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05. 파편과 기억 그리고 남겨진 것들

by 노용헌

며칠 전 충무로의 한 작업실에서 오랜 간만에 흑백 프린트를 했다. 요즘은 디지털로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후보정을 하는 때라 흑백프린트를 해본지도 20년이 훌쩍 지난 듯 하다. 마지막 프린트도 신문사에서 98년이 마지막이다. 간간이 신문에 흑백지면에 들어가는 것들을 인화하던 암실작업은 2000년 이후로 시작된 디지털로 완전히 사라졌다. 흑백인화지를 사러 충무로의 한 매장에 들렸다. 매장에는 일포드(Ilford)제품만 있었고, 8*10인치 100매 만이 있었고, 25매는 없었다. 좀 더 싼 인화지 브랜드는 없냐고 아폴로 인화지도 괜찮은데 말이다. 코닥 인화지도 있었고, 다양한 브랜드의 인화지들이 다 없어지고 일포드만 남았구나 하고 격세지감을 느낀다. 촬영할 때 주는 느낌도 있지만 암실(暗室)이 주는 느낌도 있는데, 요즘은 디지털로 촬영하다 보면 옛 아날로그의 감성을 잃어버린 듯 싶다. 바트에 약품을 타고, 확대기에 노광을 주고, 인화지의 앞면과 뒷면을 확인하고, 빨간 등 아래 현상, 정지, 정착과정 속에서 상(象)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들. 그런 감성들은 우리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깜깜한 방 한 켠에서 나타나는 형상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의 기억은 파편이다.

약품을 밧트(트레이tray가 맞는 말인지, 밧트가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주로 빠트라고 했다)에 담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확대기에 필름을 끼고 포커스 스코프로 초점을 맞춘다.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만 대충 눈대중으로 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화지를 길게 자른 테스트 용지에 노광을 1초, 2초, 3초, 4초... 테스트 노출을 한 다음 현상액에 담근다. 노광이 몇초로 줄지 결정한 다음 인화를 하게 된다. 노광된 순서(많이 노광되면 검고, 적게 노광되면 하얗다)대로 사진은 구분되어 있다. 마치 농도가 다른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조각(piece) 인화지는 기억의 파편처럼, 퍼즐(puzzle)로 다가온다. 기억 하나 하나는 퍼즐의 한 피스이다. 10000 피스의 조각들은 피스의 숫자가 많을수록 기억을 맞추기는 힘들어질 것이다. 각기 다른 기억들의 조합. 그리고 다르게 기억되고 있는 기억들. 만(萬)개의 피스를 다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천재가 아닐까. 조각을 모두 기억한다면 아마도 머리가 빠개질 정도의 심한 두통이 올 것이다. 아마도 기억은 지워지고 선택적 지연(delay)이거나, 선택적 삭제(delete)일듯 싶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동물원의 <혜화동>의 가사처럼 우리의 기억은 어쩌면 잃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잊고 살아가는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기억하지 않을 려고 하거나, 잊어버리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각자는 서로 다른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있다. 슬픈 이야기이든, 기쁜 이야기이든, 각기 다른 기억들의 파편으로. 마치 노광을 테스트하기 위해 가려진 종이에 의해 닷징(Dodging)되든, 버닝(Burning)되든 말이다.


기록은 기억이다.

현상액에 담겨진 사진을 서서히 움직이면서 물결치는 용액에 담겨진 사진을 응시하고 있다보면 사진의 상이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 사방이 잠긴 어둠속에서 붉은 암등 하나에 의지해 사진을 바라보는 그 시간은 누군가를 기다리던 것처럼, 이미지인 상(象)을 만나게 된다. 종이라는 인화지에 찍혀진 내창 형을 만나는 셈이다. 그것도 돌아가신 사람을 이미지로 만나는 마법의 시간인 셈이다. 내창 형의 사진은 88년 늦가을 무렵 정확한 날은 기억할 수 없지만, 89년 총학생회 출마용 선거 포스터로 성백이가 촬영한 것이다. 사진과 암실에서 나무로 만든 대형 밧트에 전지 프린트를 해서 예술대 담벽에 붙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학생회장 선거 입후보했던 사진이 마지막 영정이 되었다. 당시 유행했던 한복 마고자를 입고 상반신 사진이었다. 무표정인 사진이었는데, 왜 웃으면서도 찍을 수도 있었고, 약간 몸을 틀어서 찍을 수도 있었는데, 무표정에 정면사진이었다. 증명사진처럼 말이다. 현재 사진은 원본이 없어서 디지털 이미지를 흑백필름으로 다시 찍고 인화를 하게 되었다. 복제본으로 다시 복제 인화를 한 셈이다. 복제에 복제(複製). 복제된 기억의 진실의 열쇠는 기록에서 출발한다. 그만큼 기록은 중요하다. 제대로 된 기록을 해야 그 진실에 더 근접해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의 첫 출발 또한 기록에서 시작된다. 필름에 기록은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는 열쇠인 것이다. 그가 느꼈던 감정 모두 기록에서 시작된다. 암실에서의 작업은 기억을 열어주는 시간이다. 촬영된 과거의 시간은 암실이란 과정을 통해서 현재로 다가온다. 현상액에 담겨져 있는 동안 상은 나타나 있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고정시키는 작업이 정착액이다. 정착된 상이 비로소 남겨지게 된다.


기억된 것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

두현 후배가 현상된 필름 20롤을 가져왔다. 뷰박스(view-box)에서 네가티브 필름의 이미지들을 보았다. 거문도에서의 장면, 병원 장례식장의 모습, 전대협장을 했던 중대 흑석동 대 운동장. 그런데 망월동의 장면이 없다. 이상하지만 망월동 장면의 필름은 분실된 것인가. 어쨌든 이 필름들은 과거 정근이의 필름의 이미지가 아니다. 보지 못했던 이미지들이었다. 원작자는 아마도 동윤이형의 필름일 듯 싶다. 30년이 지난서 갑자기 등장한 이 필름들의 이미지들은 다시 기억을 환기시킨다. 아마도 사진이라는 매체는 기억을 환기시키는데 그 역할을 하는 듯하다. 땅속에 묻혀있던 유구들이 발견되는 것처럼 기억의 흔적들이 필름에 담겨져 있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이 사실인 듯 하다. 흐릿해진 기억들은 사진의 기록이 다시 기억된다. 남겨진 기억들, 그리고 남겨진 사진들. 마치 앨범속을 뒤적이며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광화문광장의 대로변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 속에 내창 형 같은 사람도 지나가고.... 사진 한 장 한 장 실타래를 잡아당기다 보면 기억은 줄줄이 연결되어진다. 연결된 기억, 그리고 기록.

암실작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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