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단편소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by 이돌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고작 열 살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죽음이었다.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집은 적막했다. 그 적막함을 견디기 힘들어 남자는 부러 부산하게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 냈지만 그때뿐이었다. 집안으로 든 늦은 오후의 햇살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세를 잃어가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집은 점점 어둠에 휩싸여 갔다. 남자는 서재로 갔다.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고 머리는 바닥에 댄 채 목이 쉬어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내가 다가와 남자의 등을 감싸 앉으며 흐느꼈다. 남자와 아내는 어둠이 짙게 깔린 그 작은 방에서 그렇게 웅크린 채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

아이가 죽은 지도 일 년이 지났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는 점점 어려워졌다.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회사가 팔릴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그런 소문이 돌 때면 늘 남자를 위축시켰다. 사장이 남자를 불렀다. 사장은 방으로 찾아온 남자에게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다고 한참을 얘기했다. 사장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싶더니 다음에 얘기하자며 남자를 그만 나가보라고 했다. 퇴근 무렵 술이나 한잔 하자며 김 부장에게 연락이 왔다. 김 부장은 남자와 나이가 같은 회사 동료였다. 회사를 마치고 김 부장이 앞장서서 남자를 데리고 간 곳은 술과 여러 종류의 전을 안주로 파는 집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김 부장은 소주와 모둠전을 시켰다. 간단한 반찬과 소주가 먼저 식탁 위에 차려졌다. 김 부장은 소주를 잔에 따르며 요즘 회사 분위기가 안 좋아 걱정이라고 했다.

“내일 사장이 얘기 좀 하자는데. 참.”

“오늘, 사장이 부르더라.”

“그랬어? 뭐래?”

“회사가 어렵데. 그러더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남자가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문이 맞나 보네. 젠장.” 남자의 말에 김 부장은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는 소주잔을 식탁 위에 탁 하고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자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소주를 쭉 들이켰다. 김 부장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샀다.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겨울바람이 남자의 얼굴을 매섭게 할퀴며 지나갔다. 바람에 눈이 시려서인지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필이면 왜......’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아이가 죽고 나서부터 하늘을 노려보며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남자는 가슴 깊숙이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하늘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집은 조용했다. 아이의 죽음 이후로 아내는 말수가 부쩍 줄었다.

“늦었네. 식사는?” 소파에 무릎을 올리고 앉아 있던 아내가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했어.”

“피곤하겠다. 얼른 씻고 쉬어.”

“당신은 오늘 어땠어? 약은?”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이었다.

“괜찮았어. 약은 먹었고. 물어봐줘서 고마워.”

얼마 전 사십 중반의 나이에 폐경 진단을 받은 아내였다. 남자는 불쑥 아내에게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떠냐고 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아내의 반응을 무시하고 집 앞에 스포츠댄스 학원이 생겼다며 전단지를 내밀었다. 아내는 전단지를 힐끔 보고는 남자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내는 전단지에 인쇄된 빨간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스포츠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아내는 빨간색을 유난히 좋아했다. 옷, 구두, 액세서리, 립스틱, 속옷 중 무조건 한 가지는 빨간색이었는데 한때는 아내의 친구들 사이에서 아내가 착용하고 있는 빨간색 아이템을 찾는 것이 놀이였던 적도 있었다. 그랬던 아내가 더 이상 빨간색으로 된 것들을 찾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내려 마시던 커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던 요가, 취미 생활로 시작해 작품 전시회까지 할 정도로 열심히 한 그림 등 아내는 자신이 좋아했던 것들을 끊었다. 모든 일에 정열적이었던 아내는 매서운 추위에 꽃잎이 떨어지고 거친 바람에 꽃대는 꺾여 예전의 싱그러움과 생기를 잃어버린 장미처럼 볼품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죽은 이후부터였다.

얼마 뒤에 택배 상자가 왔다. 학원을 등록하자마자 주문한 빨간색 새틴 드레스였다.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다 포장을 풀었다. 거울 앞에 서서 번질번질 윤이 나는 드레스를 자기 몸에 슬며시 대보고는 남자를 향해 몸을 틀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예쁘네.” 남자가 짧게 말했다.

*****

회사는 여느 때와 같았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 의자, 3단 서랍장, 모니터, 컴퓨터, 전화기가 늘 있던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각종 문구류 등은 책상 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간단한 메모를 적어 놓은 포스트잇은 모니터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다. 오후가 되자 사장이 남자를 불러 명예퇴직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가 곧 팔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원 감축이 있을 텐데 조금이라도 조건이 괜찮을 때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남자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방을 나왔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김 부장이 남자를 끌고 휴게실로 갔다.

“사장이 뭐래? 명예퇴직?” 김부장은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남자에게 다급히 물었다.

남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도 그러더군. 제길.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얘들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

김 부장은 자식 이야기를 꺼내고는 아차 싶었는지 남자의 눈치를 슬쩍 보며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남자는 김부장의 마지막 말은 못들은 척 무심히 말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나왔지. 몇 년은 더 다닐 줄 알았는데. 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

남자는 그 뒤로도 한동안 김 부장의 넋두리를 들어야 했다. 퇴근길. 남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빠아앙.’ 커다란 트럭이 경적을 길게 울리며 남자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남자가 고개를 들어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보니 빨간색이었다.

“야 이 새끼야. 죽고 싶어?” 트럭 운전수가 창문을 내리고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인도로 돌아온 남자는 속도를 서서히 올리며 달려가는 트럭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 서 있었다.

*****

아내는 스포츠댄스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수가 많아졌고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횟수도 늘었다. 남자는 그런 아내를 보며 다행이다 생각했다. 학원에 다닌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즈음 아내가 소주를 들고 남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술 한 잔 할래?”

“별일이네”

연애할 때도 얼굴이 벌게지는 게 싫다며 술자리를 갖지 않았던 아내였다. 아내가 주는 술을 받았고 이어서 아내에게도 술을 따라줬다. 아내는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뜬금없이 남자에게 말했다.

“고마워”

“뭐가?”

“그냥. 다.”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비웠다. 얼마 뒤 아내는 피곤하다며 침실로 갔다. 거실 탁자 위에 있던 아내의 스마트폰이 울림과 동시에 화면에 메시지가 떴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일까?’ 남자는 화면에 뜬 메시지를 무심한 표정으로 읽으며 생각했다.

몇 년 전, 아내의 선배라는 오빠가 아내에게 안부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남자는 서로 안부를 묻는 그 짧은 통화에도 마음속에 질투심이 일어나 아내에게 퉁명스럽게 굴었다. 그런데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낯선 사람, 아마도 남자가 보낸 것 같은 메시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정말 이상했다. 남자는 소주 한 병을 더 마셨다. 갑자기 올라오는 술기운에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어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머리를 수그린 채 집 앞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둑한 골목에서 조그마한 아이 하나가 언뜻 보기에도 자기보다 네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형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 여기서 뭐해?”

“뭐야, 이 아저씨는. 신경 끄고 그냥 가던 길이나 가시지.”

무리 중 하나가 비아냥거리듯 말하며 위협적으로 접근했다.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꼰대가 귀찮게 군다며 어서 이리로 오라고 했다. 남자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술이 확 깼다. 위축되는 마음을 떨치기 위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놈들이. 학교가 어디야?”

“아저씨가 그걸 알아 뭐하게.”

대거리를 하던 녀석이 비식비식 웃으며 말하더니 갑자기 남자의 가슴을 강하게 밀쳤다. 남자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녀석은 넘어지는 남자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남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남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왔다. 뭉쳐서 몰려있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갔다. 경찰은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다음부터는 신고를 먼저 하라고 주의를 주고 돌아갔다. 남자가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는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남자에게 걸어왔다. 어디선가 숨어서 내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자는 몇 살이냐고 물었고 아이는 12살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잠시 쭈뼛거리더니 남자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자에게 어디 사는지를 물었다. 남자는 건너편 아파트를 가리켰고 아이는 그제야 집으로 뛰어갔다.

*****

다음 날 저녁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어젯밤 골목에서 헤어졌던 아이가 서 있었다.

“할머니가 주래요.” 아이가 검은 비닐봉지를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남자는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들고는 고맙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비닐봉지를 전하자마자 뒤돌아 뛰어갔다. 남자는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로 시선을 돌렸다. 비닐봉지에서는 김이 허옇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남자가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학원에서 방금 돌아왔는지 빨간색 새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거실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치 물기를 머금은 붉은 꽃잎이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아내에게 예쁘다고 했고 아내는 뭐가 예쁘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건 뭐야?” 아내는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는 군고구마가 담긴 하얀 종이봉투가 들어 있었다. 남자는 어제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대강 설명했다.

“큰 일 날 뻔했네. 혹시 그런 일이 또 생기면 경찰에 신고부터 해. 요즘 얘들 무섭잖아.”

“응.”

짤막한 대화 후에 아내는 집에 있을 때면 늘 입는 펑퍼짐한 원피스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국을 데우고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어 식탁을 차렸다. 식사 도중 아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내는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슬쩍 남자를 바라보더니만 액정 화면이 안 보이도록 스마트폰을 뒤집어 식탁 위에 놓았다.

“누군데?”

“모르는 전화번호.”

“받아 보지 그래?”

“광고 전화일 텐데 뭐하러.”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금세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으레 그랬듯 정적이 흘렀다. 그 고요함이 싫어 남자는 텔레비전을 켰다.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채널을 돌렸다. 골프, 바둑, 낚시, 스포츠, 뉴스, 영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참을 돌리다 보니 어느 순간 성인 인증 번호를 넣으라는 문구가 화면에 나왔다. 남자는 텔레비전을 꺼 버렸다.

‘딸깍.’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 온 캔맥주의 뚜껑을 따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면 먹먹한 가슴이 뻥 뚫릴 것만 같았다. 톡 쏘는 탄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고 곧이어 트림이 꺼억 하고 올라왔지만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공허했다. 남자는 방에 들어가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린 겨울바람이 남자의 얼굴을 때렸다. 그 순간, 남자는 정신이 번쩍 들어 뒤로 엉거주춤 물러섰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

날씨가 맑은 주말이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남자에게 아내가 물었다.

“커피 마시러 갈까?”

“어디로?”

“양평.”

“양평?”

“응. 두물머리.”

두물머리. 두 개의 강줄기가 하나의 강줄기로 합쳐지는 곳. 남자는 그곳에 갈 때마다, 두 개의 강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이 서로 다른 두 명이 만나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예전엔 자주 갔었는데.” 양평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랬지.”

“아이한테 물수제비 만드는 것도 가르쳐 주고.”

아이가 죽은 이후로 남자와 아내는 자연스레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남자는 아내의 말에 아무 대꾸도 없이 그저 묵묵히 운전만 했다.

“앞으로는...... 아이 생각이 나면 얘기도 많이 하고 그러자. 우리 아이를 기억해 줄 사람이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

“아, 날씨 정말 좋다!”

아내는 차창을 내리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둘은 강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아내가 남자의 팔짱을 끼고 눈앞에 보이는 카페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춥다. 저기 가자.”

남자는 주문한 커피를 들고 아내가 맡아 놓은 창가 자리로 왔다.

“춤은? 배울 만해?” 남자가 커피를 아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응. 오빠는?” 아내가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뭐가?”

“괜찮냐고. 힘들어하는 거 알아. 내색하진 않지만.” 아내는 남자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으며 말했다.

“괜찮아.” 남자는 아내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잡은 아내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후로 둘은 별말 없이 창 너머로 보이는 강물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내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여 의자에 기댄 채 자고 있었다. 라디오를 틀자 아이가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꽤 빠른 리듬의 음악이었다. 남자는 라디오 버튼 위에 손가락을 대고 라디오를 끌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뻗었던 손을 자동차 핸들로 도로 가져왔다. 까불대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남자는 결국 라디오를 끄고 말았다.

*****

밤늦게 대학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철이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었다고 했다. 상철이는 맘이 따뜻한 친구였다. 친구들의 말을 허투루 듣는 법이 없어서, 친구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챙기곤 했다. 대학 친구들 모두 그런 상철이를 좋아했고 따랐다. 졸업을 하고 상철이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꽤 잘 된다고 했다. 그랬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다.

“장례식장은 천안이래. 너도 내일 올 거지?”

“그래야지. 내일 보자”

다음 날, 남자는 조금 일찍 퇴근해서 장례식장에 갔다.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친구들은 남자를 보자마자 자리로 부르며 말했다.

“어서 와.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그럭저럭. 제수씨는 봤어?”

“아직.”

남자와 친구들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인의 사진이 안치된 빈소로 갔다. 검은색 개량 한복을 입은 상철의 아내가 친구들을 맞았다.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언저리가 시뻘게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고인의 영전에 절을 하고 자리로 돌아온 친구들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남자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래?”

“어제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는데...... 못 일어나고, 한 시간 뒤에 그리 됐다고 하더라.”

“인생...... 참.”

“제수씨하고 애들은 어떡하나?”

친구들은 씁쓸한 얼굴로 한 마디씩 했다.

“그나저나 너 진짜 오랜만이다. 딸이 몇 살이지? 이제 곧 시험보지 않나?”

친구들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내년에 고3.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해”

그 뒤로 친구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30분 정도 지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말 즈음 한번 다 같이 보자.”

“그래. 연락해.”

남자와 친구들은 그렇게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는 장례식장을 나왔다.

“버스 터미널까지 태워줄까?” 한 친구가 남자에게 물었다.

“응. 고맙다.”

남자가 친구의 차에 탔다.

“회사는? 요즘 바빠?”

“회사 사정이 안 좋아. 인원 감축도 있을 것 같고.”

“너한테도 영향이 있는 거야?”

“아마도....... 너는 어때?”

“나라고 다르겠어? 그냥 버티는 거지 머.”

차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남자는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고 대기실에서 고속버스를 기다렸다. 불현듯 눈이 퉁퉁 부은 채 친구들을 맞았던 상철의 아내와 장례식장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헤어지던 친구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죽음. 각자가 느끼는 그 슬픔의 무게는 제각각 달랐다. 상철의 친구들은 조문을 하고 돌아가 다시 그들의 일상을 살아갈 것이고 상철의 아내는 그 무게에 짓눌려 숨도 못 쉬고 있을 터였다. 남자는 진심으로, 그녀가 견뎌내야 하는 슬픔의 무게가 하루빨리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

얼마 뒤 남자는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떠나는 날. 김 부장이 남자의 자리로 찾아와 물었다.

“뭐하려고?”

“나가서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

“김 부장은?”

“사장에게 사정해 보려고. 아이들도 있는데 당장 나가면 너무 막막해서......” 김 부장은 말하기를 잠시 주저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남자는 김 부장과 작별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남자는 심란한 마음에 괜히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그냥 안부전화. 잘 지내지?”

“잘 지내긴. 죽겠다! 그나저나 장례식은? 출장이라 가 보지도 못했다.”

“잘 치렀어. 상철이 와이프하고 애들이 걱정이지.”

“그러게. 여하튼 평소에 건강 잘 챙겨야지. 너도 운동 열심히 해라. 건강검진 같은 거 빼먹지 말고.”

“얘들이....... 연말에 한번 보자던데. 그때 빠지지 말고 나와.”

“야. 내가 빠지고 싶어 빠지냐. 일이 너무 많아. 제수씨도 건강하지?”

“여전하지.”

“제수씨 잘 챙겨. 그때 보니 얼굴이 수척하더라.”

“그래. 여하튼 잘 지내고 조만간 보자.”

“오케이.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남자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응. 오빠.”

“오늘 저녁 밖에서 먹을까?”

“오늘?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맛있는 거 사주려고 그러지.”

“음, 조금 이상한데....... 어디로 나가?”

“30분 뒤에 집 앞에서 보자.”

아내는 베이지색 코트에 붉은빛이 감도는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아내를 데리고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남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남자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아내는 현관에서 남자를 배웅했다. 남자는 카페에 갔다. 다음 날에는 공원에 갔고 미술관에도 갔다. 그다음 날도 비슷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곤혹스러웠다. 남자는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때까지 잠깐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집 근처 편의점 앞을 지나는 길이었다. 편의점의 유리문에는 사람 구함이라고 크게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남자는 주저 않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람 구함이라고 써져 있어서. 혹시 아직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으면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최저시급인데. 괜찮아요?” 점주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여기에 연락처 적어 주세요. 이번 주 안에 연락드릴게요.”

이틀 뒤, 다음 주부터 일할 수 있냐고 연락이 왔고 남자는 하겠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그렇게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편의점 일들이 손에 익어갈 즈음 한 아이가 유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전에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던 그 아이였다.

“어! 아저씨. 여기서 일하세요?” 매장에 들어온 아이는 남자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그래. 잘 지냈니? 군고구마는 잘 먹었다. 할머니한테 고맙다고 전해드리렴” 매대의 행사카드를 교체하며 남자가 말했다.

아이는 남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매장을 돌아다니다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왔다. 아이는 편의점을 나가며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 뒤로 아이는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편의점으로 찾아와 껌이며 과자 같은 자잘한 군것질거리들을 한 개씩 사가곤 했다.

오늘도 편의점에 들른 아이는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다시 내려놓기를 수차례 반복하다니 조그마한 젤리 한 개를 가져왔다.

“이거 얼마예요?”

“이리 줘 볼래? 오백 원이네”

아이는 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동전 네 개와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어 계산대에 내밀었다. 천 원 안팎의 군것질거리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사갔으니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아이로서는 꽤 무리가 되었을 테다. 남자는 계산대 위에 놓인 동전을 끌어모아 돈통에 담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어쩌다 그런 거야? 부모님도 걱정 많이 하셨을 건데.”

“엄마,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작년에.”

아이는 방금 산 젤리의 비닐 포장을 까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남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이는 남자의 심경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할머니가 잘 돌봐주셔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이는 마치 꼭 그래야만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날은...... 학교에서 제가 친구를 때렸는데, 그 친구 형이 고등학교에서 일진이었거든요. 때린 건, 제 잘못이 아니고 그 새끼가 잘못했어요. 체육시간에 그 자식이 제가 가지고 놀던 공을 뺏어서 달아났거든요.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지도 않고......”

아이는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사람을 때리면 안 돼.”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는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 엄하게 말했다.

“저도 알아요. 근데 요즘은 한번 화가 나면 참기가 어려워요.” 아이는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에 놀란 듯 잠시 남자를 쳐다보다 흥분하며 말했던 아까와는 달리 풀이 죽은 모습으로 말했다.

남자는 그런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를 달래었다.

“아저씨도 그래. 누구나 화나면 참기 어렵지.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다음부터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괜찮으니깐, 언제든 오고 싶으면 와.”

“정말요?”

남자는 신이 나 물어보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이는 편의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도 남자는 아이를 한동안 다시 볼 수 없었다.

*****

남자가 편의점에서 일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팔짱을 낀 아내가 현관 한쪽 벽에 기대어 서서 막 집을 나서려고 하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 가?”

“어디 가긴. 회사 가지.”

남자는 아내의 낌새가 이상했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아내가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편의점에 도착해서도 남자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남자가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리문이 조용히 열렸다.

“어서 오세요.”

남자가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다. 아내였다. 남자는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왜 말 안 했어.......” 아내는 편의점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 잠깐 일하는 거라. 제대로 된 직장을 잡으면.”

남자는 아내의 예기치 못한 등장에 당황스러워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아내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 집에서 보자고 말하고는 편의점을 나갔다. 남자는 계산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우연히 봤나? 뭐라 하지?’

남자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동안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아이가 뛰어 들어와 밭은 숨을 크게 한번 몰아쉬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할머니가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아요. 아무리 큰 소리로 불러도 움직이지 않아요.”

남자는 서둘러 119에 신고를 하고 편의점 문을 잠그고 나와 아이를 따라 뛰어갔다. 아이의 집은 편의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골목에 있는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이었는데 아이가 뛰쳐나오면서 경황이 없었는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이의 할머니는 호흡이 멈춘 채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남자는 할머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이 할머니를 차에 실어 병원으로 데려갔다. 남자는 아이와 함께 응급실에서 의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의사가 와서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상태를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남자가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입원 수속을 밟는 내내 아이는 행여 남자와 떨어질세라 남자의 뒤에 바짝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입원 수속을 다 마치고 나서야 남자는 아이를 돌아봤다. 차렷 자세로 뻣뻣하게 서있던 아이가 남자와 눈을 맞췄다. 울음을 꾹 참는지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아이는 남자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며 물었다.

“할머니는요?”

아이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괜찮을 거야.”

남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아빠도. 괜찮을 거라고 그랬는데...... 다음 날 돌아가셨어요.”

아이는 남자에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왔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아이였다.

“엄마, 아빠도 죽고. 할머니마저 없으면 이제 나 혼자인데. 정말 나 혼자뿐인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남자의 턱밑에서 머리를 숙이고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왜 저만... 그래요? 다른 얘들은 괜찮은데.”

아이의 눈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독기와 원망이 가득 서려 있었다. 어서 빨리 답을 내놓으라는 듯 쏘아보는 눈길에 남자는 섬뜩함마저 느꼈다. 사실 남자는 어느 누구도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도저히 사그라들지 않는 절망과 분노의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엔...... 답이 없어. 언젠가는.......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게 될 뿐이지. 그때까지 우리는......”

아이는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가느다란 팔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지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남자는 들썩거리는 아이의 어깨를 보며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집에 갈래?”

남자의 질문에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남자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까딱하며 손을 아이에게 더 가까이 내밀었다. 아이는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남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남자가 아이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마치 오늘이 잔칫날인 듯 저녁을 풍성하게 차려 놓고 있었다. 남자는 아내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아내는 허리를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 왔다고 했다.

“이제 학원 그만두려고.” 아내는 아이와 인사를 하고 일어서며 남자를 향해 불쑥 말했다.

“갑자기 왜?”

“그냥”

아내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갔다.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배고프겠다.” 아내는 소고기뭇국을 아이 앞에 놓으며 말했다.

“오빠도 고생했어. 어서 식사해요.”

남자는 빨간색 앞치마를 두르고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살짝 드러내며 미소 짓는 아내가 싱그러운 장미 같다고 생각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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