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H아파트 18층에 사는 고운 할머니가 아침 일찍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분을 ‘할망구’라 불렀다. 한자 望九는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이 호칭에는 애정과 존경이 담뿍 묻어 있었다.
거동이 불편했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단정하고 화사했다. 모습에서 풍기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그녀의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설 때마다, 할머니는 빛나는 눈빛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〇〇이 유치원 가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지금 출근하세요? 운전 조심하세요.”
아침마다 이어지는 기분 좋은 인사가 아파트 사람들에게 비타민 같았다. 처음엔 낯설어 엄마 뒤로 숨어들던 꼬맹이가 어느새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고, 친구들과 장난치다가도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를 만나면 습관처럼 꾸벅 인사를 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 어깨가 쑥 자란 아이도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수줍은 미소에는 오래 배어 든 정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위해 현관문을 잡아주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도록 팔을 벌린다. 할망구에게서 배려를 배운 걸까? 3·4라인에는 정겨운 인사와 포근한 인정이 매일 차곡차곡 쌓여 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할머니는 낡은 달력 한 장을 찢어 뒷면에 커다란 하트를 그리고, 그 안에 송년 인사를 정성스레 적어 엘리베이터에 붙였다.
“우리 3·4라인 가족들, 금년도 수고 많았어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할망구 드림”
할머니 미소처럼 다정한 글귀 옆에는 올망졸망 댓글이 달렸다.
“할머니, 올해도 기다렸어요.”
“항상 먼저 인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건강하세요.”
때로는 포스트잇에 적은 예쁜 손 글씨가, 유치원 꼬마의 사랑스러운 그림과 사탕, 장미 한 송이가 나붙기도 한다. 썰렁한 엘리베이터 안이 알록달록한 정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해마다 그 장면을 보는 즐거움에, 이웃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은근히 할머니의 달력카드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떤 해에는 중학생 아이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며 절하는 그림을 붙였고, 또 어떤 해에는 새내기 직장인이 퇴근길에 사 온 귤 상자를 엘리베이터 구석에 두고 갔다. “맛있게 드세요.”
할머니 미소를 시작으로 엘리베이터는 작은 축제의 공간이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따뜻한 게시판이 되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문득 드는 생각.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길이 되는 일이 아닐까?”
말없이 등을 보이며 걷는 모습, 나도 모르게 따라 걷게 되는 그 길. 아이들이 할머니의 인사를 배우며 자라는 것처럼, 뒷모습으로 가르치는 일이 바로 어른의 몫일지 모른다.
“우리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거울처럼 나를 비췄다. 나 역시 아직 ‘어떠한 어른’이 되어가는 길 위에 있음을, 서툴고 더디더라도 여전히 배워가는 존재임을.
돌이켜보면 아이들만 배우는 게 아니다. 어른도 아이에게서 배운다.
“4학년 남자아이에게 상처는 훈장이다.”라는 말을 곰곰 생각해 본다.
깁스를 한 아이가 또래의 영웅이 되는 그들만의 세계. 우수꽝스러워도 그들에겐 진지한 성장의 흔적이다. 그 시선 앞에서 어른은 함부로 웃을 수 없다. 그래서 어른도 아이에게서 길을 배운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나는 누구에게 어떤 어른으로 기억될까.”
“나는 손주에게, 내 자식에게, 나를 지켜보는 타인들에게 어떤 뒷모습을 남기고 있을까.”
아직 질문에 적당한 답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좋은 어른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속도로 ‘좋은 어른’의 숲을 향해 걷는다. 때로는 돌부리에 발이 걸리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성장을 기뻐하는 동안 어쩌면 네버랜드의 피터팬이 될 수도, 루돌프 썰매를 달리는 산타 할머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나는 ‘노인(老人)’을 ‘노인(路人)’이라 부르고 싶다.
길 위에서 배우고, 길 위에서 나누며, 길 위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
노인이란 결국 끝없이 길을 이어가는 존재일 것이다.
드디어 내가 ‘할망구’라 불릴 날이 오면, 막 스무 살이 된 손자가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겠다.
“할머니, 나랑 데이트할래요?”
그 고운 부름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설레는 어른의 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