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끄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꽃향기 Nov 10. 2024

참새들이 토실토실해요.

우리 모두는 어우러져 살고 있다.



"여기 참새들, 엉덩이가 참 토실토실해요."


"우리 학교 참새들, 날아오르는데 시간 걸리는 거 알죠?"


 출근길, 주자창에서 만난 부장님이 건넨  한두 마디에 까르르 웃음바다가 되었다. 맞다, 어느 순간부터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우렁차졌다 싶었다. 우리 학교 참새들은 행동이 참 굼뜨다 생각했다. 주차장에서 교실로 향하는 길에 귀요미들이 내 눈앞을 가로질러 날아가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거짓말 아주 조금 보태서 부딪힐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  '학교에선 괴롭히는 이들이 없어 얘들이 참 마음이 편한가 보다' 생각했었다.




 올해 벼농사 체험 프로그램이 실시되었다.  정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통학로에  학급당 두 개씩 배정된 고무 대야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몇 학년 몇 반이라 쓰여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시로 나와 관찰하고 물 양을 확인하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주무관님들께서 돌봐 주시는 것을 그저 묵묵히 바라봤을 뿐이다.




 지난 5월 초, 모내기 체험이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벼를 한두 그루씩 받아 대야통 깊숙이 심어 넣었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삐뚤빼뚤 심어진 벼는 아마도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로 다시 자리잡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그러고는 휑하니 남겨진 고무 대야들, 아이들도 나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출근길에 눈길을 잠시 주었을까? 그도 벼를 봤다기보다 대야통 주변에 물을 마시러 온 새들에게 관심을 두었을 뿐이다. '너희들, 이 대야 덕분에 별 노력 없이 물을 마시는구나!' 생각하며 말이다.




5월, 고사리 손으로 모내기를 하다.





 출근길엔 하루 일과를 준비하자 생각하며 급하게 교실로 향했고, 퇴근길엔 집에 가서 할 일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다. 아주 가끔 잠깐의 눈길로 초록잎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2024. 08.02. 사진첩의 기록



 지난 여름방학에는 보충 지도가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수업을 진행했다. 이미 숨 막히게 더웠던 8시 전후의 시각, 주차장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길에 고무 대야통 안에서 반짝이는 어떤 존재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설마, 저 아이들이 낱알일까?’ 그 더운 여름에도 아주 예쁜 구슬을 알알이 꿰어 놓고 있었다. 당시 내리쬐던 눈부신 햇살 때문이었을까? 초록의 구슬들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아름다웠고 찬란히 빛났다.









 과연 이 허수아비는 누가 만든 걸까? 허수아비의 옷에는 당당하게 '도시농부'라고 쓰여 있었다. 물을 대 주시느라 그리고 대야 안, 벼 성장에 불필요한 존재들을 걸러 주시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어떤 분의 솜씨였겠지? 나름 농사의 분위기를 내고자 발휘해 주신 깨알 같은 센스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2024. 08. 27. 사진첩의 기록




 8월 초 확인했던 초록빛 어여쁜 구슬들은 서서히 색을 바꾸어 가고 있었다. 그 더웠던 여름을 잘 이겨내고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출근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아이들에게 전했어야 했는데, 교실에 도착해서 일과를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더 자주 대야통의 생명체를 가까이서 만났기를.



2024. 10. 31. 사진첩의 기록



 그로부터 두 달 후, 벼는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나는 역할을 다 해냈다고, 나의 생을 알만큼 알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와중에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낱알들, 우리 학교 새들의 잔칫상이 거하게 차려져 있었다. 언제부터 잔치가 시작되었는지 관찰력과 집중력이 부족한 나는 알 길이 없다. 사진첩 역시 부장님이 건네주셨던 유쾌한 몇 마디가 아니었으면 열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8월 초와 8월 말, 고무 대야 속 존재를 의식하며 남겨놓은 두 장의 사진을 찍은 것이 내가 한 전부였다.




2024년 11월 초 어느 날 사진첩의 기록




11월의 어느 날, 한 시간 동안 벼 수확 체험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은 벼를 탈곡기에 대 보았고 낱알이 분리되는 것을 확인했다. 낱알을 맷돌에 넣고 갈아도 보았다. 떡집에서 미리 주문해 놓은 떡을 떡메로 쳐 보았다. 그리고 뻥튀기를 먹으며 투호, 굴렁쇠 굴리기, 고리 던지기 등 전통 놀이를 체험했다. 전날에는 벼 줄기를 잘라 관찰하는 시간도 가졌다. 도심에서는 이런 경험이 쉽지는 않을 테니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겠지.




벼 수확 프로그램이 끝난 후의 고무 대야통의 모습



"나도 이전 학교에서 벼농사 담당했었잖아요. 저게 얼마나 하는 일이 많은지 몰라요. 모내기하는 날과 수확하는 날, 아이들은 2일 동안 행사에 참여할 뿐이지만 담당자는 일 년 내내 신경을 써야 해요. 자매결연 맺은 농촌과 연락을 해야 하고, 주의 사항을 들어야 하고, 일정을 잡아야 하고요. 아이들에게 벼 줄기 관찰하라고 지퍼백 나눠 줬잖아요? 지퍼백이랑 스티커 주문하고, 그거 붙이고, 배분하고. 쌀 과자 주문해야 하고, 떡집에 미리 부탁해서 그 시간에 갖다 달라고 해야 하고. 끝날 때까지 신경 쓸 게 정말 많아요."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으면 담당자의 일이 무엇인지, 얼마나 고충이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것도 2일간의 체험 프로그램이 전부이기에 세세한 사항을 알지 못했다. 비교적 작은 이 공간에서도 말이다.



 업무 담당자와 주무관님들께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동안 나는 아름다운 초록빛 보석알을 사진에 담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모내기다 벼 수확이다 체험을 하며, 뻥튀기와 쌀과자를 입에 넣으며, 급식 시간에 인절미를 디저트로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프로그램 계획에는 없었겠지만 더불어 우리 학교 참새들도 배를 단단히 채웠고 말이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공간이,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전체가 그러하겠지. 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나는 그 일들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고. 그 일부를 가지고 세상만사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진 않았는지,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내 일만 힘들다 하며  불만을 터트리기 전에  동료들의 고충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기를,  친분이 없는 동료라도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단순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고생 많으셨습니다!'





  벼농사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참새와 까치는 운동장 바닥에 부리를 갖다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을 이유는 특별히 없을 텐데, 아마도 벼 수확 체험이 끝난 후 운동장에 떨어진 낱알을 보물찾기 하듯 쪼아대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학교라는 공간에 머물면서 벼 낱알을 맛보기는 쉽지 않을 텐데, 너희들도 덕분에 파티를 하겠구나!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또 이렇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유난히 토실토실한 그래서 날아오르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우리 학교에 머물고 있는 참새들아, 덕분에 깨달았어! 고맙다. 지금 열심히 먹고 있는 벼 낱알이 너희들의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길, 그리고 혹시 남는 낱알이 있으면 추운 겨울을 위해  어딘가에 잘 저장해 놓기를 바라!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북을 삭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