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추수(秋水, 상대적 프레임)

외편(外篇) ------------> 프레이밍(Framing)

by 노용헌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 마음 한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 마음 조그만 곰인형이 웃네 밤늦은 가게불이 웃네 끌러버린 가방 속처럼 너절한 옛일을 난 못잊어 하네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 마음”

-김창완, 그래 걷자 中에서-


추수(秋水)편에서는 첫째, 자신의 관점은 절대적이지 않다, 둘째, 더 큰 관점에서 세상을 보라, 셋째, 쓸모없어 보이는 것의 가치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오히려 정보의 그물망, SNS의 현대판 우물안에 갇혀,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것은 AI 알고리즘에서 더욱 깊게 빠져드는 우물 속으로 갇힌다. 프레임은 더욱 공고하게 갇혀 있는데, 가을물(秋水)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바다거북처럼, 더 넓은 세계를 보는,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가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가 편견과 확증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절대적 진리가 아닌 상대적 프레임에서 세상을 보아야 할 것이다.


1.황하와 북해

가을장마에 모든 개천물이 불어나 황하(黃河)로 모여들었다. 황하의 신 하백(河伯)이 강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마침내 북해(北海)에 이르렀다. 하백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 제가 참으로 세상물정을 몰랐군요. 만약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도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비웃을 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북해의 신 약(若)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와는 바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고, 한여름의 매미는 겨울의 얼음과 눈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식견이 좁은 선비와는 도를 논할 수 없다. 그대가 지금 바다를 보고 자신이 초라한지를 알았으니 이제야 비로소 그대와 도를 논할 수 있겠다.”


2.천지와 터럭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천지는 크고, 터럭은 작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만물을 헤아린다면 그 수량은 끝이 없다. 시간을 잰다면 이 또한 길이가 없다. 우주는 시작이 없고 끝도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위대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먼 것을 멀게 여기지 않고 가까운 것을 가깝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큰 것을 많다고 여기지 않고 작은 것을 적다고 여기지 않는다. 천지는 크지 않고 터럭 또한 작지 않다.” 크고 작음의 상대성은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먼지(티끌)처럼 보일 것이다. 수천억 개 은하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3.유한과 무한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지극히 작은 것은 형체가 없고, 지극히 큰 것은 둘레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그럴 수 없다. 지극히 크고, 지극히 작다고 하는 것 모두 형체가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형체가 없는 것을 어떻게 수량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말로써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수량으로 잴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두고서 크다 혹은 작다, 정밀하다 혹은 조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장자는 모든 크기와 시간이 절대적 기준없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사물의 크기는 끝이 없고, 시간은 멈춤이 없으며, 나눔에는 일정함이 없고, 시작과 끝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작은 것을 적다하지 않고, 큰 것을 크다(많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체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고, 작은 부분들은 무한한 반복에 의해 전체를 이룬다.


4.귀하고 천함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만물에 귀함과 천함의 구별이 있습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도의 세계에서는 만물에 귀함과 천함의 구별이 없다. 만물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스스로는 귀하게 여기면서도 서로는 천하게 여긴다. 한편 세속의 입장에서 보면, 귀하고 천한 것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어서 결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므로, 절대적인 시비(是非)나 귀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판단이 독선적이지 않은지, 장자는 우리에게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있다.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는 1940년대에 버려진 물건들과 낙서, 칠이 벗겨진 낡은 벽, 벽에 부착된 포스터의 흔적 등의 표면을 클로즈업한 사진들을 찍었다. 시스킨드의 작업을 보면서, 그의 작업은 귀함과 천함을 떠나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고, 그 속에 담겨진 시간의 흔적들은 다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5.경계없이 순환하는 도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만물에 귀함과 천함이 없다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도의 관점에서 보면 귀함과 천함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판단과 고집을 버리고, 다만 자연의 섭리에 따르면 된다. 이렇듯 귀천, 대소의 경계가 없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는 도의 모습을 사시(謝施), 즉 자연의 대사전이(代謝轉移)라고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의 질문에 장자는 삶과 죽음을 관조하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고 말한다. 자연의 운행을 믿고 자신의 본성을 받아들이며, 슬픔과 기쁨, 삶과 죽음에서 초월할 수 있다고 한다. 우주의 거대한 순환 속에 한 개인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분수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또 도란 넓은 것임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다고 해서 기뻐하지 않고, 죽는다고 해서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일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6.물과 불을 두려워하지 않다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도를 귀하게 여깁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신중하게 행동하며 대처하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산에 큰 불이 나서 쇠와 돌까지 녹이고, 큰 홍수가 나서 물이 하늘까지 잠겨도 그를 해치지 못한다. 오직 도를 얻은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지식으로 도를 헤아리려는 것은 대롱과 송곳으로 천지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고 다시 말한다. “드넓은 하늘을 어찌 대롱으로 볼 수 있고, 땅의 깊이를 어찌 송곳으로 잴 수 있겠습니까?” 그저 “꼬리를 끌며 진흙탕에서 뒹굴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7.코뚜레와 고삐

하백이 약(若)에게 물었다. “무엇을 자연이라 하고, 인위라 합니까?”

약(若)이 대답했다. “소와 말이 각각 네 개의 다리가 있는 것을 가리켜 자연이라고 한다. 소의 코에 코뚜레를 끼우고, 말의 머리에 고삐를 매는 것이 인위(人爲)이다. 그러므로 인위로써 자연을 손상시키면 안 되고, 지혜로써 천명을 손상시키면 안 되고, 자기의 덕을 명성을 위하여 희생시키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자연은 삼가 지켜 잃지 않는 것을 그의 진실로 되돌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인생의 목적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사진가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자기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마틴 파의 10가지 규칙]

1.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고 배워라

2.그들의 사진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라

3.당신이 강하게 느끼는 피사체를 찾아라

4.좋아하는 사진을 고르고, 그것이 왜 흥미로운지 이해하라

5.그런 작업을 더 많이 하라

6.계속해서 더 많은 사진을 찍어라

7.당신이 찍는 사진 대부분은 ‘실패작’이 될 것임을 인정하라

8.당신이 발견한 것에 열광하라

9.유명한 사진가가 되기를 바라지 마라

10.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실패할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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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b4GVB0ztOE?si=NaXdUk3WmzT68M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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