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빛내기 위한 글.
중학교 졸업식 날, 아이가 선생님께 받은 편지를 식탁 위에 올려놨다. 엽서크기 만한 종이 한 면에 손글씨가 빽빽이 채워져 있었다. 아이의 눈치를 쓱 살피고 편지를 슬쩍 집어 들고 읽었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음을 그리고 아이의 앞날을 축복하며 올곧게 커나가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편지에 무척 감동받았다.
"뛰어난 열정과 능력을 '나 스스로를 가꾸는데' 쓰지 않고 전체 사회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머리를 쓰는 학자가 되는데 썼으면 좋겠어. '나만을 가꾸는 지식인'은 영광을 이루어낸 후 공허함이 남지만, '사회를 생각하는 지식인'은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분명히 이루어낸다는 것을 기억하렴. 2년 동안 학구적인 00 이와 투닥대며 수업할 수 있어서 참 영광이었어. 안녕, 000!" (선생님의 편지 중 일부 발췌)
2026년 3월 3일.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지라 이제 자주 볼 수 없으니, 훌륭한 삶의 지표가 될만한 글을 아이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아이가 마음속에 평생 간직하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되새기며 힘을 얻고 아빠를 추억하는 그런 글말이다
그런데 쓰다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썼다.
식상한걸, 다시 썼다. 논설문 같군, 다시 썼다. 이 글은 감동이 없잖아. 다시 썼다.
한 달이 지났고 여전히 아이에게 전해 줄 훌륭한 글은 완성되지 않았다. 며칠 뒤면 집을 떠나니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자세를 가다듬고 책상에 앉았다. 그러다 문득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좋은 글이란 글쓴이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 진솔함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는 티셔츠의 밑단을 잡아 눈가로 끌어올려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찍어 내며 본 글들은 돌덩이처럼 딱딱한 마음을 한 순간에 쪼개고 깨트리는 힘이 있는 글들이었다.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
글쓴이의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담백하고 진솔하게 글에 담겨 있기 때문일까?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소설 쓰는 A의 일상] #8 좋은 글을 쓰고 싶다'의 내용 중 일부 발췌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써주신 손 편지를 읽었을 때의 감동이 새삼 더욱 깊이 느껴진다. 그 글이 훌륭한 까닭은 선생님의 진솔한 마음이 편지에 그대로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달, 나는 누구나 보면 감탄할 만한 유려하고 혜안이 담긴 문장들로 꽉 찬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그 아름다운 문장을 쓴 내가 칭찬받고 빛나고 싶었으리라. 그 욕심을 내려놓으니, 아이가 집을 떠나 기숙학교로 가는 날 다음과 같은 짧은 문장이 적힌 쪽지를 슬며시 전해주면 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