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지자체 파산의 날이 온다

by 영현담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빚을 갚지 못해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상황은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깨지기 직전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금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지자체 파산(Fiscal Bankruptcy)'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는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인구 감소와 세수 절벽, 그리고 방만한 재정 운영이 만들어낸 예고된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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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스로 밥 벌어먹지 못하는 지자체: 재정자립도의 허상


지자체의 경제적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지표는 '재정자립도'다. 스스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를 겨우 넘긴다. 하지만 이 평균값은 수도권의 막대한 세수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다.


수도권을 걷어내고 지방, 특히 군(郡) 단위 지역을 들여다보면 처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전국의 수많은 기초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는 지자체가 쓰는 돈의 90% 이상을 중앙정부의 교부세나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말해, 중앙정부라는 부모가 용돈을 끊으면 당장 굶어 죽어야 하는 '경제적 식물인간' 상태다.


더 심각한 지표는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 해결 가능 여부'다. 기업으로 치면 매출을 일으켜 직원 월급도 못 준다는 의미다. 현재 대한민국 기초지자체 중 상당수가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소속 공무원의 인건조차 충당하지 못한다. 주민들이 내는 세금을 모두 털어넣어도 공무원 월급 통장을 채울 수 없는 구조. 이것이 지방자치의 현주소다. 이미 파산 상태나 다름없으나, 중앙정부의 산소호흡기(지방교부세) 덕분에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셈이다.


2. 부동산 거품 붕괴와 세수 절벽의 습격


지자체의 주머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결정적 원인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다. 지방 재정의 상당 부분은 아파트 거래 시 발생하는 취득세와 등록세에 의존해왔다. 지난 수년간 부동산 활황기에는 지방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면서 지자체 세수가 일시적으로 풍족해 보였다. 지자체장들은 이 돈이 영원할 것이라 착각하고 방만한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파티는 끝났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방 부동산 시장은 붕괴 직전이다. 거래가 끊기면서 취득세 수입은 급감했다. 반면,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지자체가 추진하던 각종 관급 공사 비용은 폭등했다. 들어오는 돈은 반 토막이 났는데, 나가야 할 돈은 두 배로 뛴 상황이다.


중앙정부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가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인해 국세 수입이 줄어들면, 필연적으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도 줄어든다. 2023년 이후 정부는 세수 결손을 이유로 지방교부세를 대폭 삭감했다. 자체 수입이 없는 지방 지자체 입장에서는 생명줄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다.


3. '유바리시'의 악몽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시는 2007년 재정 파탄을 선언했다. 탄광 산업의 쇠퇴와 인구 감소, 그리고 관광 리조트 건설 등 무리한 투자 사업이 원인이었다. 파산 이후 유바리시의 풍경은 지옥도와 같았다. 도서관과 시민회관이 폐쇄되었고, 공무원 수는 절반으로 줄었으며, 월급은 40% 삭감되었다. 주민세와 수도요금은 일본 최고 수준으로 폭등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떠나면서 도시는 더욱 빠르게 유령도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지방 지자체들은 유바리시보다 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인구 감소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며, 고령화로 인한 복지 비용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중앙정부가 결정한 복지 정책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가 분담해야 하는 구조(매칭 펀드) 때문이다.


세금을 낼 생산가능인구는 수도권으로 떠나고, 세금을 써야 할 고령 인구만 남은 지방. 들어올 돈은 줄어드는데 고정적인 복지 지출은 멈추지 않는 '가위 효과(Scissors Effect)'가 지방 재정을 난도질하고 있다.


4. 보여주기식 랜드마크와 낭비성 축제: 예산 탕진의 악순환


재정 위기가 코앞인데도 지자체의 예산 낭비는 멈추지 않는다. 과거에는 호화 청사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우후죽순 들어서는 공공 건축물이 재정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인구 3만, 5만 명에 불과한 소멸 위기 지역들이 '주민 복지'와 '도시 재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백억 원짜리 대형 문화센터, 복합 체육관, 정체불명의 기념관이나 체험관을 짓는다.

이는 국비 지원을 타내기 위한 꼼수에서 시작된다. "건물을 지을 때만 국비를 지원해 주고, 다 짓고 난 뒤의 운영비와 수리비는 100% 지자체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단체장들은 자신의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건물을 올려 치적을 쌓고 싶어 하고, 공무원들은 예산을 따오는 실적에 목을 맨다. 그 결과, 이용객은 하루에 열 명도 안 되는데 냉난방비와 인건비로만 매년 수십억 원을 잡아먹는 '하얀 코끼리(돈 먹는 애물단지)'들이 지방 곳곳에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

수익성 없는 붕어빵 축제도 재정 누수의 주범이다. 전국의 지자체 축제는 수천 개에 달하지만, 흑자를 내는 축제는 손에 꼽는다. 대부분은 선심성 예산 퍼주기나 지역 업체 챙겨주기 용도로 전락했다. 텅 빈 테마파크, 관리비만 먹는 박물관, 산속에 덩그러니 놓인 출렁다리들이 전국 산하를 뒤덮고 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건물과 시설물만 늘어나는 기형적인 구조, 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다.


5. 재정 비상사태: '관리단체' 지정이 시작된다


이제 곧 '재정위기단체' 혹은 '재정관리단체'로 지정되는 지자체가 속출할 것이다. 이는 기업으로 치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예산 편성권과 인사권을 박탈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지방 주민들의 삶은 처참해질 것이다. 쓰레기 수거가 지연되고, 상하수도 요금이 폭등하며, 겨울철 제설 작업이 멈출 수도 있다. 보건소의 약품이 떨어지고, 마을버스가 끊길 것이다. 지자체 파산은 단순히 장부상의 숫자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에 사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공공 서비스가 붕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0'을 향해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지방이 소멸하기 전에, 지방 정부가 먼저 부도나는 사태. 그것이 '지자체 파산의 날'이다. 그리고 그날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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