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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Apr 03. 2024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십시오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노아에게 세례를 주노라. 

그렇게 사위는 성수와 성유와 순결의 흰옷을 입고 신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를 만난 열여섯 번째 부활절이다.

 

복돌이 유아세례 이전에 꼭 영세받겠다는 약속을 지켜낸 사위가 나는 몹시 사랑스럽다.

육 개월 동안 교리를 익히며 가톨릭 전례와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예비자 시간, 이 기간에는 매주 두 번씩 미사 참례하고 따로 학습하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가 동일한 전례를 지키는 천주교에는 따분한 예법이 많다. 찐 신자가 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시간을 삼십칠 년 전 나도 경험했었다.


개신교 신자로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가톨릭은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교리 수업은 혼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였다. 교리를 끝내고 찰고를 거쳐야 비로소 천주교 신자로 인정받는다. 똑같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인데 서로 다른 기도와 호칭이 늘 어색했다. '이렇게 해서 꼭 혼배를 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신앙은 위기상황에서 그 진가를 알아챌 수 있다.

홀로 서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항상 위태했다. 그러나 하느님 안에서 쑥쑥 자라는 아이들은 언제나 나에게는 위로였다. 삶이 빠듯할수록 내 안에 부르짖음은 간절했고 은총은 늘 감사 가운데로 왔다. 두 아이의 유아세례 이후 첫 영성체와 견진성사까지 우리는 달랑 셋이었지만 하느님을 뒷배로 둔 든든한 시간을 보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성전에서 나는 씩씩한 행복을 누렸다. 


나에게 새 힘이 되어주는 우군 아닌 아군이 늘었다. 

사위의 영세에 대부 역할로 아들이 나섰다. 매형을 위해 먼저 고백성사로 준비하는 아들.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형제처럼 보이는 듬직한 두 아이가 한 사람은 영세자로 그리고 대부로 앞뒤로 앉은 모습에 왈칵 눈물이 솟았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십시오.' 대부가 대자에게 주님의 빛을 전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낡은 과거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빛을 따라 새 삶으로 가는 찰나에 우리가 함께 서서 노래한다. 노아의 새날이 언제나 맑음이길.


주말에는 복돌이의 유아세례일정이 잡혀있다. 교회의 가르침 대로 생후 한 달 전에 영세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더 없는 축복이다. 제 어미가 그랬듯 성전 뜰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기대하며 나는 또 설렌다.  주말이면 스테파노로 태어날 내 손주 복돌아. 예수님처럼 네 어미처럼 하느님 사랑 듬뿍 받는 귀한 삶이길 할미가 손 모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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