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지르는 폰을 끄고, 통나무집 이사를 도왔다

열병 앓는 휴대폰을 끄고, 부모님의 통나무집 언어를 듣다

by 김이곤

1. 전화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브런치에 쌓아둔 내밀한 아픔과 고백들을 서둘러 지웠다.


예민한 사안을 보도하기 전, 취재 과정에서 유출된 내 번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댔고, 그 진동은 내 일상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휴대폰이 열병을 앓듯 뜨거웠다. 타인에게 나의 아픔을 읽힌다는 건 때로 나의 연약한 살점을 조금씩 떼어 내어 주는 일이다.


2.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누군가 내 사적 아픔을 구경거리로 삼으려 할 때, 나는 서둘러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앞으로 후속 보도를 이어갈 테니, 이 뜨거운 관심도 내가 감당할 몫이겠지만 당분간은 숨을 고를 공간이 필요했다.


3. 중고등학생 때는 휴대폰이 그렇게 좋았다. 당시 우리 집에는 밤 9시가 되면 휴대폰을 거실에 내놓아야 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주말에 10시까지 쓰게 해 주셨다. 그게 참 좋았는데 요즘은 특별한 날이면 휴대폰을 꺼놓는다. 이번 설 명절 때도 휴대폰을 그냥 확 꺼놨다.


▲ 명절이 한참 지나고서야 개인 휴대전화 카톡을 확인했다. 요즘은 특별한 날이면 폰을 끈다.


4. 어제와 오늘, 부모님이 통나무집으로 새로 둥지를 트셨다. 나도 가서 집 정리를 도왔다. 그곳은 아파트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수직의 삶만 살아온 내게, 나무 향 가득한 그 집은 흙을 밟는 법을 가르쳐 줄 것 같았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건강하다'는 감각을 회복했다.


▲ 부모님의 새 둥지, 시간이 흐를수록 결이 깊어질 통나무집의 내부 풍경.


5. 건강함이란 단순히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내 몸이 자연의 박자와 어긋나지 않고 공명하고 있다는 안도감이다.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 소리와 새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곤두섰던 신경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부모님과 카리도 거기서 행복하고 재미있게 매일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6. 나도 그럴 거다. 춘천, 우리, 아니 내 집으로 돌아와 커피포트를 올린다. 나무가 없는 이곳, 정적 속에 물 끓는 소리만 들린다. 이 고요는 나를 갉아먹는 고독일까, 나를 해방하는 자유일까. 결국 고독과 자유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적막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로지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7.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교환학생 시절 친구들을 만났다. 반갑고 멋있는 만남이었다. 누군가는 이탈리아에서 뿌리를 내렸고, 누군가는 미국에서 석박사를 하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 직장인이 됐다. 서로의 다름을 멋짐으로 부를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 각자의 생을 성실히 발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탈리아서 같이 교환학생 했던 친구와 3년만에 연락을 했다. 당일 보도한 기사 링크를 보냈다.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겐 여전한 기억으로, 반가운 소식으로 닿는 순간.


8. 누가 지난해 나더러 힘들 때 진정한 나를 찾으라고 내게 조언했지만, 나는 고개 끄덕이는 척하고 바로 흘려버렸다. 인생은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서 나라는 형상을 빚어내는 창조의 과정에 가깝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는다.


9. 최근 주변에서 소개팅 제안이 부쩍 늘었다. 사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나를 돌보는 고요가 절실해 다 거절해 왔다. 그러다 친한 형의 거듭된 성화에 못 이겨 한 번의 만남을 가졌다. 상대는 소위 말하는 괜찮은 조건을 갖춘 분이었다. 전문직에, 귀여웠고, 안정적인 궤도에 정교하게 설계된 계획까지.


10. 대화는 매끄러웠으나 그 속에는 온기가 없었다. 조화 같았다.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이나 삶을 대하는 치열한 알맹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꾸만 행복의 조건을 외부에서 찾고, 자기가 누군지 증명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나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반차까지 냈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만큼, 내게는 매우 공허한 시간이었다.


11. 나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발명해 나가는 사람이 좋다. 나를 찾는 방랑보다는 나를 만들어가는 경작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부모님의 통나무집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결이 생기고 단단해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 통나무집에 또 가서 자고 싶다. 그 나무 냄새가 참 좋다.


천장을 가만히 살피다 발견한 하트. 삶은 생각보다 곳곳에 다정한 면들을 숨기고 있다.


12. 아까 책을 읽다가 단어 하나에 멈춰 섰다. 미국 NBC 기자가 쓴 책인데 스트레스(Stressed)를 거꾸로 읽으면 디저트(Desserts)가 된단다. 나를 짓누르던 이 단어를 거꾸로 읽어보니 놀랍게도 디저트가 됐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생의 비극을 뒤집으면 달콤한 희극이 된다는 이 언어의 장난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13. 우리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할 때 필요한 건 거창한 구원이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티켓이 아니다. 시선을 살짝 뒤집어 보는 용기와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디저트 한 입이면 충분하다. 이제 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고민하며 다시 펜을 든다. 부모님의 통나무집처럼 단단하고, 개울물처럼 맑은 글을 쓰고 싶다.


▲ 소중한 공간을 지키기 위해 사진의 일부를 가렸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14.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요리, 그리고 나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치열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다시 기록하려 한다. 내 삶의 문장을 거꾸로 뒤집어 본다. 그곳엔 여전히 달콤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나를 짓누르던 문장들을 뒤집으러 갈 시간이다. 다들 달콤하고 행복한 밤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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