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성상혐오(iconophobia)와 성상숭배(iconophily)
빅터 터너(Victor Turner)의 저서 <기독교 문화의 성상과 순례: 인류학적 관점Image and Pilgrimage in Christian Culture: Anthropological Perspectives>에는 중요한 종교사 사례들이 다루어져 있는데, 이 저서의 4장에서는 성모 숭배를 둘러싼 긴 기독교사가 정리되어 있다. 성모의 위치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 성상 문제 등 복잡한 주제들과 성모 숭배의 발전 양상까지, 한 장에서 다루는 것이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방대한 내용이다.
성모 숭배(성모 마리아)는 유럽사의 주요 신학적 정치적 변화와 맞물려있다. 빅터 터너는 성상혐오(iconophobia)와 성상숭배(iconophily)사이의 논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538년 런던에서 헨리8세의 대주교 대리 크롬웰이 래티머(Latimer) 주교의 부추김을 받아 성모상을 불태운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완전한 성상파괴를 염두에 두었던 크롬웰과는 달리 래티머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그의 태도는 교회사적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성스러운 상들과 십자가는 하느님의 교회에 제대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그들에 바쳐지는 경의는 “단지 그들의 원형(prototype)을 위한 것”이며, 그들은 “경배(veneration)의 대상이지 숭배(adoration)의 대상이 아니다”. 이것은 동방의 레오 황제와 같은 성상파괴주의자들에 대한 (서방) 교회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전구를 청하던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를 하느님처럼 '흠숭'하지는 않았다. 사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불렀던 이들은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우상숭배라고 거부했다. 하지만 '공경'과 '흠숭'의 차이가 무엇일까? 고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사실 다른 대부분 고대 종교에서 그렇듯이, 흠승의 본질은 ‘희생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우리는 성상에 대한 혐오와 숭배의 극단 사이에 있는 것 같다. “icon"은 조상(彫像)의 사용과 이미지의 완전한 부재 사이의 타협이다. 아이콘(또는 도상)이 가지는 이미지는 우리의 판단을 혐오와 숭배 두 극단 사이에 놓이게 한다.
성스러운 이미지는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집단 표상으로서 기능하는데 알맞은 거의 문장(紋章)같은, 정형화된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자연 상징(natural symbols)이 아니라 관습적인 기호(conventional signs)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가 반대하는 이미지의 남용, 자연 상징은 구체적으로 성스러운 이미지가 특정한(particular) 것으로 되어가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상이 인간을 표상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점차 인격화된 봉헌의 대상이 되어간다. 주제단에 모셔진 것보다는 부속예배당, 벽감에 모셔진 성상들에, 특히 집에 개인적으로 모셔진 성상들은 인격화가 되어갔고, 이들 물질적 대상들은 영적 진리와 과정을 의미하게 되었다.
모든 상징은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인격화 과정은 이 기표와 기의의 결합 양상의 변화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성모상은 갈릴리에 살았던 한 여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늘에 거하다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때때로 나타나 신과의 중재를 서주는 성스러운 인물을 나타낸다. 그런데 민중적 경향에 따라서 성모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특정한 상과 결합된 것으로 인식되고 이제 상은 단지 힘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기표와 신학적 기의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상징의 외적 형태는 기표의 규범적(normative) 혹은 이데올로기적 축보다는 정감적(orectic) 혹은 감정적, 의지적 축과 더 긴밀히 연결된다.
아이콘이 가지는 성상의 종교적 기의는 사실 종교적 관점에 따라서 “그림과 조각상을 보는 것과 실재에서의 믿음 사이에” 놓이게 한다. 혐오의 시선이든, 숭배의 시선이든. 실재이든 허상이든. 우리는 이 두 가지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놓여져 있다. 사물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사진은 사진일 뿐인데,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는 혐오도 숭배도. 일본대사관 앞에 놓여진 소녀상은 정치적 혐오에 얼룩진 그 성상(icon)을 보여준다. 극단적인 혐오도 문제가 많지만, 맹목적인 숭배도 문제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