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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비서가 Aug 13. 2021

제1화 다른 길, 공부

진짜 공부를 시작한 이야기

길을 잃다 


그때 나를 강력하게 사로잡고 있었던 생각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나야 하는가?”였다. 거의 강박에 가까운 고민이었다. 어떤 날은 훌훌 떠나기로 마음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대로 남아 있기로 마음을 추슬렀지만, 이 고민은 현실의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한 채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모두들 한 번씩은 겪는다는 흔한 일탈의 욕망일 뿐이다 자위하며 고민하는 스스로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고민의 중심에 어떤 결정이 나를 가장 행복하고 자유롭게 할 것인가는 없었다.


루쉰이 기록한 [판 아이눙](‘아침 꽃 저녁에 줍다’에 수록)에 대한 기억을 읽으며 그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가 ‘혁명’을 마치 훈장처럼 두르고 루쉰을 기다리며 그의 부름에 목 맨 것처럼, 나 또한 ‘성공적인 삶’이라는 세상의 인정을 훈장처럼 가슴에 걸기를 열망하며 항상 나보다 힘이 세 보이는 누군가에게 줄 서왔던 인생이지 않을까?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 줄이 결코 나를 살려주는 생명줄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고, 그때 나는 길을 잃었다.



성공을 따라온 길


열심히 살긴 했다. 10년 장기계획은 필수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의 일상은 주도면밀한 실행계획들로 짜였다. 내내 나를 강력하게 추동했던 것은 “주류에서 이탈되지 않아야 한다.”는 거의 강박에 가까운 불안감이었다. 진로에 관한 모든 선택은 철저한 자기 검열이 선행되었다. 나는 주류로 보이는 소위 엘리트 코스와 지름길인 라인을 잡고자 삶의 매 순간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는 몹시 어려운 처지에 있었지만 친구들이 청하는 덕에 술만은 그래도 마셨다. (중략) 그들마저도 그의 불평을 듣기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며, 우스갯소리를 듣느니만 못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아마 내일은 전보가 올지도 모르지. 펼쳐보면 루쉰이 나를 부르는 걸세.”그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판아이눙」, 『조화석습』, p. 141


아이눙은 북경으로 떠난 루쉰이 자신을 찾아줄 것을 기다리며 술 마시고 불평만 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루쉰을 따라 혁명가가 되었지만 루쉰이 떠나자 예전의 아이눙으로 돌아갔고, 가난과 구차함만 남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욕망에 매여, 타인을 추종하며 누군가의 비전에 기대어 산 자의 말로이다. 아이눙에게서 나를 본다. 누군가가 이룩한 소위 ‘성공’이란 것을 선망하고, 그렇게 되고자 욕망하며 늘 무언가에 매여 있는 삶.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한 삶이다.


저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치기 어린 10대에는 살아서 유명해지지 못하면 기발한 죽음을 택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무명의 고교시절을 견디다, 특별해지고 싶어 병역의 의무도 없는데 자원하여 여자 군인이 되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우상이 되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일생의 가이드가 될 만한 남자를 찾았다. 나보다 8년이나 더 살아서 삶의 노하우가 풍부한 ‘남편’을 강력한 안전라인으로 선택했다.  


서른, 생에 대해 이처럼 강렬한 상승 욕망을 가진 분이 있을까 싶은 분을 만났다. 그분의 눈에 띄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변형을 거듭하며 10년을 보냈다. 너무나 쓰기 좋은 맞춤형 그릇, 외형은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자각하기보다는 그분에게 내가 소용이 있는지, 사람들이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만 주의를 기울였다. 주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렸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계획하고 있던 국회 보좌진으로 가기 위한 시도가 불발되면서,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여기에 남거나, 학교로 가서 강단에 선다. 두 가지 정도의 길이 보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가? 진로 수정 궤도 계산을 하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도 순수한 흥미가 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생명력이 없었다. 매일 바라보는 거울에서 지친 얼굴에 웃지 않는 입매, 흐트러지는 목소리를 감지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장, 지금까지 열심히 질주해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한다는 열망에 들떠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그 열망과 현실의 괴리감에 죄책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다른 길  


이십 장 높이의 상공으로도 오르고 이십 장 깊이의 땅 밑으로도 내려가 봤지만 결국은 아무런 재간도 배우지 못했으며, 학문은 “위로는 벼락에 닿고 아래로는 황천에 이르렀건만 두 곳 다 무변 세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가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오로지 한 길, 외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소한 기록」, 『조화석습』, p. 114  


루쉰은 고대하던 졸업을 하였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교육에 절망한다. 나 또한 주도면밀한 인생계획과 성실한 실행으로 세상의 스펙은 쌓았지만 자긍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국가자격증만 5개다. 학벌은 박사학위까지 했으니 그 끈을 더 늘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루쉰은 자신의 공부가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익숙한 것에서 떠나 자신을 낯설게 하는 환경으로 자신을 던진다.

 

감이당을 찾았다. 세상의 스펙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지인들은 이력서 한 줄 더 쓸 수 있는 고위 자과 정을 다니던가, 교수 임용에 유리한 연구실적을 쌓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자기네들도 이런 슬럼프를 겪었지만, 변하는 건 없으니 빨리 원상 복귀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도 하였다. 근데 그런 공부는 이미 할 만큼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생기도 발견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오래된 습관처럼 감이당에서 공부한다는 행위조차도 또 다른 훈장처럼 허황되게 매달고자 하는 건 아닌지 경계했다.  매 순간 확인했다. ‘나 정말 행복한가?’, ‘지금 가장 자연스러운가?’, ‘나 다운가?’


루쉰를 만나 혁명가가 된 아이눙처럼 스스로의 삶에 혁명을 꾀하고자 했다. 항상 내 것이 아닌 외부의 조건,  세상의 잣대, 평가와 평판, 사랑과 인정에 경도되어 피상적인 것만을 쫓는 결핍된 자의 삶이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하고 자연스러워지는 출발로서의 공부를 시작하고 싶었다.


아침이슬이 사라진 저녁 꽃에서 아침의 향기를 찾을 수는 없지만 꽃은 꽃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면 설사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의 길이다. 가면서 길을 찾는다. 지금 정한 방향 또한 어쩌면 바르지(좋아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 않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네가 원하는가? 나의 진짜 욕망을 찾아 다른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나의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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