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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15. 2024

연애 6개월 차,  동거 시작을 부모님께 알리다.

2019. 07 그와의 동거 연장

[2019년 07월]

☑ 남편 한 줄 정보: 김현우. 1990년생. 카메라 감독. 내 방에 굴러 들어와서 주인인척하기 시작. 어디서든 살아남고야 마는 강인한 생명력과 정신력을 갖고 있음.


시대가 어떻게 변했든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동거’란 참 말을 꺼내기도, 남에게 드러내기도 어려운 일인 듯하다. 하물며 내 주변만 보더라도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어떤 부부는 결혼했으니 이제는 오픈한다며 결혼 전 동거를 꽤 오랫동안 했던 사실을 비밀처럼 털어놓기도 하고, 친한 동생은 현재 진행형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거 사실을 숨기며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기도 하니까.


동거란 이렇듯 사랑하는 이와 한 공간에서 함께 산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은 연애의 다음 스텝쯤으로 여겨지곤 하기 때문에 동거를 하면 결혼을 해야만 할 것 같고(실제로 결혼을 전제로 많이 시작하기도 하니까), 동거를 하다가 헤어지면, ‘이혼’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듯 동거라는 것은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기에, 그 결정 또한 아주 신중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그래서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했는지, 어떻게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더불어 동거를 결심하게 된 큰 계기나 사건이 있었냐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NO'. 나와 현우 감독의 동거의 시작에는 어떠한 사건이나 계기, 심지어 협상(?)같은 일련의 과정도 없었다. 그냥 어느 날, 80kg짜리 돌 하나가 굴러들어 와 내 방에 짱박혔다. 그리곤 아주 해맑게 ‘함께 살면 좋을 거야’란 주문으로 나를 홀린 게 전부다. 아, 그때의 나는 너무 순수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를 쫓아낼 방법은 수천수만 가지인데!


현우 감독을 내 집에서 처음으로 재우고 난 다음 날, 그는 일을 마치고 다시 내 집으로 돌아왔다. 퇴근하는 아빠처럼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를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다시 문을 열었다. 이튿날, 그리고 그다음 날. 다다음날까지도 현우 감독은 계속해서 내 집으로 퇴근을 했다! 으악. 나는 결국 4일째 되던 날,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있잖아, 혹시 언제 사무실로 갈 거야?(그는 당시 집이 멀어 거의 사무실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문제도 못 느낀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같이 살자. 그러면 매일을 볼 수 있잖아! 엄청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나는 그의 일차원적인 생각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니 그 말 많고 탈 많은 방송국에서 ‘사내연애’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비밀연애를 시작하던 우리가 아니었나? 그런데 이 상암동 한복판에서 동거를 하자고!? 나는 전략을 바꿔 그를 설득했다. 더 이상 집에 못 오도록 막지 않을 테니, 동거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하지만 그는 “나는 너랑 처음 만날 때부터 결혼할 것 같았어”라는 말로 다시 한번 내입을 막았다.


결국 일주일을 참았다. 그러다 결국 나는 터져버렸다. 그가 기름기 가득한 프라이팬에 설거지를 몽땅 담그는 것을 보고. 해맑은 그를 불러 세우고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다. 함께 사는 일주일이 너무 힘들었다는 말과 함께. 현우 감독은 이에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앞으로는 살림에 신경 쓰겠다고 약속했다. 아니, 왜 앞으로를 약속하는데!! 답답한 내 마음도 모르고 정성껏 뜨거운 물과 베이킹소다로 설거지를 해대는 그의 모습에 나는 결국 현우 감독과 ‘한 달 동거’라는 조건을 걸었다. 만약 한 달 후에도 우리가 동거를 계속하고 싶을 시 적어도 각자의 부모님에게는 허락을 받고 시작하자는 말과 함께.


현우 감독은 이런 내 말에 마치 결혼승낙을 받은 사람처럼 기뻐했다. 그와 반대로 나는 한 달만 참자라는 마음이었지만, 어찌 됐든 본격적인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와 약속한 한 달 동안 나는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매일을 악 지르고 양말을 집어던지며 싸워대면서도 한 공간에서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한 달짜리 동거가 연장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현우 감독은 매일을 그렇게 혼나면서도, 내가 말한 방법대로 다시 청소하고 빨래하며 우렁각시를 자처했다.


지옥 같은 한 달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나는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받쳐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꼼짝없이 3주를 병원에 묶여있어야만 했다. 놀란 가족과 현우 감독은 매일이 멀다 하고 병원으로 찾아와 나를 살폈다. 팔에 한 깁스 때문에 머리는 떡지고 화장도 전혀 하지 못하는 몰골이었지만, 현우 감독은 전혀 개의치 않고 출근 전이나 후에 내게 필요한 물건이나 내가 좋아하는 간식들을 사들고 찾아왔다.


진정 현우 감독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의 극진한 간호에 반한 것인지 뜬금없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현우 감독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병원으로 찾아온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랑 하고 싶다며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면 보여주지도 말라며 내 연애에 전혀 관심을 두진 않았지만, 또 보수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 집의 특성상 나는 등짝이라도 한 대 세게 맞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의외로 “결혼 전에 서로 어떻게 사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 네 뜻대로 해”라고 대답했다. 언제 인사한 번 시켜달라는 말과 함께. 나는 이런 엄마의 대답을 듣자 당장 현우 감독과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3주를 꼬박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을 하던 날이었다. 그간의 짐들을 모두 챙겨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오랜 시간 집을 비우게 돼 현우 감독이 얼마나 어질러 놓았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어랏,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모든 곳이 말끔했다. 매일을 쓸고 닦은 것처럼. 새삼 놀란 나에게 현우 감독은 웃으며 직접 끓인 죽과 반찬 몇 가지를 꺼내 상을 차려주었다. 나는 내 집에서 손님처럼 가만히 앉아 현우 감독이 직접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하고, 그 후엔 엉망인 나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고 말려주기도 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에 누워 내 짐을 정리하는 현우 감독에게 물었다. “앞으로 우리가 더 함께 살게 된다면, 늘 이렇게 해주는 건가? 맨날 밥을 해주나?” 현우 감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매일 싸우더라도 행복할 거야”


그날, 현우 감독과 나의 한 달짜리 동거는 그날 재계약에 성공했다. 내가 멈추고 싶을 때는 멈춘다는 딱 한 가지 조건만 가지고. 그리고 우리는 각자 부모님에게 서로를 인사시킬 날짜를 잡으며 동거 소식을 알렸다. 병원에서의 대화 때문인지, 나의 부모님은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몇 가지 당부 외에는 허락을 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모든 일이 스무스하게 지나가는 줄 알았다. 현우 감독의 부모님이 동거 소식에 놀라 집 앞까지 나를 보러 오기 전까지는...


현우 감독과의 동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나는 그의 부모님과도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의 부모님은 우선 동거를 용납할 수 없다 하였고, 그럼에도 고집을 부리고 하겠다면 결혼 날짜를 잡고 시작하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동거란 연애보다는 결혼에 더 가까운 일인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우리의 동거는 이렇듯 시작부터 꽤나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현우 감독과 그 좁은 단칸방에서 울고불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며 함께했던 6년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 그 시간마저도 없었으면 나는 그에 대해 더욱 몰랐을 테고 지금쯤 현우 감독의 뒤집어진 양말을 들고 쫓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기름기가 잔뜩 묻은 그릇을 박박 닦아대며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마 사기결혼(?)이라며 무르자고 했을 수도. 여하튼 긴 시간 동안 현우 감독과의 동거로 인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지만, 그중 가장 큰 하나는 그의 만행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는 것이다. 오늘처럼 그가 잔뜩 물건을 쌓아놓은 작업실 책상을 보고 방문을 꼭 닫아두는 것처럼.  


☑ 남편과의 동거 1개월 차: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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