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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준 도슨트 Sep 21. 2023

소도둑 꼬마화가

[이중섭]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외침

 

이중섭, <황소 (1953년 무렵)>

 한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대표 작품 이중섭의 〈황소〉입니다. 작품 속 황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황소는 뚜벅뚜벅 앞을 걸어가다 멈춰서 뒤를 휙 하고 돌아본 자세처럼 보이는데요. 매서운 황소의 눈매가 참 인상적입니다. 간결한 몇 번의 붓터치로 표현한 황소인데도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한데요.


 여러분은 황소를 보며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저에게는 우렁차게 울부짓는 황소의 서글픔과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힘찬 황소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이 그림을 보면 ‘황소가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아.’라는 생각에 재빨리 그 페이지를 넘기곤 했는데요. 오늘날 미술관에서 다시 만난 〈황소〉는 아련하면서도 굳건한 힘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본 것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본 이중섭의 그림은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선사하는 것을 보니 역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중섭은 소 덕후라고 불릴 만큼 평생 아주 다양한 황소의 모습을 담았는데요. 오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이중섭은 소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당시 스승이었던 임용련은 학생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소재를 접해보고 그려보라는 가르침을 주었는데요. 당시 이중섭이 집중했던 소재는 바로 ‘소’였습니다. 소를 그리기 위해서 며칠 동안 들판에서 관찰하고 미친듯이 그림을 그렸는데요. 어떤 날에는 너무 오랫동안 소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이중섭을 보고는 마을사람들이 그를 소도둑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이중섭, <황소 (1941)>
이중섭, <황소 (1940)>

 이중섭은 소를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과학적이고 해부학적으로 뛰어나게 화폭에 담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죠. 틈만 나면 들에 나가 소를 자세히 관찰하고 기숙사로 돌아와서는 관찰한 소의 모든 것을 그렸습니다. 그의 초기작을 살펴보면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그의 방 안엔 소의 몸통부터 머리 그리고 꼬리까지 소의 구석구석을 담은 수많은 스케치 작업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미 준비된 황소 덕후였죠. 


 그런데 소도둑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빠져들었던 이중섭에게 황소는 단순히 ’소’만을 의미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평생 관찰하고 그의 시선을 받았던 황소, 이중섭의 이야기로 살펴보겠습니다. 이중섭에게 황소는 첫사랑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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