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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루시

by 그래

꽤 오랫동안 글을 쓰면서 날 위한 시를 써보긴 처음이다. 내 생일이라고 특별한 날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 무엇보다 올해 생일은 잊고 있었다. 희한하게 네이버 알림도 오지 않은 생일이라 솔직히 벙벙하기도 하다.


나의 생일은 음력이다. 매년 바뀌는 생일로 남편도 간혹 헷갈려한다. 유일하게 기억해 주는 나의 아이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올해 생일은 사람의 알림을 받았다. 중학교 때 만난 삼십 년도 더 된 나의 친구들은 나의 생일이 되면 꼭 멀리 사는 친구에게 오곤 한다. 올해는 보지 못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둘 다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추운 날씨에 무리하지 말라며 미뤄두고, 뜻밖에 낯선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딸이 다니는 직장 선배들의 축하, 딸의 친구에게 받은 생일맞이 꽃선물, 꽃선물은 솔직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예뻤다. 무려 20일이나 빠른 부모님의 생일 선물까지 올해는 나름의 특별함을 가지고 말았다.


남편과 수학여행을 가버린 아들을 뺀 딸과 셋이서 떠난 여행은 뜻밖에 낭만을 얻고 왔다. 어묵국물을 떠먹던 빨간 바가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보았다. 앞접지로 나온 다른 쓰임새의 바가지와 딸이 찍은 감성까지.


딸이 찍어준 사진/저 빨간 바가지에 주목하길

기술자 딸은 감성 사진 남겨두고,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늙은 부모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지도 않을 건데, 시종일관 웃어주는 딸이 예쁘기만 하다. 밤늦게 합류한 딸의 친구! 정말 예쁘다며 자랑하는 딸에게 '너도 예쁘다' 말해주니 믿지 않는다. 20살의 예쁨을 모르는 나이이긴 하다.


생일맞이 남쪽나라 여행! 부산행은 추웠다. 내려가는 동안 모이는 먹구름에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도착과 동시에 내리는 비는 해운대 바닷바람과 맞물러 추웠다. 내려올 때 입으러 꺼내둔 모자 달린 기모 치마가 아쉬웠다. 왜 굳이 조금 더 얇은 것으로 바꿔 입고 나왔는지 내가 밉기만 했다.


다행히 숙소는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독채에 들어가자마자 겨울에 왔으면 추웠겠다고 투덜거렸지만, 내부는 예쁘다는 말에 동의해 주었다. 아쉽게도 추운 날씨 속에 그 집은 그가 말한 대로 추웠다. 그러나 다음날 화창하고 따뜻했다. 전날 너무 추위에 떨어서 그런지 화창한 날씨에도 더 있고 싶지 않아 집으로 왔다. 아주 아주 짧은 여행이 되었다. 짧은 일정과 남은 사진 두 장, 해운대 바닷가에 낀 짙은 해무의 모습, 20살 두 아가씨의 조잘거림 이번 여행의 남은 거였다.


오늘, 아니 어제의 생일잔치는 엉망이었다. 녹은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올린 초가 쓰러지려는 바람에 노래도 다 부르지 못하고 급하게 불을 껐다. 녹은 아이스크림의 의외에 맛에 놀라고, 순식간에 치워졌다. 미역국을 끓여주려고 했다는 남편은 물에 빠진 육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담치(홍합)를 찾아 마트를 헤맸다고 한다. 결국 찾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나는 '다행이네'라고 말했다. 미역국을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남편의 미역국! 마음만으로 충분이 전달되었으니 되었다.


매년 내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들. 남편, 아이들, 친구와 부모님 올해도 변함없었고, 변함없는 사랑 앞에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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