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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끄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by 글꽃향기



04-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거의 매일 산책을 한다. 늦은 저녁 시간을 선호한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일정하게 확보할 수 있는 시간. 저녁 식사 후 집안일을 어느 정도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이 되는 시간.


숨 막혔던 올여름 더위도 나의 산책을 막지는 못했다. 몸 상태에 따라 시간을 조절했을 뿐. 땀으로 얼룩진 옷을 벗어던질 때마다, 피곤함으로 드러누울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희열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아파트 안 산책길을 따라 단지 밖으로 나가면 작은 저류조가 하나 있다. 비가 많이 왔을 때를 대비한 공간이다. 올해 이곳은 풀과 들꽃이 무성했을 뿐, 물이 들어찬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 작은 물 웅덩이라도 있는 걸까? 한동안은 개구리들이 울어댔다.



저류조는 우레탄 바닥과 데크길로 둘러싸여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뱅글뱅글 돈다. 다양한 생명들을 만나기도 한다. 길냥이, 유기견, 너구리, 사마귀, 개구리. 사람의 발소리가 제법 클 터인데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다.



올여름 내내 이 공간은 나만의 것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제법 캄캄해진 시간에도 땀이 흘렀고, 가끔은 현기증도 났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외진 곳을 지날 때면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나만의 산책로여서 참 좋았다.



어느 날, 큰 개 한 마리가 나의 산책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견종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제법 사나운 녀석임엔 틀림없었다. 주인과 떨어진 시간이 얼마 안 된 듯 털빛은 윤기가 났고 제법 활기차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 했지만 나에게로 다가오는 듯했다. 산책로를 벗어나 바깥쪽 인도를 따라 걸었다. 다행히 그 녀석도 방향을 틀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산책을 계속했지만 혹시나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몇 바퀴를 돌았을까? 그 녀석이 다시 맞은편에서 나타났다.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사냥개처럼 보였기에 무서움이 앞섰다.

'아, 안 되겠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동안 나만의 산책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고 있다. 밤낮없이 돌아가던 에어컨도 휴식 시간이 길어진다. 발코니 창을 열어 놓고 자면 새벽 즈음엔 기침이 몇 번 나기도 한다. 참 좋은 계절이다. 산책 시간을 5분, 10분 늘려 본다. 그동안 가지 않았던 나만의 산책로로 향한다.

'이제 그 녀석은 없겠지?'


'앗!!!'


사람이 많아졌다.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

모두들 같은 맘이었겠지.



트랙을 따라 걷는데 걸음 속도가 제법 빠른 남자가 왼쪽 귓가에 '쌔앵~' 소리를 들려준다. 운동을 위해 한껏 갖춰 입은 여자는 달리기를 하며 오른쪽 뺨에 바람을 선물한다. 아이들이 반대편에서 뛰어오며 나를 반기려고 한다. '됐어!' 소심하게 살짝 피해 본다.



배드민턴장에서

"받아!"

"아, 왜 거길로 치냐고!!!!"

"하하하하하"

운동을 하는 건지 싸우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전용 산책로가 사라졌다. 이제는 이웃들과 함께 써야 한다.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이제 사나운 그 녀석이 나타나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05-번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1학기 마지막 날, 두 학생과 헤어졌다. 쌍둥이가 방학 중에 이사를 간다고 했다. 같은 지역이지만 학구가 달라져서 전학을 가야 했다. 모두 아쉬워하며 이별을 고했다.



Unsplash의 Anastasia Pivnenko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1학년과 6학년 추억이 아주 조금 생생할 뿐이다. 나머지 학년은 흐릿한 기억만 몇 가지, 그나마 뒤죽박죽 섞여 있다. 쌍둥이에게 3학년의 기억이 조금 선명하길 바랐다. 작은 선물을 챙겨 주었고, 이별하는 날 살짝 안아 주었다. 예상이 가능한 이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많이 덤덤해졌다.



2학기의 둘째 날, 전학생이 왔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전출입의 경우, 담임의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 학교와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 교과서도 다르고학교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꼭 확인을 해야 한다.



"이 내용이 없네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교는 1학기에 그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 식이다. 때에 따라서는 누락도 있다. 다시 요청을 해야 한다. 확인 과정을 몇 번 거친 후 비로소 업무가 완료된다.



독서록이나 학습장도 나눠줘야 한다. 이름표도 일지도 다시 출력해야 한다. 기타 등등의 동의서도 받아야 한다. 챙길 것이 많다.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피곤한지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존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지속된다 싶어 쉬는 시간에 따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게임하다 잤어요.“

"게임 시간 줄여야겠네. 공부시간에 열심히 하자!"

"네!"



3학년 즈음 되는 아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은 참 귀엽다. 잠들지 않으려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란! 간혹 대놓고 엎드려 자는 고학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긴장한 듯 굳어 있었던 표정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한다. 쉬는 시간에 조용히 (만화)책만 보던 아이는 놀이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미소 띤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자라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다 이해하고, 다 양보하는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조율하는 법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훗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다. 다정하게 건네는 말을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한다.



모둠활동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는 아이, 토라지는 아이, 차라리 난 혼자 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이. 2학기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의견을 조율하고 있고, 서로 양보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아이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수는 조금씩 줄어든다.



모둠활동을 하며 그 아이가 걱정됐다.

'괜찮을까? 겨우 적응하고 있는데, 스트레스 주는 거 아니야?'

잠시 망설였지만 모둠활동은 멈춤이 없다.



엊그제 우는 아이가 두 명 있었던 모둠에서는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적당히 역할을 나누고 있었다. 티격태격하며 나에게 SOS를 쳤던 아이들도 활동을 잘 마무리한다.



갑자기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여서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전학 온 아이였다. 모둠활동이 즐거웠나 보다.

"우리 반 친구들 좋지?"

"네! 좋아요!"

잘 적응하고 있다. 그 아이도 나머지 아이들도 분명 서로를 감싸 안았을 거다.


Unsplash의 Kenny Eliason



혼자만 낯설고 불편한 것이 많을 텐데, 그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텐데 잘 견뎌내고 있다. 나는 번거로움이라는 네 글자를 짊어지고 추가된 일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 아이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한숨 돌린다. 그리고 낯선 환경에 잘 스며들고 있는 아이를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



"번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부정적인 면에 집착하느냐, 긍정적인 면을 떠올리느냐는 오직 내 의지에 달려 있다. 근데 그 의지란 녀석은 간사하기 짝이 없어서 일단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두고 궁시렁대기 바쁘다. 그리고 조금(때로는 아주) 늦게 찾아오는 긍정적인 면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깨닫는다.


“맞다!!!“

나의 간사한 고 ‘의지 녀석’에게 다시 꿀밤을 쥐어박아 본다.




"그렇게 반복하며 또 오늘을 살아간다."



Unsplash의 Emma Si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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