니, 편하신 곳에서 해요.”
“촬영 날짜 늦어져도 괜찮아요?”
“아, 저는 다른 스케줄 없고, 감독도 마찬가지이고, 카메오 출연하시는 분들 출연은 미정입니다. 그때그때 부탁하자고 하셔서….”
그를 데리고 비밀의의 장소로 향했다. 조용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배려해 오지 않는 곳. 어르신들은 오르기 힘든 가장 높은 곳이기도 했다.
“여기 좋네요.”
“그렇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예요. 예전에 계신 분도 여길 좋아했었나 봐요.”
그녀가 섬에 오기 전에 딱 그녀 또래 남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딱 10년을 섬에 머물다 떠났는데, 그 사람도 여길 좋아해 돌 의자와 책상을 만들었다고 어르신들이 말해주셨다.
“그럼 시작할까요?”
“네.”
“이 대본은 여기 씬만 있으니 바로 읽으시면 됩니다. 순희가 지은 씨예요.”
“네. 현우 씨는 본명으로 나와요?”
“네.”
그렇게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제 연기에 코칭도 해주었다. 이럴 때 이런 톤으로 행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재밌네요.”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새로운 것을 하니 즐거워요.”
“지은 씨가 즐거우니 내일 촬영이 기대됩니다.”
그와의 읽어본 것은 양이 상당했다. 그래서 내일 찍을 양만 서로 읽어보고 헤어졌다.
“어땠어?”
집에 돌아오니 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 오늘 서울 간다며?”
“안 와도 된데.”
“잘렸어?”
“아니. 그냥 휴가.”
“네 담당자는?”
“아, 그 사람이 그만뒀지. 그래서 졸지에 나는 휴가 받았다.”
“내 역할 맡은 사람?”
“아, 그 사람은 다른 분 담당이고, 나는 지금 휴가. 사실 쉬러 들어왔다가 윤 감독 만나서 여자 배우가 갑자기 못 온다고 해서 좀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그래서 날 찾아왔구나.”
“응.”
“내가 여기 있는 것 어찌 알고?”
“몰랐어. 할머니한테 여기 젊은 여자는 없냐고 물었더니 구멍가게 가보라고 하셔서 왔는데, 네가 있더라고. 첫눈에 알아봤지.”
“다 우연이라고?”
“그래. 다 우연.”
“그걸 믿으라고?”
“믿든 말든. 나 여기서 자도 돼?”
“휴가 받아 왔다며? 잘 곳 없어?”
“있어! 짐도 거기 풀었어. 그런데 너 있는데, 굳이 내가 다른 데서 잘 필요 있니?”
“방 없어. 보다시피 방 하나.”
“어쩔 수 없네. 나간다.”
선은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밖에 나갔다. 선이 나간 후, 오늘 현우와 읽은 대본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밤새도록 읽고 또 읽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다음날. 드디어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현우가 섬에 첫 발을 딛는 장면부터 찍었다. 그는 태연하게 영화 속의 배우 현우가 되어 움직였다. 카메라는 그를 가까이에서 찍었고, 멀리서도 찍으며 몇 번씩 같은 장면을 찍어갔다.
“컷.”
몇 시간씩 현우의 씬은 오후쯤에 끝이 났다. 대본 속의 순희와 만나는 씬은 밤늦은 시간, 현우가 소화제를 얻기 위해 구멍가게를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현우는 정말 소화가 안 된다는 표정을 능청스럽게 표현했고, 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저절로 지문과 같은 행동으로 약을 챙겨주게 되었다.
“생각이상으로 잘하시네요.”
“아니에요. 현우 씨가 연기를 잘하시니 저는 자연스럽게 하면 되더라고요.”
“그게 어려운 겁니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
“그런가요?”
작성일 2023년 어느 날(공유 2024년 08월 06일)
웹소설을 쓸 때 구성한 작품임으로 꽤 오래된 글이다. 드라마 촬영에 대해서 잘 몰라서 쓰다고 그만뒀다. 자료 조사만으로 한계를 느낀 작품이기도 했다. 이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의 웹소설은 일반 소설에 가깝다. 잔잔 물이 주 키워드이기도 하다. 나의 흔적에 습작을 올리는 이유는 이미 블로그를 통해 이미 공유를 한 글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웹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묵혀둘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이니까 누군가 이 습작들을 재밌게 읽어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 공모전에 참가했다. 2024년 12월 2일 공모전에 당선되어 등단대상합격자 명단에 올라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기뻤다. 그러나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알지 모르지만, 등단을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잘 고르고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게 신호탄이 되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등단을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종에 올랐으나 탈락되었다는 메일보다 더 크게 나를 흔들었다. 그래서 공동집필된 글이 더 이상 없다. 다시 투고는 하고 있지만, 비워두고 싶지 않은 공간을 채우려 한다.
어차피 이 매거진은 나의 흔적을 남기는 공간이니까.
*모든 글의 저작권은 작가(아루하)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