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가게가 오밀조밀 모인 골목길 투어에 참여했을 때다. 호주 여행에서 만난 언니와 세 명의 처음 보는 사람들,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둘러싸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따스한 미소를 짓고, 동화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어떤 꿈을 품고 사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갈 때였다.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저마다의 소망을 공기로 불러내었을 때, 마치 온돌방의 열기가 스며든 것 같았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지친 눈빛과 서로를 불쾌해하는 모습이 주된 원인이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도 그들과 같은 모습이 휴대폰의 검은 화면에 비치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동화는 쉬이 일어난다.
색이 탁한 초승달이 눈 아래 자리를 잡고, 손안에 검은 화면이 반복될 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친구들은 사랑이 가득하고 따뜻하다. 맑은 눈동자들이 모인 밤은 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행복이 차오르고,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동화는 쉬이 일어난다.
친구들이 내게 그랬듯, 사람들에게 밝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면 어떨까? 흔히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여 부르는 ‘소확행을’ ‘소소하게 확산되는 행복’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고, 또 그가 주변 사람들에 전달하면 모두가 행복질 수 있다. 동화는 쉬이 일어나니까.
“효진 님은 꿈이 뭐예요?”
“저는 매일매일 다르게 살고 싶어요.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새로운 나날을 보내면 시간이 천천히 간다고 느낀대요.”
“예를 들면 어떻게요?”
“음... 지금 기획하고 있는 아주 작은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요. 조금은 하찮을지 모르지만 ‘저자에게 책값 돌려주기’입니다. 평소 새 책보다는 중고 책을 구매하는 편이에요.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환경에 해를 덜 끼치고 싶어서요. 그런데 중고책은 작가님에게 저작권료가 돌아가지 않아요. 저렴하게 산 만큼의 값을 돌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생각하며 고른 선물을 드리거나, 함께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요. 마침 좋아하는 작가님께서 다음 주 어느 행사에 사회자로 오신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때다 싶어 바로 예약했어요. 끝나고 말씀드려보려고요!”
“이전에도 이런 프로젝트를 한 적 있나요?”
“음... 작년 12월 31일에 친구랑 집에 누워있다가 문득 이웃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새해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심지어 새해 인사를 잘 보내지도 않는데 말이에요. 집에 있는 엽서와 스티커, 펜 등 문구류를 총출동시켰어요. 친구와 15개쯤 적어 아무도 모르게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우편함이 90개 정도 있어 무작위로 꽂았었어요. 옆집과 앞집은 옆집과 앞집이니 넣었고요.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에 들어와 친구랑 주저앉아 웃음을 마구 터뜨렸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이야기를 글로 써서 공모전에 냈는데 며칠 전에 당선됐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입선이긴 하지만 뜻밖의 결과라 놀랐어요. 계속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싶었습니다.”
“우와...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너무 따뜻해”
“다른 세상 얘기 같아요”
두 번째 혹은 첫 만남이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돼 말을 마치고 사람들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약간은 벙찐, 포근한 미소가 번진 얼굴이었다.
예상치 못한 저작권료를 받을 작가님도, 얼굴도 모르고 사는 이웃들이 당황하면서도 웃을 생각에 괜스레 뿌듯하다. 그들은 내 마음을 이야기에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몇몇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일매일 다르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울한 일들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도 곧바로 내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또, 글로 써서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발을 달아준다면 내가 잠든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읽고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꿈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에 모두가 동화되는 것, 우리가 같은 꿈을 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