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죽으면 수도권도 무사할까? 곧 날아올 천문학적 '청구서'
서울 강남의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지방 소멸"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경쟁력 없으면 도태되는 거니까요." 그들은 지방의 몰락을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먼 시골의 화재 정도로 여긴다. 나는 세금 많이 내고 잘살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지방이 무너지는 순간, 그 파편은 수도권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것도 '세금 폭탄'과 '비용 청구서'라는 아주 구체적이고 고통스러운 형태로 말이다.
단언컨대, 지방 소멸의 피해자는 지방 사람만이 아니다. 지방소멸로 남은 파편은 수도권 납세자들에게 향한다. 지방이 '소멸' 단계에 진입하면, 대한민국은 수도권이 벌어서 지방이라는 거대한 '요양원'을 먹여 살려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 무게는 수도권조차 침몰시킬 만큼 무겁다.
지방 지자체가 파산하면 어떻게 될까? 문을 닫고 사라질까? 국가는 지자체를 없앨 수 없다. 결국 중앙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경찰, 소방,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 필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 정부의 예산, 즉 교부세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경제 활동을 하는 수도권 기업과 직장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지방의 청년들이 다 떠나고 생산 가능 인구가 사라지면, 지방은 스스로 세금을 걷을 능력을 상실한다. 반면 고령 인구 비율은 50%, 60%를 넘어간다. 의료비와 복지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 '밑 빠진 독'을 채우기 위해, 수도권 거주자의 소득세와 건보료, 국민연금 보험료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내 돈이 지방으로 간다"고 투덜거리는 수준이지만, 10년 뒤에는 "내가 번 돈의 절반이 지방 노인 부양비로 징발되는" 상황이 온다. 지방이 죽으면 수도권은 그 막대한 '사회적 부양 비용'을 감당하다가 같이 말라 죽게 된다.
지방에서 밀려온 인구로 비대해진 수도권 자체도 이미 붕괴 직전이다. 경제학에는 '집적의 불경제(Diseconomies of Agglomeration)'라는 용어가 있다. 모이면 효율이 오르다가(집적 경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비용이 더 커지는 현상이다. 서울은 이미 이 선을 넘었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출퇴근 시간의 낭비, 도로 위에서 태워버리는 기름값, 미친 듯이 치솟은 집값, 그리고 숨 막히는 미세먼지. 이 모든 것이 지방 인구를 서울이 꾸역꾸역 받아낸 대가다.
서울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으니 경쟁이 치열하고, 집값이 비싸니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지방이 인구 댐 역할을 못 하고 서울로 사람을 계속 흘려보내니, 서울이라는 물통이 터져버린 꼴이다. 지방 소멸을 방치한 결과, 서울은 '세계 최저 출산율(0.5명)'이라는 자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것은 지방의 복수가 아니라, 공존을 거부한 수도권의 자멸이다.
수도권 사람들은 마트에서 사 먹는 쌀과 채소가 공장에서 나오는 줄 안다. 하지만 지방 농촌이 붕괴하면 식량 공급망이 끊긴다.
이미 농촌 현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농사 못 짓는다"는 비명이 나온다. 앞으로 지방 인프라가 붕괴되어 농산물 생산과 유통 시스템이 마비되면, 서울 사람들은 지금보다 2~3배 비싼 돈을 주고 배추와 삼겹살을 사 먹어야 한다.
전기와 수도는 또 어떤가? (앞서 12장에서 다뤘듯) 발전소와 댐을 관리할 지방 인력이 사라지면, 유지 보수 비용이 급증하고 사고 위험이 커진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전기 요금과 수도 요금 인상으로 돌아온다. "지방은 지방이고 서울은 서울"이라는 이분법은 수도꼭지와 콘센트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운명 공동체다.
치안 문제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늘어나고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 도시는 범죄의 온상이나 우범 지대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마약 거래, 불법 체류자의 은신처, 폐기물 불법 투기장으로 전락한 지방의 소식은 곧 뉴스를 통해 서울 사람들의 안방을 위협할 것이다.
국가 전체의 치안 시스템이 뚫리면 수도권만 안전할 수 없다. 지방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더 많은 경찰력을 파견해야 하고, 교도소를 더 지어야 한다. 이 또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이다. 방치된 지방은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국가 전체의 안전 등급을 떨어뜨릴 것이다.
지방 의료가 무너지면 지방 환자들은 어디로 갈까? 당연히 KTX를 타고 서울로 온다. 이미 '빅5 병원'은 지방 환자들로 포화 상태다.
지방 의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면, 서울의 대형 병원은 지방에서 올라온 중환자들로 아수라장이 된다. 정작 서울에 사는 응급 환자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는 일이 일상화될 것이다.
"나는 서울 사니까 아프면 바로 병원 갈 수 있어." 이 믿음은 지방 의료라는 방파제가 있을 때나 유효하다. 방파제가 무너진 쓰나미는 서울의 병원 시스템마저 집어삼킬 것이다. 의료 쇼핑이 아니라 '의료 난민'의 시대가 온다.
지금까지 정부와 수도권은 지방 균형 발전을 "불쌍한 동생 좀 도와주자"는 식의 시혜적(施惠的) 관점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낸 세금 떼어서 지방 도로 닦아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인식을 180도 바꿔야 한다. 지방을 살리는 것은 불쌍한 이웃을 돕는 자선 사업이 아니다. 수도권이 비용 폭탄을 맞고 침몰하지 않기 위한, 서울 사람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다.
지방이 무너지면 그 잔해는 서울을 덮친다. 지방의 빚은 서울의 빚이 되고, 지방의 위기는 서울의 위기가 된다. 서울 공화국의 화려한 불빛은 지방이라는 발전기가 돌아갈 때만 켜질 수 있다.
이제 수도권 주민들이, 아니 전 국민들이 먼저 외쳐야 한다.
"제발 우리 세금을 지방을 살리는 데 써달라. 낭비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일자리와 인프라를 만드는 데 써서, 제발 그곳에서 살아달라."
그것만이 파국을 막고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답은 명확하다. 공생(共生)하지 않으면 공멸(共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