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by rosa



김환기 화백에 관한 감상을 글로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했다.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충렬 저)

《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중섭 》(고산 고정일 저)


두 화백이 동시대에 천재로 활동한 이유로 후대에서도 같은 제목을 뽑았는지, 우연이었는지, 또는 실수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굳이 따질 생각은 애초부터 없지만 김환기보다 먼저 좋아한 이중섭을 빼놓고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이 글을 끄적인다.


서귀포 언덕에 복원된 작은 초가,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한 도슨트의 말을 듣고 내려가는 길에 들렀다. 가족이 살기에는 너무 작은 공간. 그래도 거기에서 이중섭은 행복했었다. 적어도 가족이 함께 있었을 때까지는.


' 화가 이중섭은 죽어서 소가 되었을까 아니면 호박이 되었을까.

혹은 이름 모를 새가 되었을까. 닭은 더더욱 싸움닭은 되지 않았을 거야.

(중략)

공중 비행하는 나래긴 새라든가 한 번 둥지를 틀면 다시는 떠나갈 줄 모르는, 먹이 같은 건 영 조르지 않는 바보새가 되었을 거야.' 《 우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중섭 》19p 김광림의 시 일부


이중섭은 놀랍도록 참혹한 시간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판잣집 비좁은 골방에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 엎드려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합판이나 마분지, 담뱃갑 은종이에도 그림을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도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세상을 떠돌면서도 그저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천진한 심성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책에 적혀 있다.


일본 유학시절 만난 마사코의 표현이다.


" 글쎄요, 인품이 좋았다고 할까요. 품성이 고귀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천한 느낌을 주는 데가 하나도 없어요. 그것은 피란지에서도 그랬어요. 학창 시절에 일본친구들이 그의 하숙방을 찾아가 보면, 방이 재떨이 속처럼 어지럽혀있는 데도 그 한가운데 난초가 자라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방 주인은 외출 중이고. 그래서 친구들이 돌아오면서 역시 아고리상은 아고리상 다운 데가 있다고 이야기들을 했어요"


무소유의 철학자. 그는 그렇게 빈곤 속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기운차고 어린애와 같은 천진함을 끝끝내 지켜낸, 하늘이 내린 화가였다. 시인 김춘수는 이광섭을 '갑자기 우주에 생긴 틈새로 새어 나오는 한줄기 밝고 눈부신 빛 같은 존재였다고 표현했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세월을 잘 타고났다면 어땠을까? 부유했어도 평안했어도 이중섭의 그림은 아마 다르지 않을 거라는 편견에 나도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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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를 계기로 이중섭 가족은 원산에서 제주로 이주한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험난한 피난길을 꽃놀이 가듯 그려낸 그의 가족 자화상은 사랑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유치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 흰 소 〉에서 보이는 강인한 선은 고구려 벽화를 연상하게도 한다. 맑은 눈빛, 때로는 분노하고 저항하는 무서운 힘과 한의 절규 등이 참담한 시대 민족의 처절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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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그의 고독하고 우수에 찬 예술혼, 아내와의 사랑, 아이들과의 행복한 놀이, 티 없이 순진한 낭만. 이것들을 그의 작품에서 보물처럼 발견하는 기쁨이 크다.

가족이 떠나고 방황하며 어떻게든 가족을 찾아가려는 그의 노력이 번번이 실패하고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할 동안 남긴 그의 작품을 통해서 느끼는 이중섭의 블루. 천재성을 펼칠 기회를 박탈 당했어도 기어코 비집고 나오는 잡초의 근성에서 난초의 향을 느끼는 나는 사디스트인가?


서귀포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가고 싶다.



이중섭3.jpg



그림 참고] 이중섭미술관 https://culture.seogwipo.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