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사진이라는 그릇
그릇과 내용. 우리는 그릇만 보고 담겨진 내용물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물을 담을 것인지는 잘 보지 못할때가 많다. 사실 보이는 것만 보이고, 보이지 않는 이면은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뿌리의 깊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나무의 높이와 크기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볼만 하다. 사진이라는 그릇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을까. 무엇을 담기 위해서 우리는 사진이라는 그릇을 사용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거나,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을 사진을 통해서, 사진이라는 그릇을 통해서 소유하거나, 기억하거나, 욕망을 투영한다. 사진이라는 그릇이 사람들에게 별 의미 없이 무언가를 담기도 하고, 자신만의 소중한 경험을 담고자 하기도 한다. 사진기는 그릇이다. DSLR이든 미러리스이든 액션캠이든, 핸드폰이든 사진이라는 그릇의 다양한 형태들을 가지고 자신의 내용물을 담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담으려 하는가. 내가 가진 그릇은 조그만한데, 너무 많은 내용물을 담고자 했던건 아닌지, 내 그릇은 조그마한 밥 한공기의 사발인데.
사진은 시간을 담는 그릇이고, 공간을 담는 그릇이다. 시간이 없는 공간은 없고, 기억이 없는 공간은 없다. 재개발이 된 그곳의 공간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시간과 기억, 그리고 그 현장을 찍은 사진 속에는 과거의 시간이 담겨져 있다. 사진은 시간을 담고 있고, 공간을 담고 있다. 오롯이 모든 걸 담고 있지는 않을지 몰라도, 부분적이나마 담고 있다. 우리는 그 그릇만 보이고, 거기에 담겨진 내용은 사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인다. 기억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은 부정확해졌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사진이라는 내용과 형식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진은 어떤 형식으로 컬러로 찍을지 흑백으로 찍을지부터 기술적인 프로세스에 대해서 논하기도 하고, 어떤 내용의 주제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하기도 하였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고찰은 내가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에 달려있다. 나는 어떤 그릇을 소화해낼 만한 그릇이던가.
카메라라는 그릇이 단순히 대상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무언가의 본질을 드러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혼을 담는 그릇인지, 그냥 물건들을 담는 그릇인지, 쓰레기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릇과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여전히 우리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