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시각적인 의미
근대사진에서 현대사진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읽는 사진의 시대에서 느끼는 사진의 시대로 시각적인 의미는 모호해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라고 말을 한다. 시각적인 것에서의 의미성은 이율배반적인 글과 시각의 의미충돌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에서부터 그리고 사진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진을 구성하는 시각적인 의미란, 작가의 생각, 즉 작가가 담고자하는 의도이건 아니건, 사진이 내포하는 시각적인 의미는 서로 충돌한다. 사진은 사진일뿐이 아닌 것이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있겠지만, 보는 사람들의 정서에서도 다르게 파악되고, 그 지점은 사진을 정치, 경제, 시회문화, 역사등 다양한 해석으로 사진의 시각적인 의미는 이해된다. 어쩌면 사진을 보여주려는 메시지와는 달리 기표와 기의의 해석만 남는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기호로서 언어를 연구하였고, 그는 기호의 표현 즉 의미전달을 위한 수단으로서 기표(記表,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시니피에)를 나누어 이야기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구조도 말과 글자의 기표와 기의를 설명한다. 이렇게 하나의 시니피앙, 기표에 여러개의 시니피에로 해석되는 것에서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해체를 했던 데리다의 경우처럼, 사진속에도 수많은 기표들과 그것들이 보여지는 수많은 시니피에로 해석은 어려워 보인다. 모든 기의들을 해체하고, 남겨진 기표들은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시각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의미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미학적인 방식에서 벤야민은 아우라(Aura)로 이해했고,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으로 이해한다.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아우라였고, 뇌리를 찌르는 것으로 푼크툼으로 말해진다.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말해진다. 원근법의 원리에서 회화적인 구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언어로서 시각적인 것을 다룬다. 시각적인 것의 의미는 사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시각적인 의미는 어떻게 해석되어지는가.
사람들은 말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글로서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사진가는 말과 글이 아닌 시각적인 것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소리가 가진 의미, 냄새가 가진 의미, 여러 의미들이 있겠지만, 결국 보여지는 것은 시각적인 의미이다. 나의 생각도 나의 말도 다 시각적인 것으로 해석되고, 보여진다. 우리는 시각적인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어쭙잖게 글로 해석하려 든다. 그것이 바르트가 말했던 스투디움(Studium)으로 사진 이미지를 해석한다. 작가의 의도는 프레임안에서 문화, 관습, 정보등으로 해석되어진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된 해석을 하고 있을까. 서로 다른 문화, 관습, 정보는 서로 달리 해석되어진다. 경계에선 그들은 오른쪽에서 바라본 모습과 왼쪽에서 바라본 모습은 코끼리의 부분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보는 방식에 따라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추악해 보인다. 알지 못할 때가 더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겠다. 알면 추악해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