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하나를 알면 하나만 안다. 하나라도 아는 게 어디냐 싶을 순 있지만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사람을 만나보니 나의 부족함이 보였다. 더군다나 그 하나를 알기까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대단한 지 생색내는 편이다. 정말 끝내주게도 인정을 바라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적당한 생색은 귀엽지만 생색이 지나치면 멋이 없고 찌질하다. 요새 내 글이 그렇다. 나 힘들었어 징징징. 알아줘 징징징.
그럴싸한 깨달음으로 마무리했지만 알아주기를 바라는 글은 거부감이 들고 찝찝하다. 공감하고 위로받고 싶어 읽은 글에 덕지덕지 감정이 묻어 있고 도리어 위로를 해줘야 할 것만 같다면 부담스럽다.
좋은 글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디까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절제해야 할지 감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써야 늘기에 부족하지만 오늘도 깨작깨작 미적미적 글을 쓴다.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행복한 순간은 붙잡아 사진처럼 남기고, 부정적인 감정은 희석시켜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꽂히고 매몰되는 편이라 힘든 일이 생기면 메모가 폭발한다.
글을 쓰려면 그때의 기억을 반복재생할 수밖에 없다. 계속 돌려보며 즐거웠던 추억에 웃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고 이것을 그대로 가져가 쓰디쓴 경험에 적용했다. 잊고 싶은 기억마저 사진처럼 남았고 심지어 뼈에 새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경험이 아프기만 하지 않고 깨달음도 주지만 요즘 느끼는 건 삽으로 땅을 파고 파고 또 파서 나온 100원짜리 동전에 환히 웃는 사람 같다.
헛똑똑이가 되지 않으려면 100원을 가지고 룰루랄라 할 게 아니라 파놓은 구덩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씨앗을 심고 나무를 키워야겠다. 꼭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용하지 않아도 필요 없는 구덩이는 과감히 메우는 것만으로 활용이 된다.
삽질하며 얻은 깨달음을 글의 소재로 쓸 생각만 했고, 그 생각을 해낸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글을 게시하고 나면 뭐라도 된 듯 의기양양한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그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는 행동할 차례다. 흰 화면이 아닌 현실로 돌아와 두 발로 흙을 밟고 땀을 흘리자. 덮어둘 건 덮어두고 일단 싹을 틔우는데 집중할 것이다.
싹이 트고 줄기가 튼튼해질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햇빛과 물을 주며 정성을 쏟아야겠다. 어떤 열매를 맺을지 또 거기서 나온 열매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손에 단단히 쥐어지는 열매의 달콤함을 만끽하고 진짜 배를 채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