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보는 가치 있는 눈을 기르는 방법
미술 작품을 본다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요즘에는 시각이 아닌 다양한 감각으로 작품을 경험하는 일이 많이 늘어났지만 오랜 시간 ‘시각’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이다. 그러니 "본다"라는 행위부터 출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미술을 보는 행위의 첫 번째는 색, 선, 형태, 질감, 크기 등 시각적인 요소들을 만나는 것이다. 작품의 형식적인 요소 중 무엇이든 내 마음을 끌어 발걸음을 잠시나마 멈추었다면, “뭐지?”라거나, "예쁘다, 귀엽다. 즐겁다. 기분 나쁘다. 슬프다, 웃기다" 등과 같이 어떤 느낌이 떠오를 수 있다. 물론 불편하거나 언짢은 감정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다 작품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작품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들이 본인만의 상상력과 만나는 순간이 생길 것이다. 막연히 떠오른 어떤 상상들은 점차 구체적인 어떤 "사건"과 연결된다. 역사적 사건이나 중요한 사회문제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을 달궜던 가십이나 꼴 보기 싫은 직장동료, 혹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흑역사 일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은 점점 서로 연결되어 차츰 자기만의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나만이 느끼는 생각이나 감각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반복되는 것이 작품을 보는 것이다. 인생경험도, 축적된 기억의 질이나 양도 그리고 지식도 다르기에 작품에 대해 드는 생각도 모두 다르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 시대적 배경이라는 지식이 더해져 작품을 해석하고 세상과 연결하는 차원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형성된 나만의 해석은 타인과의 차이를 경험하게 하고 세상에 있는 많고 많은 다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작품의 가치가 관람자의 가치관과 서로 상호작용함을 알아보고 해석의 방법을 살펴보자.
작품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중세에는 민족 간의 전쟁 등에 따라 왕권이 쇠퇴해 기독교를 중심으로 교황의 권력이 강했다. 이때의 미술은 신과 절대자를 상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며, 신의 존재와 말씀을 어떻게 잘 전달하는 가에 가치를 두었다. 이 시대에는 오직 하나의 관점만이 강제되었고 오로지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만 그렸다. 누가 얼마나 잘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림을 보며 신의 존재를 느끼고 신의 말씀을 믿으며 신에게 가기 위해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니 당연히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크게, 중앙에 그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의 기독교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가치를 발견하고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3차원의 세계를 완벽한 비례와 구도로 2차원의 화면에 재현하기 위해 해부학과 원근법이 발달했다. 개인이 부를 축적하고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면서 그림을 사고 파는 행위가 생겼고 정물화, 풍경화도 그려졌다.
근대에는 과학기술이 발달은 "속도"의 가속화를 가져왔고, "본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걸을 때 풍경을 보는것과 기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볼 때 속도의 감각과 보이는 것에 대한 느낌을 비교해 보라. 또한 카메라의 발명과 개인에 대한 자각, 휴대용 물감의 상용화는 회화의 방법과 주제에 대해 탐구 하도록 했다. 회화 본질에 대한 새로운 탐구는 '그리는 것'에서 '표현하는 것'으로서의 회화 세계를 열었다.
그렇다면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좋은 작품을 보는 눈은 어떻게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많이 볼수록 좋은 작품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은 길러진다. 서두에 말한바와 같이 작품앞에서 발걸음이을 멈추고 계속 작품을 보다보면 작품 앞에서 무슨 생각이 나더라도 나게 된다. 그것이 작품과의 대화다. 나의 감정상태에 따라서, 작품 관람 시간에 따라서도 작품은 다른 말을 한다. 한 작품을 오래 바라본 적 있는가? 같은 전시를 두번 본 적이 있는가? 혹시 아직 없다면 앞으로 한 번 쯤 경험해 보길 권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작품들을 많이 자주 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게 된다. 취향은 가치관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미술작품에 내재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몫이다. 좋은 작품은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생각나는 그런 작품이다. 언젠가 봤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쳤던 작품이 어느 다른 날 나의 인생작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본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에 따라 태도와 관점이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가치관은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고 전세 월세를 올릴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작품은 작가에게서 탄생되지만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통해 관람객을 만나며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생겨난다. 감상자가 가진 제 각각의 상상력이 작품이 담고 있는 레이어와 만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기르게 된다. 물론 미술사와 미술이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작가들은 그 이전의 작품들을 넘어서려거나, 이전의 작품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하거나 이전 작품을 차용, 오마주, 패러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에 대한 공부는 작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의미를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즐거움이 더해진다는 것이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에 대한 지식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작가라는 한 인간의 인성과 사유,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작품에 입혀 세상과 작품을 긴밀하게 연결하기도 한다. 따라서 때로는 미술이론보다 오히려 작품의 제작배경이나 동시대의 세계정세, 혹은 그것을 초래한 역사의 지식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가치 있는 작품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본인의 가치관을 생각해 보고 취향을 찾아야 한다고 앞서 언급했다. 많이 자주 보는 것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본인의 마음에 작가가 들어왔다면 작가의 작업세계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작가의 작업에서 어떤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지, 주제를 위해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지, 지속적으로 하나의 맥락 안에서 자신의 작품이 세상과 관계 맺도록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또한 어떤 전시에 참여하는지 작품은 디에서 소장하고 있는지와 같이 작품세계와 함께 작가의 행보도 관심 가져야 한다. 갤러리를 꾸준히 다니다 보면 어느 날 갤러리에서 본 작가가 미술관이라는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미술관에서 본 작품이 어느 날 미술시장의 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