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사진과 문학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그 여인은 비스듬히 걸어오고 있었다. 빨리 걸어오고 있었으나 이상스럽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라비크는 그 여인이 곁에까지 와서야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인의 광대뼈는 높이 치붙고 양미간이 넓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굳어버려 탈바가지라도 쓴 듯 움푹 꺼진 것 같았다. 라비크는 여인의 눈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리모양의 공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만약 당신이 영화감독이라면, 위의 문장을 영상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표현할까요. 이 글을 시나리오로 바꿔 그려본다면 같은 문장이라도 각기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여기 주인공인 여인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햄릿>의 로렌스 올비에, <닥터 지바고>의 이마 샤리프,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 등의 여성 이미지로 구체화될 것이다. 특정 배우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문학은 상상되지만, 영상은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즉 구체화, 시각화되기 때문이다. 사진과 문학은 이 지점에서 분명하다. 문학의 언어와 사진의 언어는 다르다.
대학시절 한교수님의 사진 수업중에, 학생들의 사진을 벽면에 붙이고, 자신이 찍은 사진에 대해 설명하는 수업이 있었다. 각자 자신이 찍은 의도를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진을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찍었으며 그 주제는 무엇이고,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설명을 어떻게 잘 하느냐에 따라서 관객이 내 사진의 의도를 잘 전달받을수 있게 말이다. 사진은 시각적으로 찍었지만, 그것을 다시 설명하게 될 때 그것은 또한 문학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모르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나의 작품을 설득시키는 것도 큰 기술인 셈이다. 남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누가 사겠는가. 설득의 기술은 대가의 철학만큼이나 중요한 포장인셈이다.
사진은 한 장으로도 보여지고 여러장의 묶음 사진으로도 보여진다. 한 장일때는 보통 시와 같아서 시화전에 사용되고, 여러장일때는 소설과 같이 잡지의 화보나, 포토스토리 또는 서사적 구조에 사용되어진다. 사진은 함축적이고 시적이지만, 또한 문학의 서술적인 표현도 가능하다. 사진의 한 프레임안에도 서사적이고, 서술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상상력을 사진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고, 그러한 시각적인 실험도 그레고리 크루드슨이나 제프 월의 연출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도 그 나름의 시간과 공간을 서술하는 사진이다. 이야기(story)를 담고 있고, 나레이션(narration, 敍事)을 담고 있고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런데 문학에 비해 사진이 구체적이지 않을수도 있다. 오히려 구체적인 것은 문학이 더 구체적일때가 많다. 사진은 시각적으로는 확연하게 구체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하더라도, 문학의 상상력만큼이나 시각적 상상력을 담는다. 문학이 오히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설명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글이 더 사진보다 설명적이고, 더 폭력적이다라고 느껴진다. 사진의 언어보다 더 구체적이고 권력적이다. 사진의 폭력보다는 오염된 글의 폭력이 더 심각해보인다.
사진은 영상과 달라서 영상은 긴 호흡이라면, 사진은 짧은 한숨과 같다. 순간적으로 셔터의 끊음은 모든 진동을 짤라 고정화시킨다. 순간을 채로 썬다. 모든 삶이라는 것은 긴 호흡이라면, 그 순간의 기록은 사진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이 가진 고유한 시각적인 면을 설명하기 위해서 캡션을 달고, 문학의 힘을 빌어 설명하려고 한다. 그것이 사진이 가진 아이러니(iron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