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으로 집에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평소에 구독 중인 퍼블리, 폴인, 리디셀렉트로 칼럼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지속되니, 자연스럽게 동영상 스트리밍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를 결제하게 됐다.
세상에 볼 콘텐츠는 너무나 많고 내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나는 영상을 볼 때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콘텐츠인가?'라는 질문에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그런 콘텐츠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다.
작년부터 '넷플릭스 볼 거 없어 병(Netflix nothing to see syndrome)'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한 번에 몰두하는 영상을 찾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름 몇 개월 동안 깨알 같이 찾아낸 넷플릭스&왓챠플레이 다큐멘터리 6편을 소개한다. 콘텐츠마다 주관적으로 별점을 매겼다.
★★★☆☆
넷플릭스 2020년 신작인 <100인 인간을 말하다(100 humans)>는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인지 심리 다큐멘터리다. 매력, 인생 최고의 나이, 성별의 의미, 편견, 당근과 채찍, 행복해지는 법, 감각 등을 주제로 인종과 성별, 나이가 다양한 미국인 100명을 실험에 참여시킨다.
춤을 잘 추는 남자는 정력이 세다, 인간은 어떤 나이에 가장 유능할까, 노인과 청년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을까 등 독특한 주제로 실험을 하는데 예상을 벗어난 결과들도 매우 흥미롭다. 각 에피소드도 40분 내외라서 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간혹 보다 보면 생각한 것보다 진지하거나 제대로 통제된 상황에서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일반화하기 어려운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도 있다. 실험 결과를 재미로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
넷플릭스 화제작 <인사이드 빌 게이츠>의 1편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시간은 그분이 유일하게 더 사지 못하는 상품이에요. 제한적인 자원이죠. 우리와 마찬가지로 24시간밖에 없어요.’ 억만장자 빌 게이츠가 유일하게 살 수 없는 유한한 자원인 시간, 그 시간 동안 빌 게이츠는 어떤 생각을 하며 품고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개발도상국 위생 문제에 해결하고자 하는 빌 게이츠의 노력, 빌 게이츠에게 영향을 준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립자 폴 앨런, 지구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를 위해 해결책을 찾고 싶은 그의 절실함을 총 3부로 만나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보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게 중요한 지, 더 나아가 세상이 필요하는 건 무엇인 지 정확하게 아는 빌 게이츠. 그가 추구하는 대담한 목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익한 다큐시리즈다.
★★★★☆
디자인은 영역을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일상 곳곳에 영향을 준다.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다큐멘터리다. 앱 스트랙트는 시즌 1과 시즌 2로 구성된다. 각 시즌을 대표하는 카테고리만 보더라도 디자인의 범주를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
일러스트레이션, 신발, 무대, 건축, 자동차, 그래픽디자인, 사진, 인테리어, 의상, 장난감, 타이포그라피
<앱 스트랙트>를 보면서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창출하는 디자이너들이 일상을 새롭게 파고드는 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삼성 미술관 리움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시로도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올라퍼 엘리아슨이 말한 대사도 인상 깊다.
“그는 세상이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해요.”
앱 스트랙트는 하나의 에피소드 당 40분을 넘는 꽤 긴 러닝타임이다. 만약 전체 시리즈를 시청하기 부담스럽다면 일러스트레이션 크리스토프, 나이키 신발 디자이너 햇필드, 올라퍼 엘리아슨의 세상을 보는 예술, 조너선 헤플러의 글자체 디자인 4편을 먼저 보길 추천한다.
★★★★☆
세계 5대 도서관이자 뉴요커들에게 사랑받는 뉴욕의 명소인 뉴욕 공립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을 담은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총 92개의 분점으로 이루어진 뉴욕 공립 도서관의 살아 숨 쉬는 철학, 문화, 지식, 강연을 12주간 기록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Who will benefit most from the data economy?> 기사를 통해 데이터 경제가 성장할수록 데이터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이야기한다. 깊이 생각해보면 데이터뿐만 아니라 기존에 해결해야 하는 정보의 불평등은 어떤가? 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식과 정보를 모두에게 분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인 '도서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고 지적 자산으로 필요한 존재다.
영화에서는 사회 공헌을 위한 사서들의 회의, 100년 간 축적된 그림 아카이빙 자료들, 도서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 도서관에서 출생과 관련한 정보를 찾는 사람 등 도서관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도서관을 통해 사람을 보여주고, 뉴욕을 투영하고 시대와 지성을 함께 이야기하는 고급 다큐멘터리다.
+3시간 20분의 러닝 타임 때문에 별 하나를 뺐다. 길지만 느긋하게 보면 좋을 다큐다.
★★★★☆
앞으로 세상은 덕후가 바꾼다는 말이 있다. 덕후는 덕질하는 요소에 끊임없는 집중을 하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덕질에 투영한다. 영화 <캘리포니아 타이프라이터>는 타자기와 사랑에 빠진 덕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톰 행크스, 존 메이어, 샘 셰퍼드와 같은 여러 예술가들이 덕후로 출연하는 점도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아이패드와 노트북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자기는 세상에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빠르게 경쟁하는 시대에서 타자기로 고치고 쓰고 기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창조성과 기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타자기는 결국 필름 카메라, 연필, LP판과 닮아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슬픔은 또 다른 예술적 요소를 만들고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도 타자기가 물성을 넘어 예술로 인지될 수 있도록 감각을 이끌어낸다.
★★★★★
마지막 추천 콘텐츠는 매우 주관적이고 사심 가득한 콘텐츠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케터로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미드 실리콘밸리다. 미국 HBO에서 제작했으며 현재 시즌 6편까지 완결되었는데 왓챠플레이에서 시즌 1부터 4편까지 시청할 수 있다.
코딩만 할 줄 아는 프로그래머 리처드 헨드릭스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투자자들로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고 그는 얼떨결에 스타트업 CEO가 된다. Pied Piper(피리 부는 사나이)는 데이터 압축 소프트웨어 사진, 음악, 영상, 3D를 포함한 파일을 데이터 손실 없이 빠르게 압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드라마를 통해 IT 벤처 업계 현실을 꽤나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에피소드를 통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CEO, 심사역, 개발자, CTO, COO 등 다양한 역할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유망한 기술을 개발하는 똑똑한 팀원들이 좋은 팀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치열한 실리콘밸리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재미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