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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춤 Jul 22. 2021

지금까지의 미니멀라이프

적게 소유하기 #1

물질적인 것을 적게 소유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은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특정한 삶의 방식으로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아닐까 싶다. 70년대에 출판된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사실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법정스님과 같은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내재화하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검소한 구도자에게 감탄하 박수를 보내주는  그쳤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제 막 경제 회복을 꿈꾸는 국가였고 중들 가운데 자신이 소유한 것이 충분하다 느끼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무소유 혹은 소(少)소유를 추구하는 삶은 2010년대 초중반 '미니멀라이프'라는 름으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따르거나 최소한 따르기 위해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분명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물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있었고 충분히 가진 사람들 조차 여전히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여겼지만 4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재가 부족한 사람은 분명하게도 극소수에 불과했. 


기본적으로 인류의 역사가 욕망을 좇고 소유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일부러 소유하지 않음을 추구하는 행위는 사실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방식이 대중들에게 이해할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때론 -비록 짧지만- 유행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과거에는 주로 종교적인 이유로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특정한 집단이 존재했.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배제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종교인으로 종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중이라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신자들은 특별히 정신수양을 위해 물질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애써 기울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신실하지 않은 직업 종교인들 더 많은 기부를 받고 더 큰 건물을 짓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기에 사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진정으로 소유를 줄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인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평생을 거적때기로 살아온 노인이 가진 것의 전부를 기부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심지어 직업 종교인의 경우 그의 직업윤리상으로도 물질적인 것을 배제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것을 실천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언제나 더 많은 소유를 갈구하는 대중들이 적게 소유한 사람들을 따르고, 무리를 이뤄 종교를 갖게 된다는 것은 일견 아이러니하다.


미니멀라이프 혹은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관심사가 아니지만 큰 줄기로서의 시원(始原)을 찾자면 <월든>의 작가인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이 책의 추천사로 '단 한 권으로 모든 것을 뛰어넘은 책'이라고 표현했고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이 책을 읽고 소로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꽤나 센세이션 한 내용임은 틀림없다.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며 겪은 것들을 기록한 <월든>에 담긴 많은 내용을 단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으나 가장 핵심이 되는 그의 메시지를 꼽자면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라' 일 것이다.


하지만 일종의 담론으로서 <월든>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더라도 소로가 했던 대로 오두막을 짓고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소로가 살았던 숲 역시 그의 경제적 후견인이자 자연주의자였던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사유지로서 무상으로 임대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국가에 속해 사는 이상 각종 세금은 내야 했는데 이를 미납하면서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한터라 대중들이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엔 분명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바의 본질의 가치에 비하면 현실적인 제약들은 부차적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늘 그래 왔듯이 어떤 하나의 사상이 유행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지류가 생겨난다. <월든>에서 그가 보여준 삶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분명 미니멀라이프의 끝판왕 같은 것이지만 그의 철학을 이어나간 것은 다름 아닌 환경운동가들이었고 소로는 지금도 생태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환경운동가들이 채택한 소로의 메시지는 사회에 필요 이상의 산물이 너무 많으며 무분별한 생산으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이외에 노동운동을 펼치는 사람들은 산업 사회에서 기계에 종속된 비천한 노동이 아닌 진정한 자연의 일원으로서 인간 노동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에 소로를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0년대에 소로의 사상은 '미니멀라이프'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게 된다. 일반 대중이 실천하기 어려웠던 '오두막으로 피하기' 대신 언제든 떠날 수 있을 만큼 가지자는 메시지는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미니멀라이프는 사람들을 도시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자급자족을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교조적인 사상이 아닌 실용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이 얻는 효용을 강조했다.


이전까지 수면 위로 오르지 않았던 미니멀라이프가 2010년대 들어 사람들의 주목받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끝없이 성장할 것 같던 세계는 2008년 리먼 사태로 무너지면서 본격적인 뉴-노멀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사람들이 매우 애써야만 얻을 수 있는 집이나 차와 같은 자산들의 의미가 환기되고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보다는 YOLO와 같이 현재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장소 제약이 적어지면서 '디지털 노매드' 생활이 가능한 것 역시 미니멀라이프라는 단어의 정착을 도왔다. 더욱 고도화된 마케팅의 영향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인 소비를 했던 사람들은 연일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뉴스 기사를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접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되었고, 유행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덜 소유하는 삶의 효용이 널리 전달되었다.


물론 이렇게 등장한 미니멀라이프 역시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다. 미국인 조슈아 필즈 밀번(Joshua Fields Millburn)은 절친한 친구인 라이언 니커디머스(Ryan Nicodemus) '미니멀리스트'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대중들에게 가지고 있는 물건을 줄이고 가치 있는 것만을 소유하는 삶의 홀가분함을 설파하며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인이지만 일본에 거주하며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 <심플하게 산다>의 저자 도미니크 로로 역시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특히 간소한 삶이 가져다주는 소음 없는 삶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평가받는 포틀랜드에서 킨포크(Kinfolk) 운동을 주도하며 잡지를 출간한 네이선 윌리엄스(Nathan Williams)는 미니멀라이프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에서는 리먼 사태 이전에도 장기불황의 여파로 인해 소비를 줄이고 단순한 삶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겪으며 집안에 쌓아둔 물건들이 모조리 쓰레기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소유의 허무함을 느낀 사람들이 극단적인 형태의 최소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 가운데 사사키 후미오라는 평범한 출판사 직원이 쓴 <나는 심플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 또 물건을 쉽게 비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코칭을 해주는 '정리 컨설턴트'와도 같은 형식상의 직업들도 등장하게 되는데, 이 분야에서는 곤도 마리에라는 사람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된 정리 열풍은 우리나라서 '신박한 정리'라는 TV예능 형태로 변신한다.


미니멀라이프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페트병 등 일회용품의 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며 불필요한 쓰레기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운동은 환경보호의 일환인 동시에 물건을 줄이는 활동이기도 하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미니멀라이프가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미니멀리스트 카페에서는 하루에 하나의 물건을 버리는 캠페인이 벌어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물건을 버려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서 강박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부부의 경우 눈에 거슬리는 모든 물건을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배우자의 물건을 상의 없이 버려서 이혼 위기에 처해있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을 올리기도 했다. 설레지 않는 것은 버리라는 메시지에만 주목해서 멀쩡히 사용하고 있던 물건을 버리고는 블랙 앤 화이트톤으로 정비한 집을 자랑하는 글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미니멀리즘 가구나 디자인 제품을 리뷰하며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포장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못내 흘겨보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적어도 '당신은 집이 넓으니 가능하다', '미니멀리스트 치고 물건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실천은 단계적인 것이다. 이제 막 실천을 결심한 사람을 1단계, 가진 것이 극소수인 단계를 10단계라고 해보자. 나 자신이 겨우 1단계에 있으면서도 대단한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가 봐도 적게 소유한 사람이 여전히 자신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덜 가진 사람이 더 가진 사람을 자신보다 못하다고 평가할 근거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실천력이 부족한 본인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맥시멀리스트였던 자신의 과거와 작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므로 오히려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사실을 격려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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