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천장에 붙은 김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늦은 저녁이었다. 소파 앞 조그만 탁자 위에는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쌓여있었고 거실 한편에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한 운동 기구에는 빨지 않은 옷가지들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축 걸쳐져 있었다. 황급히 나오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샐러드와 고구마가 윤기를 잃은 채 시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얼마 전 마트에서 사 온 조미김이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김 한 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 바다 향과 짭짤함 그리고 약간의 쌉쌀함 마저 느껴졌다. 식욕이 돌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자처럼 부서진 김이 침과 섞이면서 진득해져 입천장에 그대로 들러붙어 버린 것이다. 이물감에 식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기분 나쁜 이물감을 해소하기 위해 혀끝에 힘을 주어 입천장을 필사적으로 긁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혀의 그 격한 놀림에 김은 더욱 단단히 입천장에 붙어 버렸다. ‘젠장!’ 밀려오는 짜증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입안 구석구석 이리저리 혀를 돌려본다. 목젖 가까운 곳의 입천장. 연구개라고 하는 곳. 주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랑니를 타고 올라오던 혀끝에서 부어 있는 잇몸도 느껴졌다.
‘어! 이거 뭐야?’ 입을 벌리고 거울에 입안을 비춰봤다. 사랑니 주변으로 벌겋게 부은 잇몸이 보였다. 입을 더 크게 벌렸다. 어금니에 검은 실선도 보인다. 입천장에 붙은 김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것들이다. 하지만 부어 오른 잇몸과 충치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안 곳곳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혀는 이내 다시 검은 침략자를 세차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실랑이 끝에 부드러운 혀로는 도저히 이 무례하고 강력한 검은 침략자를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검지를 입안 깊숙이 집어넣어 입천장에 대었다. 손끝을 까딱하자 마치 검은 피부 같았던 김이 너무나도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치매가 점점 심해진다고 했다. 내일 당장 처리해야 하는 회사일도 스쳐 지나갔다. 잠시 뒤 온갖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러다 문득 조금 전 가까스로 띠어낸 입천장의 김이 떠올랐다. 입천장의 김은 나의 온 신경을 잡아끌어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건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입천장의 김과 같은 사건들을 수없이 겪을 것이고 나는 또 그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 헛되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