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79. 존재와 인식

by 노용헌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에 찍히면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서먹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지원이는 내게 자신의 사진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대사이다. 영화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정원과 다림이의 이야기처럼, 사진은 그들의 사랑과 추억, 기억을 이어준다. 인물사진은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고, 존재를 말해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사진을 찍는다 고로 존재한다’ 사진을 찍는 나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존재이고, 사진에 찍혀진 대상도 사진속에 존재한다. 물론 실재를 닮은 허상일지 몰라도, 기억으로 존재한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많은 철학가들이 질문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고, 타자는 무엇인가. 사진은 그것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나와 타자간의 기억을 서로 대화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아닐까. 모든 존재하는 것, 모든 생명들, 존재하는 것들을 사진에 담을수 있고,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무이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유이다.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들은 실제 존재하는 것들이다. ‘존재는 존재한다’에서 출발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존재자체가 그저 존재로서, 무차별적이고, 수용적이고, 침묵학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그는 삶을 망각한 철학은, 철학적 미신이다. 그는 존재 그자체를 초월하는 그 무언가, 이데아의 세계로 향한 관념적인 철학이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이다. 사진의 철학은 존재론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고, 되돌리진 기억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자연적 피조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는 것이다.” 그것은 재현의 인식론이 아니라, 이미 생성의 존재론에 속한다. 바쟁은 대상의 존재에서 영화의 존재론을 설명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다루는 사진은 대상을 통해서 존재론을 확인한다.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적 특성은, 실재와 모사간의 혼재 또는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국 사진은 단지 현실의 모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지각을 조건짓게 만드는 것이다. 카메라는 대상의 외피뿐만아니라, 내피까지 그 존재의 의미를 담게 된다. “사진이 그 현실의 파편을 인용하는 것이라면 사진은 현실의 아나그램(anagram)이다.”1)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은 사진의 존재론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 정신지체 장애자들, 괴이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정상적인 사람보다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찍었던 그녀는 “모든 사람의 사진을 찍기를 희망하며,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모습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에 모든 사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그녀와 카메라속 대상과의 새로운 관계, 새로운 존재에 대한 인식이었다.


1) Peter Brunette and David Wills, Screen/Play, p. 88. 저자들은 영화를 현실의 아나그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영화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의 논의가 사진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진에 대해서도 동일한 규정이 가능하다.


존재론이 철학적 사유라고 한다면 인식론은 수사법이다. 존재에 대한 인식의 방법은 이성에 의한 것이냐 경험에 의한 것이냐 또는 감성에 의한 것이냐 다르게 이해된다. 우리의 인식은 시지각, 뇌와 모든 감각을 통해서 상황이나 사물을 인지한다. 예술에 있어서 르네상스이후 많은 표현들이 나왔다. 그 표현들은 인식에 달려 있다. 내가 인식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방법은 상징과 은유 등 수사법에 관한 것들이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는 셔터를 누르는 동시에 장착된 필름이 즉석으로 인화되어진다. 30초에서 1분이 지나면 피사체의 대상이 뚜렷해진다. 즉각적인 현상이 보여짐으로써(디지털카메라도 마찬가지), 본질에 대한 사고, 사유는 일회적이고 즉흥적이고 현상학적이다. 우리의 의식, 깊은 사유보다도 더 먼저 나타나는 것, 즉각적이고 감성적이다.


사진의 인식론은 사진가가 프레임을 하는 태도와 방법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브레쏭의 결정적순간이란 인식론은 그의 구도와 프레임으로 보여진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그의 인식을 프레임속에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여 촬영했는가는 사진이 말해 준다. 우리는 정말로 세계를 알 수 있을까? 한 사진가는 세계의 외피만을 보고 있는데 말이다.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인식은 그의 눈을 넓혀줄 것이다. 편협한 프레임이 아닌 열린 프레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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