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303. 옹이의 얼굴

by 노용헌

옹이는 ‘상처’이고, ‘상처’는 ‘흔적’이고, ‘흔적’은 ‘기억’이고, ‘기억’은 ‘시간’이다. 사진은 누군가의 만남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이다. 사진이 그 누군가를 만나고, 그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와의 관계가 연결되어진다. 도심의 가로수이든, 공원이든, 지나치는 많은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들에게 각각의 얼굴이 있다면... 나무의 인고[忍苦]의 상처는 옹이를 보면 느껴지는 듯하다. 옹이의 생김새는 각각 다르다.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씩 다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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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가엾은 자기 아내의 눈물과 두려움을 본 순간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뒤집혔다고 확신한다. 그의 마음은 아내보다 훨씬 더 아팠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지극히 선하기는 하지만 나약한 사람들에게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선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죄 없는 사람, 주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할지라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끓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쾌락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아픔과 분노에 몰두한다. 예를 들면 부인들은 이따금 모욕이나 불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불행과 모욕을 느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인네와 비슷한 남성들도 많이 있다. 그 가운데는 전혀 약하지 않으며, 여성적인 데가 많지 않은 남성들도 있다. 노인은 비록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다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P122-123)


“몰라요..... 우리는 다시 우리의 미래의 행복을 어떻게든 고통을 통해 얻어야 해요. 그것을 무언가 새로운 고통을 통해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모든 것은 고통을 통해 깨끗해져요.... 오, 바냐, 삶 속에는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어요!” (P141-142)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상처받은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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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는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고, 그래서 <고해[苦海]의 바다>라고도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어쩌면 고통스러운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길 원한다. 아름다운 풍경 또한, 그 나름대로의 마음의 편안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고통을 본다는 것은 불편함일 것이다. 그 불편함들은 때론 슬픔도, 눈물도, 때론 분노도 느끼기 한다.


그렇다. 나는 그 순간 억제하기 어려운 분노를 느꼈지만, 눈물은 가엾은 넬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필요해서 구걸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버림받은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 의해 운명의 전횡에 내맡겨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잔인한 박해자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 주던 사람들로부터 뛰쳐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로 마치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경악시키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녀가 누군가의 면전에서 호언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무엇인가 비밀스러운 것이 그녀의 영혼 속에서 성숙하고 있었다.... 그렇다. 노인이 옳았다. 그녀는 모욕을 당했고, 그녀의 상처는 아물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의로 이 비밀스러운 행동을 통해, 우리 모두에 대한 불신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자극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이 고통의 이기주의를 즐기는 듯했다. 이것은 고통의 자극이었고, 그것을 즐기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모욕당하고 경멸당한 많은 사람들의, 운명에 의해 억눌리고 운명의 부당함을 인식한 뭇 사람들의 향락이었다. (P481-482)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상처받은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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