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留學)? 아니, 유학(遊學) 바보들에게 고함

화려한 졸업장 뒤에 가려진 냉정한 계산서

by 영현담


나는 열여섯 살, 중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짐을 쌌다. 남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학원으로 향할 때,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낯선 중국 땅에 떨어졌다. 그렇게 10년. 나의 10대와 20대 청춘은 고스란히 타국에서 흘러갔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한국인 학교가 아닌 현지 로컬 학교에서 중국인들과 부대끼며 경쟁했고, 그 덕분에 중국어 하나만큼은 원어민 못지않게 구사하게 되었다.


그때는 믿었다. 이 정도 언어 능력과 10년의 해외 경험이면,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만의 강력한 무기가 될 줄 알았다. 글로벌 기업들이 탐내는 인재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거라 확신했다.


기업들은 나의 10년 중국 생활보다 당장의 '영어 점수'와 '정형화된 스펙'을 원했다. 중국통(通)이 되겠다고 그 고생을 했는데, 한국에 오니 나는 다시 신입생처럼 토익 책을 펴고 영어 점수에 목매는 수많은 취준생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유학파'라는 타이틀은 한국의 견고한 채용 시스템 앞에서 프리패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지방의 한 국립대학 사무실 한편에 앉아 행정 업무를 보고 있다.


예산을 정산하고, 학생들의 민원 전화를 받고, 서류 더미와 씨름한다. 이곳에서 내가 지난 10년간 피땀 흘려 배운 유창한 중국어를 쓸 일은 1년에 단 한 번도 없다. 고득점을 자랑하던 토익 성적표는 입사 서류 제출용으로 딱 한 번 쓰였을 뿐, 지금은 서랍 속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이것이 내가 10년의 시간과 부모님의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얻은 성적표다.


나의 현재 직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자는 것이다. 과연 이 자리에 오기 위해 굳이 10년의 유학 생활과 수억 원의 비용이 필요했을까? 한국에서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준비했어도 충분히, 아니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올 수 있었던 길은 아닐까?


그런데도 내 눈앞에서는 여전히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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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며 매년 마주하는 풍경은 10년 전의 나보다 더 무모하다. 학생들은 취업 현실을 피하기 위해 막연한 어학연수를 떠나고, 졸업생들은 '스펙 한 줄 더 쌓겠다'며 부모님의 소중한 종잣돈을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들의 눈은 희망으로 반짝인다. 미국에 가면, 유럽에 가면, 중국에 가면... 마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거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져 있다.


하지만 '리턴(Return)'한 선배로서 나는 안다. 그들이 몇 년 뒤 돌아와서 마주할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저, 해외 대학 나왔는데요?"


면접관 앞에서의 그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은 냉정하다.


"그래서 현지인만큼 비즈니스 협상이 됩니까? 단순한 번역은 이제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줍니다. 냉정하게 말해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 우리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 역량이 아닙니다.

당신을 대체 불가능하게 만들 '진짜 무기', 예컨대 직무와 관련된 전문 자격증이나 남들은 없는 확실한 기술은 가지고 왔습니까?"


할 말을 잃은 그들의 손에는 수천만 원, 아니 억 단위의 돈을 태워 만든 '졸업장' 한 장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 졸업장은 취업 시장이라는 파쇄기 앞에서 예전만큼의 힘을 쓰지 못한다.


나는 지금 꼰대처럼 훈수를 두려는 게 아니다.


10년을 먼저 겪어본 유학 선배로서,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려는 후배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목격자로서 펜을 들었다.


과거의 '묻지마 유학' 광풍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를 "해외 경험 한 줄 없으면 취업 안 된다"는 불안감과 "한국을 떠나면 낫겠지"라는 막연한 도피 심리가 채우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언어가 실시간으로 통역되는 시대에, 아직도 언어 하나 배우겠다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몽땅 거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이 책은 막연한 환상 대신 냉정한 현실을 전하기 위해 썼다. 내가 10년간 몸으로 겪었던 중국 유학의 명과 암, 그리고 대학 현장과 주변 지인들을 통해 가까이서 지켜본 미국과 유럽 유학의 '진짜 성적표'를 가감 없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자, 이제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계산기를 꺼낼 시간이다.


당신의 유학, 과연 부모님의 노후를 태울 만큼 가치가 있는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