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A의 일상] #15 입천장에 붙은 김

입천장에 붙은 김

by 이돌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늦은 저녁이었다. 소파 앞 조그만 탁자 위에는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쌓여있었고 거실 한편에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한 운동 기구에는 빨지 않은 옷가지들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축 걸쳐져 있었다. 황급히 나오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샐러드와 고구마가 윤기를 잃은 채 시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얼마 전 마트에서 사 온 조미김이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김 한 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바삭. 바다 향과 짭짤함 그리고 약간의 쌉쌀함 마저 느껴졌다. 식욕이 돌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자처럼 부서진 김이 침과 섞이면서 진득해져 입천장에 그대로 들러붙어 버린 것이다. 이물감에 식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기분 나쁜 이물감을 해소하기 위해 혀끝에 힘을 주어 입천장을 필사적으로 긁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혀의 그 격한 놀림에 김은 더욱 단단히 입천장에 붙어 버렸다. ‘젠장!’ 밀려오는 짜증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입안 구석구석 이리저리 혀를 돌려본다. 목젖 가까운 곳의 입천장. 연구개라고 하는 곳. 주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랑니를 타고 올라오던 혀끝에서 부어 있는 잇몸도 느껴졌다.


‘어! 이거 뭐야?’ 입을 벌리고 거울에 입안을 비춰봤다. 사랑니 주변으로 벌겋게 부은 잇몸이 보였다. 입을 더 크게 벌렸다. 어금니에 검은 실선도 보인다. 입천장에 붙은 김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것들이다. 하지만 부어 오른 잇몸과 충치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안 곳곳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혀는 이내 다시 검은 침략자를 세차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실랑이 끝에 부드러운 혀로는 도저히 이 무례하고 강력한 검은 침략자를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검지를 입안 깊숙이 집어넣어 입천장에 대었다. 손끝을 까딱하자 마치 검은 피부 같았던 김이 너무나도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일상에서 또는 회사에서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안절부절했던 일들은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허무하게 떨어지는 김처럼 손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늘 최악의 결말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일까.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는 노자의 말을 보고, 무릎을 탁 치며 그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단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식이 곧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깨달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입천장의 김과 같은 별일 아닌 일들을 수없이 겪을테고 그 별일 아닌 일에 온 신경이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힐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그런 순간들이 차곡 차곡 쌓여 세상은 내가 생각한 최악의 결말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지식'이 '경험칙'이 되어, 언젠가 평안한 얼굴로 현재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내일은 썩은 어금니와 부어 오른 잇몸을 치료하기 위해 치과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