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82. 유리를 통해 어렴풋이

by 노용헌

존 자르코스키(John Szarkowski)는 1978년 MOMA에서 열린 [Mirrors & Windows; American Photography Since1960"] 기획전에 60년대까지의 사진가 100명의 280점을 사진을 비평하기 위한 도구라는 논제로 전시했다. 자르코스키는 거울과 창의 두가지 형태로 사진을 분류했지만, 나는 세가지 형태로 분류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진은 카메라의 미러를 통해서 사물을 기록한다. 이때 카메라 속의 유리는 불투명 유리인 거울인 셈이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서 바라본 풍경은 투명 유리를 통해서 바라본 세상이 아닐까.


1.투명 유리, 창문

2.반투명 유리

3.불투명 유리, 거울


자르코스키는 <사진가의 눈The Photographer’s Eye>(1966)에서 사진의 다섯 가지 요소 중 첫 번째 특징으로 ‘사물 그 자체(The Thing Itself)’이라고 말한다. "대상이 되는 사물 그 자체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다만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그 대상을 차별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의 이 말에서처럼, ‘사물 그 자체’로만을 사진은 찍고 있지만 그 속에 잘 드러나지 않은, 별것 아닌 존재에 숨어있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사물 그 자체’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각기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사진은 ‘사물 그 자체’라는 믿음은 곧 사진이 투명하다라는 믿음이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서 찍혀진 사물은 그 자체를 유사하게 전달할 것이다. 투명하다라는 것을 궁극적으로 사실임을 암묵적으로 항변한다.


“사진은 투명하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세계를 본다.”


우리는 대상의 거울 이미지, 혹은 렌즈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 또는 그 대상에서 반사되거나 대상이 내뿜는 빛을 봄으로써 그것을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그것을 듣는다. 우리가 오직 우리 자신의 감각정보나 우리의 망막에 맺힌 이미지만을 직접적으로 본다는 친숙한 주장이 생각날 것이다. <사진과 철학, P43>


사진을 필연적으로 정확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에 특히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을 우리와 사실 사이의 중재자, 즉 사실에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자신만의 의미를 가진 것, 믿을지 믿지 않을지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은 사실을 얻는 것이다. <사진과 철학, P64-65>


기계성---> 투명성 ---> 정확성 ---> 사실성


투명한 그림과 불투명한 그림의 구별은 다양한 흥미로운 예시들을 유발할 것이다. 몇몇은 이 구별이 사진과 비사진적 그림 사이의 일반적인 구별에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이들이 그림은 어떤 점에서 투명할 수 있고, 다른 점에서는 불투명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몇몇은 투명함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어떤 사례들의 경우에는 그림이 투명한가 아닌가라는 질문에 아마도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사진과 철학, P66>


우리는 유리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세상을 인지한다. 그런데 그 유리는 투명한 것일까. 투명한지 불투명한지는 결국 나에게 질문으로 돌아온다.


유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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