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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un 27. 2024

스티븐 킹의 <맹글러>

영화 <써스펙트>  1995년

영화 <써스펙트>(The Mangler)는 미국에서 제작된 토브 후퍼 감독의 1995년 공포 영화이다. 로버트 잉글런드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아낸트 싱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알려진 다른 제목은 맹글러이다.  

구급차가 막 떠날 때쯤 헌튼 경관은 세탁소에 도착했다. 구급차는 사이렌이나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천천히 떠났다. 불길한 징조였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대부분 말이 없었고 그중 몇 명은 흐느꼈다. 작업장은 텅 비었다. 반대편에 있는 커다란 세탁기마저도 꺼진 채였다. 헌튼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사고가 났을 때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잔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본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도 그건 아주 나쁜 본능이었다. 나쁜 사고를 다룰 때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위장 수축을 느꼈다. 14년 동안이나 고속도로, 큰길, 빌딩 사이의 골목길에서 시체 찌꺼기 치우는 일을 해 왔지만, 뱃속의 작은 반응은 그대로였다. 뭔가 사악한 것이 거기 자리 잡은 듯했다.                   (P154)     


헌튼은 노트를 꺼냈다. “사고 현장을 좀 보여 주십시오. 스태너 씨, 당시 상황도 말씀해 주시고요.”

스태너는 더욱 창백해졌다. 콧잔등과 볼의 얼룩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꼬, 꼭 해야 하는 겁니까?”

헌튼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로는 꽤 큰일이라고 하던데요.”

“큰일이죠.....” 스태너는 역겨움을 참느라 애쓰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그의 목젖이 막대기에 매달린 원숭이처럼 오르내렸다. “프롤리 부인이 죽었습니다. 세상에, 사장님이 계셔야 했는데.”

“일이 어떻게 된 겁니까?”

스태너가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보시죠.”

그는 헌튼을 이끌고 다림질하는 구역과 셔츠 접는 구역을 지나 세탁물 표시 기계 앞에 멈췄다. 그가 손으로 이마를 닦았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보십시오. 경관님. 저는 다시 못 보겠습니다. 이걸 다시......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P155)    

  

헌튼은 남자에게 약간 경멸감을 느끼며 기계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방만하게 세탁소를 운영했다. 어떻게든 돈을 안 쓰려고 했고, 대충 만든 파이프에 증기가 흘러나가게 내버려 두고, 적당한 안전장치도 없이 위험한 세탁용 화학 약품을 사용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다쳤다. 죽었다. 그러고선 이제 와 못 보겠다고 한다. 그들은.....

헌튼은 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기계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끄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기계의 명칭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해드리왓슨 다림질 및 접이 기계 6번 모델. 멍청하게도 긴 이름이었다. 이곳에서 수증기와 물에 흠뻑 젖어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 그래도 조금 나았다. 사람들은 그 기계를 맹글러(주름을 피는 것)라고 불렀다.                  (P155-156)     

 

“오늘은 참 안 좋은 사건이었어. 최악이었지.”

“교통사고?”

“아니, 산업재해야.”

“끔찍해?”

헌튼은 금방 대답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로움으로 찡그려졌다. 그는 둘 사이에 있는 상자에서 맥주를 꺼낸 다음, 따서는 단숨에 반을 마셔 버렸다. “자네 같은 대학교수는 세탁 공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

잭슨은 소리 내 웃었다. “거기는 잘 알지. 학부에 다닐 때 여름이면 세탁 공장에서 일하곤 했으니까.”

“그럼 고속 다림질기라고 부르는 기계 알겠군?”

잭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축축한 세탁물을 펼쳐 넣는 건데, 대부분 침대보나 식탁보를 주로 넣잖아. 아주 크고 긴 그 기계 알지.”

“맞아.” 헌튼이 말했다. “블루 리본 세탁소라는 데서 아델 프롤리라는 여자가 거기에 꼈어. 바로 빨려 들어갔더라고.”

잭슨이 갑자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 조니. 안전대가 있거든. 세탁물을 넣는 여자의 손이 사고로 꼈다면, 안전대가 올라오고 기계는 바로 멈추게 돼 있어.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래.”

헌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에서 정한 법은 그렇지. 하지만 사고는 일어났어.”

헌튼이 눈을 감자 어둠 속에서 오후에 봤던 해들리왓슨 고속 다림질기가 다시 떠올랐다.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생겼는데, 가로 2미터에 길이는 10미터 정도 돼 보였다. 투입구 끝에 천으로 된 벨트가 안전대 밑으로 조금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움직였다. 벨트를 통해서 반쯤 마른 구겨진 천을 끊임없이 넣으면 본체 안에 있는 실린더 열여섯 개가 그것들을 다리게 된 기계였다.             (P156-157)  

    

프롤리 부인이 사정이야 어찌 됐든 그 기계 안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다. 강철에 석면 덮개가 있는 압축 실린더는 창고에 쓰는 페인트처럼 붉은색이었고, 기계에서 뿜어지는 증기에는 역겨운 피냄새가 가득했다. 그녀가 입었던 흰 블라우스와 파란 바지. 심지어 브래지어와 팬티 조각까지 갈기갈기 찢긴 채 10미터 앞 기계의 반대쪽에 흩어져 있었다. 좀더 큰 옷감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채 주름 하나 없이 펴져서 자동 접이 기계에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최악의 광경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모든 걸 다 접어 버리는 기계더군.” 헌튼은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잭슨에게 말했다.        (P158)  

    

“빌어먹을 안전대를 어떤 상황에서 누가 허가해 줬는지에 달렸지.”

“만약 관리자 쪽 잘못이면, 어떻게 피해 갈 방법은 있고?”

헌튼은 웃음이 났다. “사람이 죽었어, 마크. 가틀리와 스태너가 고속 다림질기 관리에 소홀했다면 감옥에 가야 돼. 시 평의회에 있는 어느 누구랑 친분이 있더라도 안 돼.”

“그 사람들이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해?”

헌튼은 블루 리본 세탁소를 생각했다. 조명이 어둡고, 축축한 바닥은 미끄럽고, 기계들 중 몇 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낡았다. “그런 것 같아.” 그가 조용히 말했다.        (P158-159)  

    

맹글러에 대한 헌튼의 생각은 틀렸다. 기계는 아주 깨끗했다.

배심원 심리에 앞서 여섯 명의 주정부 조사관이 부품 하나하나까지 자세하게 조사했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심원들의 심리 결과는 사고사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헌튼은 증언이 있은 후에 조사관 중의 한 명이었던 로저 마틴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키가 크고 위스키 잔 바닥만큼 두꺼운 안경을 쓴 마틴은 물을 마시던 참이었다. 그는 헌튼의 질문에 대해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아무것도 없다고요?” 기계는 완전히 깨끗했단 말입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P159)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사고가 생긴 겁니까?”

“모르겠어요. 저와 제 동료들은 프롤리 부인이 고속 다림질 기계에 끼어서 사고를 당하려면 위로부터 떨어져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고가 났을 때 그녀는 분명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었단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증인이 수십 명 있어요.”

“지금 불가능한 사고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뇨, 이해할 수 없는 사고죠.”                  (P160)     

 

잭슨이 인사말이 시작이었다. “나한테 이야기했던 그 세탁소 기계에 귀신이 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나, 존?”

헌튼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깜빡거릴 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블루 리본 세탁소의 고속 다림질기 말이야. 이번에는 신고가 안 들어왔나 보지?”

“무슨 신고?” 헌튼이 물었다.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잭슨이 석간신문을 넘겨주며 2면 하단의 기사를 가리켰다. 기사에 따르면 블루 리본 세탁소의 고속 다림질기에 있는 증기파이프가 터져서 여성 여섯 명 중 세 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사고는 오후 3시 45분경에 일어났고, 원인은 세탁소 보일러의 압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인들 중 한 명, 바로 아네트 질리언 부인이 현재 시립 병원에서 2도 화상으로 입원해 있었다.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군.” 그가 말했다. 그때. 텅 빈 심리실에서 마틴 조사관과 주고받았던 대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귀신이 들렸다고......... 버려진 아이스박스에 갇힌 개와 소년과 새도 생각났다.  (P162-163)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천을 넣는데 갑자기 다림질기가 폭발한 거예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답니다. 저는 집에 가서 개 데리고 산책이나 할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폭탄처럼 말입니다. 온 천지에 김이 가득하고 또 쉭쉭거리는 그 소리...... 끔찍했어요.” 그녀의 미소가 가늘게 떨리다가 거의 사라졌다. “마치 다림질 기계가 숨을 쉬는 것 같았어요. 용처럼 말이에요. 알베르타, 그러니까 알베르타 키니가 뭔가 폭발한다고 소리쳤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죠. 그리고 지니 제이슨이 자기 몸에 불이 붙었다고 소리쳤어요. 저는 도망가다 넘어졌고요. 그때까지도 그렇게 상황이 나쁜 줄 몰랐어요. 세상에, 알고 보니 그보다 더 나쁜 상황도 없더군요. 마구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150도였어요.”            (P164)  

    

“뭐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투입구에 벨트를 단단하게 조여 주는 꺾쇠가 있거든요. 무거운 천을 넣을 때는 셰리가 거기에 맞춰서 적당하게 조절해 주는데, 아마 남자 생각이라도 했던 모양이에요. 손을 베어서는 온 천지에 피를 흘리고 다녔죠.”

질리언 부인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나사들이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델은...... 아시겠지만..... 일주일쯤 지나서 사고를 당한 겁니다. 마치 기계가 피 맛을 보고 나서 피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여자들이 참 황당한 생각을 하죠, 헌튼 씨?”             (P165)  

         

“그런 비슷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봐.” 잭슨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심각하네, 존. 그 기계 때문에 너무 무섭다고. 아직 본 적도 없는 그 기계 때문에 말이야.”

“말이 나왔으니까 이야긴데.” 헌튼이 말했다. “자네가 말하는 그 흔한 주문들에는 또 어떤 게 있나?”

잭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연구를 좀더 해 봐야겠지만, 대부분의 앵글로색슨 마법 공식은 무덤가의 흙이나 두꺼비 눈 같은 걸 언급하지. 유럽에서는 영광의 손(교수형당한 죄인의 왼손을 잘라 의식을 베푼 후, 촛대로 사용한 것)이 자주 나오는데, 죽은 사람의 실제 손일 수도 있고, 악마의 연희와 관련되어 등장하는 환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어. 일반적으로는 벨라도나나 시로시빈(둘 다 환각효과가 있는 식물의 일종)을 먹은 후에 보이는 환영이었겠지. 다른 것들도 있어.”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그런 것들이 블루 리본에 있는 다림질기에 있단 말이지? 세상에, 마크. 주변 800킬로미터 안에서는 벨라도나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데 내기를 걸지. 아니면 어떤 나쁜 놈들이 사형수의 손을 가지고 다니다가 투입구에 떨어뜨린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P167)   

   

“꺼!” 스태너가 소리쳤다. 팔꿈치가 부러지면서 그의 목소리가 꺾였다.

디멘트가 단추를 눌렀다.

맹글러는 계속 소리를 내며 돌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버튼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또 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태너의 팔이 빛을 받으며 팽팽해졌다가 롤이 누르는 압력을 못 견디고 이내 터지고 말았다. 아직 스태너는 의식을 잃지 않고 계속 비명을 질러 댔다. 디멘트의 악몽에 등장했던 모습. 증기 롤러에 눌려서 그림자만 남은 채 평평하게 놀려 버린 사람의 모습이 생각났다.

“퓨즈.......” 스태너가 외마디 소리를 냈다. 몸이 앞으로 끌리면서 머리가 처졌다.

디멘트는 몸을 돌리고는 보일러실을 향해 달렸고, 스태너의 비명이 미친 귀신처럼 그를 뒤따랐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피 냄새가 진동했다.            (P169-170)     

 

“셰리 양. 아직 처녀이신가요?”

그녀는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성찬식을 거행했던 신부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한 대 내리친 것 같은 충격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들고, 깔끔하게 정리된 아파트를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그곳이 갑자기 언약의 장소가 되어 버린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동작이었다. 

“남편 될 사람을 위해서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헌튼과 잭슨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헌튼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생명이 없던 맹글러의 철판과 톱니바퀴, 기어에 악마가 들어가서는 기계에 그 자신만의 생명을 넣어 준 것이다.             (P173)      

그는 헌튼에게 목록을 보여 주었다. 처녀의 피, 무덤가의 흙, 영광의 손, 박쥐의 피, 밤 이끼, 말발굽, 두꺼비 눈.

그 밖에 제2요소로 분류된 대상들이 몇 개 더 있었다.

“말발굽이라.” 헌튼이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재미있군....”

“아주 평범한 물건이지, 사실.....”

“이런 대상들은, 그러니까 여기 적힌 것들 말이야. 폭넓게 해석해도 되는 건가?” 헌튼이 끼어들었다.

“밤에 비슷한 지의류를 발견하면 그걸 밤 이끼로 해석해도 되냐는 거지? 예를 들면?”

“그렇지.”

“그럴 가능성이 있어.” 잭슨이 말했다. “마법의 주문은 종종 모호하고 유연하게 적용되거든. 마법은 항상 창의적인 요소가 들어갈 여지를 남겨 두는 법이니까.”         (P175)     


“그 영광의 손이 걸리기는 해. 그건 진짜 사악한 주문이거든. 마법의 힘도 아주 강하고.”

“그건 성수로도 막을 수가 없는 건가?”

“영광의 손으로 불러낸 악령은 성서도 밥 먹듯이 해치운다는 설이 있어. 그런 일이 생기면 정말 우리도 큰일 나는 거지. 하지만 그건 제쳐 둬도 될 것 같아.”

“좋아, 아무튼 확실한 거지?”

“아니, 그래도 어느 정도 분명하기는 해. 모든 것이 너무 잘 맞아떨어지니까.”       (P177) 

     

블루 리본 세탁소의 유령이 나올 것만 같은 적막 속에서 갑자기 뭔가 퍼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박쥐가 다림질기 위의 절연재에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로 들어가려고 눈먼 얼굴로 날개를 움직여 댔다.

마른기침 같은 소리였다.

맹글러가 갑자기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벨트가 움직이고 톱니바퀴의 이가 맞물리며 돌았다. 무거운 분쇄기가 달린 롤러도 계속 돌아갔다.

놈은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P178-179)      


그가 시작했다. 텅 빈 세탁소에서 그의 목소리가 유령 소리처럼 울렸다. “너희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스스로 성상을 만들지 말지어다. 나는 여호와 하느님이니라....” 침묵 속에 돌멩이처럼 뚝뚝 떨어지던 단어들이 갑자기 기어다니는 듯하더니 세탁소 안이 무덤처럼 차가워졌다. 형광등 아래서 맹글러는 아직 조용했는데, 헌튼은 놈이 조롱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땅이 그것을 더럽힌 죄로 너를 토해 낼 것이며, 너의 앞에 온 나라를 토해 내는 것과 같을지어다.” 잭슨은 위를 올려다봤다. 그는 굳은 얼굴을 들고 손가락을 펴 가리켰다.

헌튼이 성수를 투입구 벨트에 뿌렸다.

갑자기 고문을 당하는 것 같은 강철의 비명이 들렸다. 성수가 떨어진 부분에서 연기가 나면서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맹글러가 다시 깨어난 것이다.

“잡았어!” 잭슨이 커지는 소음 속에서 소리쳤다. “놈이 도망가는 거야.”

그는 다시 성경을 읽었다.                (P181)      

잭슨이 맹글러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놈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마치 진흙탕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공룡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 다림질 기계가 아니었다. 놈은 흐느적흐느적 녹아내리며 아직 변신 중이었다. 550볼트짜리 전선이 떨어지며 파란 불꽃이 튀었고, 롤러 속으로 이내 빨려 들어갔다. 얼마 동안 두 개의 불똥이 희미한 눈처럼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린 눈이었다.           (P182-183)    

  

“맹글러가 마크 잭슨을 죽였습니다. 놈이...... 놈이...... 오, 하느님, 놈이 빠져나왔어요! 빠져나오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오.....” 그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미친 듯 울부짖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했다.

마틴이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려 했지만 헌튼은 거절했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놈이 밖으로 나오기 전에 태워 버려야 해요. 오, 놈이 나오면 어떡하지? 오 세상에, 만약.....” 그의 눈이 깜빡이더니 갑자기 희번덕거리며 돌아갔고, 헌튼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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