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017년
[답장은 우유상자에]
그 폐가(廢家)로 가자는 말을 꺼낸 건 쇼타였다. 아주 괜찮은 헌 집이 있다고 했다.
“아주 괜찮은 헌 집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 몸집도 작은 데다 얼굴에 아직도 어린 티가 남아 있는 쇼타를 내려다보며 아쓰야는 말했다.
“글세, 아주 괜찮은 집이라니까. 우리가 숨기에 딱 좋단 말이야. 사전 조사를 나갔을 때 우연히 발견한 곳이야. 진짜로 그 집을 써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너희한테 미안하다.....” 고헤이가 큼직한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설마 이런 위급한 때에 차 배터리가 나갈 줄은 몰랐어.”
아쓰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P9)
“그건 나도 알아. 왜 고민 상담 편지를 잡화점 우편함에 넣었느냐는 거야. 게다가 망해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잡화점에.”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고헤이 너한테 물어본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말해본 것뿐이라고. 대체 뭐냐, 이게.”
두 사람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면서 아쓰야는 봉투 속을 들여다보았다. 반으로 접힌 새 봉투가 들어 있고, 받는 사람 칸에는 ‘달 토끼’라고 사인펜으로 적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마침내 그도 입을 열었다. “누가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닐 테고, 이거, 진짜로 상담을 하는 거잖아. 게다가 상당히 심각해.”
“혹시 집을 착각한 거 아닐까?” 쇼타가 말했다. “어디 다른 곳에 고민을 상담해주는 잡화점이 있는데 거기하고 착각한 모양이네. 틀림없어.”
아쓰야는 손전등을 들고 일어섰다. “가게 이름을 다시 확인해보고 올게.”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가게 앞으로 돌아갔다. 흐릿한 간판을 손전등으로 비춰 보았다. 골똘히 시선을 집중해서 확인했다. 페인트가 벗겨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잡화점’ 앞에 있는 글씨는 분명 ‘나미야’인 것 같았다.
다시 안으로 돌아와서 그 얘기를 두 사람에게 해주었다.
“그럼 이 집이 맞아. 하지만 이런 빈집에 상담 편지를 넣다니, 그러고도 답장이 올 거라고 생각할까. 상식적으로?” 쇼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P22-23)
기사에는 작은 사진이 딸려 있었다. 틀림없이 이 잡화점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자그마한 몸집의 노인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이 주간지는 그저 우연히 남아 있었던 게 아니라 일부러 챙겨둔 거였어. 자기네 잡화점 기사가 실렸으니까 보관해둔 거라고, 와 아, 이건 진짜 특이하다.” 아쓰야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고민을 상담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이라...... 아니, 근데 아직도 상담을 하겠다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 벌써 사십 년이나 지났는데?” 그러고는 다시 한 번 ‘달 토끼’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를 쳐다보았다. (P25)
“네가 우유 상자에 편지를 넣은 게 끽해야 오 분 전이야. 내가 곧바로 가서 살펴봤는데 그 편지가 사라지고 없었어. 만일 그 편지를 달 토끼라는 여자가 가져갔다고 해도 이 정도의 편지를 쓰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잖아. 근데 그 즉시 두 번째 편지가 날아들었어. 이건 진짜 이상하잖아?”
“그건 이상하지만, 달 토끼 씨한테서 온 답장인 건 틀림없어. 내가 물어본 것에 분명하게 대답했으니까.”
고헤이의 말에 아쓰야는 반론을 할 수 없었다. 분명 맞는 말이었다. (P39)
‘달 토끼’에게서 온 세 통의 편지를 탁자에 늘어놓고 그것을 에워싸듯이 세 사람은 의자에 앉았다.
“얘기를 좀 정리해보자.” 쇼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우유 상자에 넣은 고헤이의 편지를 누군가 가져갔어. 하지만 고헤이가 숨어서 계속 감시했는데 우유 상자에 접근한 놈은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아쓰야는 가게 앞을 감시했었지? 거기 셔터 근처에도 쥐새끼 한 마리 얼씬한 적이 없어, 그런데도 세 번째 답장이 우편함 밑의 상자에 들어왔어. 자, 여기까지 뭔가 실제와 다른 점은 없지?” 없지, 라고 아쓰야는 짧게 대답했다. 고헤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쇼타는 집게 손가락을 쳐들었다. “이 집에 아무도 접근한 적이 없는데도 고헤이의 편지는 사라졌고 달 토끼 씨한테서는 답장이 왔어. 우유 상자도 셔터도 샅샅이 살펴밨는데 어떤 이상한 장치도 없었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쓰야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머리 뒤로 양손을 올려 깍지를 꼈다.
“그걸 모르니까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 아니냐.”
“고헤이, 너는 어때?”
고헤이는 동그란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P44-45)
“아하, 알았다, 유령이네, 유령. 이 집이 유령의 집인가 봐.” 고헤이가 등을 움츠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쇼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투명인간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야, 그 누군가는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거야.” 세 통의 편지를 가리키며 쇼타는 말을 이었다. “과거의 사람이야.”
“과거의 사람? 야, 그게 뭐야?” 아쓰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내 생각에는 일이 이렇게 된 거 같아. 가게 앞 셔터의 우편함과 가게 뒷문의 우유 상자는 과거와 이어져 있어. 과거의 누군가가 그 시대의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넣으면, 현재의 지금 이곳으로 편지가 들어와. 거꾸로 이쪽에서 우유 상자에 편지를 넣어주면 과거의 우유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이렇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앞뒤가 딱 맞아.”
즉 달 토끼 씨는 과거의 사람이야, 라고 쇼타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P49)
쇼타도 고헤이도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거라고 아쓰야는 생각했다. 아쓰야 자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달 토끼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올림픽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힘껏 노력했는데도 대표 선수로 뽑히지 못했고, 그뿐만 아니라 이번 올림픽에 쏟은 노력 자체가 물거품이 되었는데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메달보다 값진 것을 얻었다고 오히려 진심으로 흐뭇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나미야 잡화점 덕분이라는 것이다. 아쓰야와 쇼타와 고헤이가 답답하고 화가 나서 대충 써 보낸 편지 덕분에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건 비꼬는 소리나 장난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짓을 하겠다고 이렇게 긴 편지를 보낼 리는 없다.
웃음이 스멀스멀 밀려나왔다. 정말로 우스웠다. 아쓰야는 입을 다문 채 가슴을 들먹거리다가 결국 낮은 신음 소리를 흘리고 마침내 캬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P80-81)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생선가게 예술가 님께
상담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을 들려주시다니, 참 고맙군요.
좋으시겠네, 대대로 이어온 생선 가게의 외아들이라니, 그냥 가만히 있어도 가게를 물려받는 거잖아요? 옛날부터 드나들던 단골손님이 많을 테니 영업을 하느라 고생할 일도 없겠네요.
한 가지만 묻겠는데, 주위에 취업이 안되어 고민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만일 없다고 한다면 참 좋은 세상이네요.
앞으로 삼십 년만 지나보세요.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일할 데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해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하는 시대가 옵니다. 틀림없이 와요. 내기를 해도 좋아요. 하지만 당신은 대학 중퇴라고요? 자퇴를 한 거예요? 부모가 돈 다 대주면서 어렵사리 보낸 대학을 걷어차다니, 참 내.
그러고는 음악이라고? 예술가가 되시겠다고? 대대로 이어온 가게를 내던지면서까지 기타 하나로 험한 세상과 싸워보겠다는 거군요. 에그, 쯧쯧.
더 이상 어떤 충고도 해줄 마음이 없어요.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 세상을 호락호락하게 보는 사람은 어디선가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하지만 어쩌다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이상 일단 답장을 해드립니다.
내가 나쁘게 될 말을 하겠습니까, 기타 따위는 내려놓고 당장 생선 가게를 물려받으세요. 아버님이 건강도 안 좋으시다면서요. 빈둥빈둥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노래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거, 빤한 일이 아닙니까? 그게 가능한 건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뿐이에요. 당신은 안 돼요, 더 이상 어리석은 꿈에 빠져 있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보십시오.
나미야 잡화점 (P126-127)
가쓰로는 아이를 들쳐 업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천장이 떨어져 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는 불바다가 되었다.
아이가 울부짖었다. 가쓰로는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밖에는 살아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이를 업은 채 가쓰로는 불길 속을 달렸다. 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차례차례 습격해왔다. 온몸에 아픔이 내달렸다.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벌건 불빛과 검은 연기, 그것들이 동시에 온몸을 휘감았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손끝 하나 꼼짝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몸뚱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의식이 아득해져갔다. 잠들어버릴 것 같다.
그 편지글이 희미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P147)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저녁은 먹었냐?”
“회사에서 오는 길에 메밀국수 한 그릇 먹었어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려고요.”
“네 집사람한테 말은 했어?”
“예, 집사람도 아버지 걱정하던데, 몸은 좀 어떠세요?”
“덕분에 아무 문제없다. 굳이 나 보러 올 것도 없어.”
“일껏 왔는데 김빠지게 하실 거예요?”
“걱정할 거 없단 얘기야, 아 참, 조금 전에 목욕해서 욕조에 물 그대로 있다. 아직 뜨끈뜨끈할 테니까 언제든지 목욕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시선은 찻상 위에 가 있었다. 거기에는 편지지가 펼쳐져 있었다. 곁에는 편지 봉투도 있었다. 겉봉에 ‘나미야 잡화점 님께’라고 적혀 있다.
“그건 오늘 온 편지예요?” 다카유키가 물었다.
“아니, 들어온 건 어제 한밤중. 내가 아침에야 알아봤어.”
“원래는 오늘 아침에 답장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온 상담 편지에 대한 답장은 그다음 날 아침에 우유 상자에 넣어둔다. 그것이 아버지가 만든 규칙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오전 5시 반이면 일어났다.
“아냐, 한반중에 보낸 거라서 상담자도 내 사정을 좀 봐준 거 같아, 답장이 하루 늦어도 괜찮다고 일부러 편지에 써 보냈어.” (P156-157)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P158-159)
다카유키에게
이것을 읽을 즈음에는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참으로 섭섭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만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게다가 섭섭하다고 느낄 줄 아는 내 마음도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너에게 이 편지를 남긴 이유는 다름 아니라 꼭 부탁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내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
부탁할 일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공고문’을 내달라는 것이다. 내 서른세 번째 제삿날이 다가오면 어떤 방법으로든 상관없으니 세상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기 바란다. 어떤 공고문인가 하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0월 0일(여기에는 제사 날짜를 기입하도록 해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 편지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의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너로서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는 부탁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무척 중대한 문제다. 괴이한 일로 생각되겠지만 부디 내 소원을 들어주기 바란다.
아비 씀 (P187-188)
“이 여자가 그때의 상담자냐 아니냐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것은 그때의 내 답장이 정말로 옳은 답이었느냐는 것이지. 아니, 그때뿐만이 아니야. 지금까지 보낸 무수한 답장이 각 상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게 중요해. 나로서는 매번 열심히 머리를 짜서 답장을 써왔다고 생각한다. 대충 써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 하지만 과연 그 답장이 상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어, 어쩌면 내 충고대로 했다가 어처구니없이 불행해진 경우가 있을 게야.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참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더 이상 마음 편히 답장을 쓸 마음이 나지 않았어. 그래서 가게를 걷어치웠다.” (P190)
[묵도는 비틀스로]
고스케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었다.
그 가게가 건재하고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 고스케의 운명을 크게 뒤흔든 잡화점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간판 글씨는 퇴색해서 보이지 않았다. 셔터는 온통 녹이 슬었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은 서 있었다. 마치 고스케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11시도 안 되었다. 너무 일찍 와버린 것이다.
고스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기척은 없었다. 이 가게에서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과연 그 정보를 믿어도 될까, 어차피 인터넷에 올라온 일개 블로거의 글일 뿐이다. 일단 의심해보는 게 무난하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명칭으로 거짓 정보를 올려본들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이 가게를 알고 있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P225-226)
이게 뭔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도 다르다. 멤버들끼리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는 일도 없고 대화는 번번이 어긋난다. 그들의 입에서는 불만과 미움, 그리고 차가운 미소가 흘러나올 뿐이다.
들려오는 말로는 이 영화를 보면 비틀스가 해체한 이유를 알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서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실질적으로 이미 끝나버린 비틀스였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고스케는 그걸 알고 싶었다.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하는 배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네 명의 멤버들은 비틀스를 구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크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무엇보다 소중히 간직해 온 것을 누군가 여지없이 망가뜨린 듯한 기분이었다. 이윽고 고스케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P269)
[하늘 위에서 기도를]
“뭔가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고헤이가 우물우물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아쓰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고민 상담실을 계속하겠다고? 땡전 한 푼 안 들어오는 일을?”
“돈이 문제가 아니야. 돈 버는 일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좋은 거야. 이익이니 손해니 그런 건 다 빼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진지하게 뭔가를 고민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
아쓰야는 큰 소리로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고민 고민해서 답장 보내주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우리가 보낸 답장이 실제로 도움이 된 것도 없잖아. 올림픽 후보라는 여자는 우리가 보낸 답장을 자기 좋을 대로 해석했을 뿐이고, 생선 가게 뮤지션한테는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애초에 내가 말했잖아. 우리 같은 쭉정이 백수들이 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해준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짓이라고.”
“그래도 달 토끼 씨가 보내준 마지막 편지에는 아쓰야 너도 흐뭇했잖아.”
“그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 하지만 난 착각하지는 않아. 우리는 남에 충고를 해줄 만한 인물들이 못 돼. 우리는 .........” 아쓰야는 방구석에 뒹굴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우리는 기껏해야 좀도둑이잖아.” (P330)
“누님이 숨을 거두기 전에, 하늘 위에서 여러분의 행복을 기도하겠다고 말했지만 이 편지를 쓴 사람도 분명 누님이 어디선가 지켜주고 있을 게야.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면 말이야.” 미나즈키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네, 그러실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루미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다. 나미야 유지, 나미야 유지.......
하루미는 나미야 잡화점과 편지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주인 할아버지의 이름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시즈코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보면 1980년 당시에 상당히 고령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지금 미나즈키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과 비슷한 나이일 터였다.
“왜?” 미나즈키가 물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루미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누님이 그토록 힘들여 운영해온 환광원인데 내가 간단히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어떻게든 다시 일으켜 세울 생각이라네.” 미나즈키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듯이 말했다.
“네, 꼭 그렇게 해주세요. 저도 열심히 응원할게요.” 하루미는 들고 있던 편지를 미나즈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때 봉투에 적힌 ‘미나즈키 아키코 님에게’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깊은 결의가 담긴 듯한 글씨였다. 그 필체는 하루미가 받은 나미야 잡화점의 편지와는 전혀 달랐다.
역시 단순한 우연이야.
이 일에 대해 하루미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P404-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