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소요유(逍遙遊, 빛을 찾아다니는 산책자)

내편(內篇) ------------> 빛(Lighting)

by 노용헌

“우리들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어쩌면 어린애들 놀이 같아 슬픈 동화 속에 구름타고 멀리 날으는 작은 요정들의 슬픈 이야기처럼. 그러나 우리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꿈결처럼,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이문세 노래, 깊은 밤을 날아서 노래中에서-


프랑스어의 플라뇌르(Flâneur)는 배회자, 산책자(散策者), 활보자 또는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란 뜻이다.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는 아마도 산책자의 의미일 것이고, 사진가의 속성은 빛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든, 자연을 찾아가든, 좋은 빛 조건,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 다니는 사람이다. 아름다움과 빛에서 노니는 사람이 바로 사진가이다.


탕(湯)임금이 극(棘)에게 물었을 때에 이런 대답을 하였다. 북쪽 끝 차가운 바다(冥海)에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물고기, 곤(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크기가 수천 리에 이른다고 전했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날 이 거대한 물고기는 거대한 새 붕(鵬)으로 변신(氣化)한 것이다. 거대한 새로 변신한 물고기 이야기로 장자는 시작한다. 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장자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서,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이 더 큰 세계를 바라보라고 권한다. 우물안의 개구리의 시각이 아니라 대붕(大鵬)의 시각이고 싶다. 장자의 눈으로 사진을 본다. 장자의 눈은 고정된 관점의 시각이 아니라, 자유롭게 바라보라고 권유한다. 사물의 눈높이에서, 피사체의 입장에서 헤아린 사진, 그런 사진을 찍으라고 말이다.


대붕의 비상과 작은 새의 비웃음

대붕이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할 때, 그는 먼저 바다를 치며 삼천 리를 올라간 뒤,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 상공까지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남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이때 작은 새들이 이 광경을 보며 비웃는다. “우리는 있는 힘껏 날아올라도 겨우 느릅나무 높이까지 오르고, 때로는 그마저도 못 올라가 땅에 떨어지는데, 저 새는 도대체 어디를 가려고 그렇게 높이 나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장자는 여기서 인식의 상대성을 지적한다. 관점은 상대적이다. 미시적 관점이든, 거시적 관점이든,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시각은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진을 좀더 남다른 시각으로 찍고자 한다. 그것이 로우앵글이든, 하이앵글이든, 각자가 가지는 관점을 드러낸다. 물고기의 눈과 새의 눈은 다를지 모르겠다. 좌우를 바라보는 눈의 위치는 사물을 판단하는 데서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광어(넙치)와 도다리는 눈이 위쪽으로 향해 있다. 잠자리나 곤충류는 겹눈과 홑눈으로 되어 있다. 사진기는 렌즈가 눈에 해당한다. 사진가는 렌즈 하나로 보는 외눈박이의 시선이다. 사진가의 눈은 때로는 마이크로렌즈로, 때로는 망원렌즈로, 때로는 광곽렌즈로 자유자재로 본다. 붕(鵬)의 높은 하늘 위에서 보듯, 곤(鯤)이 물속 수중에서 보듯, 더 큰 세계를 보기위해서이다.


혜시와 장자의 박 이야기

장자의 벗이자 논적이었던 혜시(惠施)가 어느 날 장자를 찾아왔다. 혜시는 위(魏)나라 왕에게서 큰 박씨를 받아 심었는데, 그 박이 너무 크게 자라 다섯 섬이나 들어가는 거대한 박이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커서 물을 담으면 무거워 들 수가 없고,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려 해도 너무 넓적해서 쓸모가 없어, 결국 깨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장자는 혜시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참으로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구려. 송(宋)나라에 손이 트지 않는 약을 만드는 집안이 있었는데, 대대로 솜을 표백하는 일을 했다. 어떤 나그네가 이 약 제조법을 백 금에 사겠다고 하자, 가족들이 모여 의논하길 우리가 대대로 솜 빠는 일을 해도 겨우 몇 금밖에 못 버는데 하루아침에 백금을 벌 수 있으니 팔자고 했다. 나그네는 그 약을 가지고 오(吳)나라 왕을 찾아가 월(越)나라와의 겨울 수전에서 병사들의 손이 트지 않게 하여 대승을 거두었고, 왕은 그에게 땅을 떼어 봉토(封土)로 주었다.”

장자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혜시에게 ‘쓰임에 대한 이야기’를 빗대어 말하고 있다.

“자기가 이미 설정한 ‘쓸모’라는 관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서 ‘쓸모’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많은 카메라들을 가지고 있다. 디카에서부터 필카까지, 그리고 구닥다리 로모(LOMO) 카메라까지, 조그만 고프로(GoPro) 카메라도 그 쓰임이 다르다. 큰 카메라가 됐건, 작은 카메라가 됐건, 그것은 나름대로의 쓸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장자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 쓸모가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장자는 나아가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음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人皆知有用之用, 而莫知無用之用)고 말한다. 목수가 나무를 베지 않고 쉬고 있길래, 장자는 나무를 베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목수는 “이 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소,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을 만들면 곧 썩으며, 기구를 만들면 곧 부서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무는 쓸모없음 때문에 천수를 누리게 되었구나.” 그 쓸모를 정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가치란 그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남들과 다른 것이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큰 의미와 가치를 줄 수 있다. 버려진 것들은 대개 가치가 없다고, 쓸모가 없다고 버려진다. 그러나 버려진 것들에는 그 나름대로의 기억들이 담겨 있다. 오래된 물건들, 버려진 물건들에서 가치를 찾는 작업을 하는 자가 바로, 사진가이다. 사진가는 사진에 오래된 기억들을 담아낸다. 잊혀졌던 기억들, 사라질 기억들을 애써 사진으로 남긴다.


절대 자유를 향한 길

장자는 열자(列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지만, 장자는 그조차도 바람이라는 외부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상태, 즉 무대(無待)의 경지이다. 최고의 경지는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공적을 내세우지 않으며,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것들에 얽매여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우리는 외부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성,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되묻고 있다. 열자는 바람이 부는 것에 순조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마음 졸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의 참 모습을 타고 날씨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무궁함에 노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절대 자유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 자유로운 삶에 어슬렁거리며 노니는 사람이 진정한 소요유(逍遙遊)의 실천가이자, 그런 깨달음을 얻은, 빛을 찾아다니는 산책자로서의 사진가이다.


“아지랑이나 먼지는 생물의 숨결에도 날린다. 하늘이 파란 것은 그것이 본래의 빛일까? 그것이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일까?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일 것이다. 또한 물의 깊이가 깊지 않다면 큰 배를 띄울 만한 힘이 없을 것이다. 한 잔의 물을 웅덩이에 부어 놓으면 곧 지푸라기가 그곳에 배가 되어 뜨지만, 잔을 놓으면 땅에 붙어 버릴 것이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쌓임이 두껍지 않다면 거기에 큰 날개를 띄울 힘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만 리나 올라가면 바람이 그만큼 아래에 있게 되어 그렇게 된 다음에야 이제 바람을 탈 수 있게 된다. 푸른 하늘을 등짐으로써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된 다음에야 이제 남쪽으로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며, 아지랑이나 먼지에서도 숨결을 느끼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극치, 쓸데가 없다고 하여 마음 졸이지 않고, 괴로움이 없는, 그런 자유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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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RnlI_XHcUY?si=LLqODfBHfrHQl5H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