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Showing, Seeing, and be Seen
Showing, Seeing, and be Seen(보여주는 것-보는 것-보이는 것)
1. Seen; 사진의 과정은 보이는 것을 촬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을 촬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구체적이지 않고,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대상의 리얼리티라는 것은 현실에 있다는 말일 것이다. 영화의 공간은 가상의 공간에 마치 리얼리티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얼마나 사실적이냐에 따라서 리얼리티를 가진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때론 관념적이기도 하고, 대단히 주관적인 기억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만약 사진이 보이지 않는 것을 촬영한다고 하면 그것은 아마도 그림이라고 여길 것이다. 포토샵이나, 기계적인 공정으로 만들어진 리얼리티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사진은 실제로 존재한 것을 촬영했지만 사실상 그 대상의 복제물이다. 실제로 존재한 오브제이지만 그것은 화면상의 이차원적인 등가물인 셈이다. 이점이 사진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생겨난다. 그중에서도 발터 벤야민(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롤랑 바르트(카메라 루시다)는 사진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바르트는 그의 책 “Camera Lucida”에서 사진의 본질과 그것의 의미를 만들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탐구한다. 사진이 단순히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문화적, 개인적 요인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장소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과거와의 연결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순간들은 현재와 그리고 보고 있는 미래의 독자들을 연결하고,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Seen)은 주체가 보는 것(Seeing)으로 그리고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Showing)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2. Seeing; 촬영자인 사진가가 보는 것을 우리는 다시 본다. 그가 있던 시점에서 우리는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3차원의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진가는 그 공간을 프레임해서 본다. 프레이밍의 과정은 선택의 과정인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프레임밖으로 밀려나고, 보고 싶은 것만이 프레임속에 담겨지게 된다. 코끼리 다리만 볼지, 코끼리의 코만을 볼지, 사진가는 부분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것이 보는 것이다.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에서 카메라는 “우리에게 기억이라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고, 잊기위해 기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신처럼 우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꼼꼼하게 다른 것들을 살펴주게 된다.
“맥컬린의 가장 대표적인 사진들은 갑작스런 고통이 순간들-공포, 부상, 죽음, 비탄의 울음-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러한 순간들은 실제로 일반적인 시간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고통의 순간을 격리된 것으로 만드는 카메라는 그러한 순간의 경험이 그 경험 자체를 격리시키는 것 못지않게 폭력적으로 그것을 격리시키게 된다.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영상은 두 배로 폭력적인 것이며, 그러한 두 가지의 폭력성 모두는 사진으로 찍힌 순간과 다른 모든 순간들 사이의 대비를 더욱 강화해 주게 된다.
사진으로 찍힌 순간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일상으로 되돌아오게 될 때, 우리는 이점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러한 단절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으로 촬영되는 그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그 순간을 보지 못하게 되며, 그들이 보여주게 되는 반응은 전적으로 다른 등급의 것이다. 그 누구도 그러한 순간에 처하여 생각에 잠긴 듯이 보이거나, 더욱 강해진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3. Showing; 전시를 통해서 사진가의 사진들을 보게 된다. 보여주는 것은 사진가가 선별한 사진들이다. 사진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사진가의 서사성[敍事性, narrative]을 보게 된다. 한장의 사진이 아니라 연속된 이미지들은 사진가 보았던 것의 사건, 경험 그리고 사진가가 주장하는 맥락을 읽게 된다. 보여주는 것은 사진가의 맥락(context)인 것이다. 사진과 함께 사진 속에 제시된 것들은 모든 정보, 지각, 기억은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사진가의 상황적 맥락과 함께 전시된 사진을 보는 사람도 그의 판단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전달받는다. 이 과정을 통해서 사진은 보여주는 것을 통해 상호작용한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시선, 그 사진을 셀렉팅하는 시선, 그리고 그 셀렉팅한 사진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 촬영자, 선택자, 관람자는 각기 다른 시선들로 그리고 그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촬영자는 푼크툼(punctum)에 의해서 선택적 상황을 프레임했다면, 보여주는 과장을 통해서 관람자는 스투디움(studium)에 의해 해석적 맥락을 느끼게 된다. 의미의 맥락은 전시된 사진들의 서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모어 채트먼(Seymour Chatman)은 러시아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의 기존 논의를 받아들여 문학이나 영화의 서사 이론에 적용시켰다. 서사물을 이야기(Story)와 담화(Discourse)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구조로 정의하고, 각각의 구성요소들과 그 본질적 특성에 관한 연역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보여준다는 것은 사진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사진에 담겨진 이야기와 담화를 봄으로써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