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대 Jun 15. 2022

삼국지가 다시 좋아졌다

무엇을 위해 사업을 하는지 숙고할 계기를 만들어 준 삼국지


삼국지를 정말 좋아해서 초등학교때만 20번, 그 뒤로도 30번은 더 읽은 것 같다. 그렇게 읽다가 어느 순간 삼국지가 싫어졌고, 그리고 다시 좋아졌다. 지금은? 좋다 싶다를 넘어 자꾸만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싫어졌던 이유는 중층으로 깔린 오래된 이데올로기들 때문이었다. 나와 다른 지역의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을 싸그리 오랑캐로 멸시하던 중화사상, 여자를 도구처럼 정치적 카드로 쓰고 그걸 충효의 상징으로 미화하던 남존여비, 부패한 국가권력과 지배층에 대한 반성적 저항 대신 맹목적인 충성만을 주입하는 충효사상,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생명을 천하 통일이라는 명분하에 순식간에 도구화하고 학대 학살하는 어설픈 마키아벨리즘 등등이겠다.


다시 좋아진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이야기구나 싶어서였다. 재능 있는 이들의 욕망, 그리고 출세, 불가항력, 좌절, 극복, 그리고 계승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배경이나 기술적인 상황, 정치체계, 지배 이데올로기, 지리적 위치 등 각종 설정을 바꾼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생각보다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의 뇌는 구석기시대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았기에,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욕망은 인간을 끌어당기고, 끌어당겨진 인간은 욕망의 끝까지 튕겨진다. 이윽고 허무해지며, 또 다른 욕망으로 던져지거나 아래로 미끄러진다. 나의 삶은 물론 주변의 삶, 뉴스 속 사람들의 삶에서 흔히들 보이는 일 아닌가. 욕망과 편견은 여전히 세상을 굴절시키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잔치는 끊임없이 열리고, 그 잔치의 주인공은 늘 바뀐다. 잔치의 뒷처리는 늘 고되고 참혹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 잊고 다시 잔치를 벌린다. 


내가 있는 스타트업 판, 비즈니스 판이야 말로, 잔치와 파장이 끊임 없이 동시다발로 열리는 곳이다. 회사마다 삼국지가 열리고, 회사의 대표들 속에 조조 유비 손권 원소 동탁 원술 유장 유표 도겸이 입/퇴장을 반복한다. 조조처럼 현명하고, 유비처럼 덕있고, 동탁처럼 포악하고, 도겸처럼 던지고싶고, 유장처럼 쉽게쉽게 가고싶고, 원소처럼 인정받고 싶어한다. 성취와 좌절은 종이 양면처럼 우리 신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큰 잔치 하나가 끝나간다. 그리고 잘 정진하며 버티면 또 다른 잔치가 열릴 것이다. 그래서 난 삼국지를 새삼 다시금 곱씹게 된다. 그 잘나고 멋지고 똑똑하고 강력하고 매력적이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뜻을 제대로 펴지도, 이루지 못한 채 삼국지는 끝이 난다.


다시금 생각해본다. 우리는 왜 사업을 하는가? 어떤 욕망을 타고 있는가? 그것의 종착지는 무엇인가? 왜 잔치를 벌였는가? 잔치가 끝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상승욕망 사이에서, 숙고해 볼 시간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표의 사칙연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