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음력 구월 열이레

by rosa

오늘은 을사년 음력 구월 열이레, 내 회갑 날이다. 예전 같으면 동네잔치를 벌였겠지만, 이즈음에는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것도 쑥스럽다. 미리 친구들이랑 여행 다녀온 것으로 우리끼리 회갑을 축하했다.

가을비 내리는 아침, 향기 좋은 커피를 머그컵에 담아 거실 창 앞 베란다 정원을 바라봤다. 곧 거두어야 할 식물들이 조금만 더 버텨보겠다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아직 괜찮다고 버티는 내 모습을 닮은 것 같아 슬그머니 쓴웃음이 났다. 한파가 오기 전에 안으로 들여야 하는데, 식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해 나도 미적거렸다. 이러다가 된서리 내리면 얼어붙을 수도 있는데, 알면서도 서둘러 겨울 준비를 하지 않는 나….


육십 년이란 긴 세월 동안 감사한 일들, 고달팠던 일들, 아름다웠던 일들이 훅백영화처럼 스쳐갔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많은 시간의 열매들이 나만의 결실은 아니었다. 일과 일,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좋은 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할 때 만들어진다. 너무 가까워서 숨이 막히지 않고, 너무 멀어 잊히지도 않는 거리. 결국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와 잘 지낼 수 있어야 타인과도 편안히 지낼 수 있다.”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상처받기 싫은 거였다』


책에서 말하는 인간관계가 편해지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도 떠올렸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는 없다.

가족이라 해도 가끔은 미워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사생활은 필요하다.

조언은 할 수 있되 변화는 상대의 몫이다.

그리고 실망의 크기는 기대의 크기에 비례한다.” 『혼자가 편한 게 아니라 상처받기 싫은 거였다』

하정희 작가의 문장을 읽었을 때, 특별할 것 없는 문장이 주는 명쾌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는 단순해진다. ‘말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그렇다. 잔소리보다 다정한 침묵이, 가르침보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런데도 알면서 실천이 망설여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의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육십 이후의 삶을 ‘덤’이라고 말했다. 그 후 이십삼 년을 더 살면서,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문득, 나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매사에 크게 참견하지 않고,

응원의 말을 하며,

나누고,

끊임없이 배우고,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적었다.


좋은 관계는 온기가 아니라 간격의 기술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간격이 있을 때 비로소 타자는 타자로 남고, 나는 나를 잃지 않는다.

늙는다는 것은 쇠퇴가 아니라 내 삶의 태도를 단순하고 깊게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도 욕심인지 모른다. 당장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가 사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욕심이고 사치일지언정,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기 위해 오늘 이 글을 쓴다.

노인의 기준을 ‘만 65세에서 상향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고마운 일이지만, 달리 보면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지하철 경로석을 앞으로도 오래 누리지 못할 것이고, 현장에서 어린 친구들과 더 오래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인의 준비 기간이 늘어난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고단한 마음을 조금 더 달래며 끌고 가야 하는 책임도 함께 늘었다.

힘 겨울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내일부터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한다.

노년은 줄어드는 시간이 아니라 쓰는 법을 바꾸는 시기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의미 있게.

나는 갑작스럽게 올 수 있는 죽음을 위해 작은 준비를 해두었다.

장기기증 서약서에 서명했고, 사전연명치료 거부 동의서에도 사인했다. 내 몸이 다한 뒤에도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씨앗이 되길, 내 숨이 멎는 순간 더는 무의미한 연장이 아닌 고요한 마무리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것은 내 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훈련이자, 생의 문을 닫는 순간조차 나답게 정리하려는 다짐이었다. 물론 자식들에게도 내 뜻을 미리 전해 두었다. 그들의 삶에 짐으로 남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줘서 다행이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통제의 욕망이 아니라 수락의 훈련이다. 끝을 두려움 없이 바라볼 때, 남은 매일이 선물로 바뀐다. 존엄은 상황의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세운 태도에서 비롯된다.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창틀을 타고 넘은 물방울이 잎사귀 끝에서 주르르 흘러내렸다. 작은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오래 붙잡고 있던 계절이 손에서 놓이는 듯했다. 나는 마침내 두어 개의 화분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서둘러 겨울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때에 겨울을 맞이하는 일. 참견 대신 응원, 지시 대신 도움, 의심 대신 기다림을 택하는 일. 흙냄새가 은은히 배어 있는 잎사귀가 내 어깨를 스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아버지가 ‘덤’이라고 부르던 시간을 나는 이제 ‘여유’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어진 덤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여유. 내가 말하는 여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가치의 우선순위를 되돌리는 일이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고, 필요한 것을 더 깊이 사랑하는 일.

오늘부터 말을 조금 덜고, 지갑을 조금 더 열며, 지나친 친절과 충고에서 한 발 물러서겠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연습을, 지금 이 밤 내 안에서부터 시작한다.

조금 느려도 그만큼 깊어질 나의 내일을 소망하며


육십 나에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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