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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Sep 08. 2019

사라진 얼굴들을 위하여

<얼굴들>(2017)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얼굴들>은 마치 서사의 완결성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삶의 일부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러닝타임 안에 서사가 완결되는 영화와 달리, 관객이 경험하는 일상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의지와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 숱한 인물들이 우리 곁을 지나가는 동안 부수적인 이야기와 사건이 발생하지만, 생이 끝나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서사의 결말을 맺을 수 없다. <얼굴들>에서도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강력한 이야기의 요체는 없다. 기승전결을 따질 수 없고, 사건의 연대도 제각각이며, 인물 간 관계도 모호한 이 영화는 관객이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기대하는 서사적 의미를 해체한다.


대신 영화를 촘촘하게 채우는 것은 평범한 인물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다. 고등학교 행정실 직원인 기선과 같은 학교 축구부 학생인 진수, 회사를 퇴직하고 엄마의 식당을 새롭게 꾸려보려는 혜진, 그리고 이들 사이를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택배기사 현수까지 영화는 네 명의 인물을 축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단단한 얼개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굴들>은 개별 인물의 일상적 편린만을 나열한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의 주된 이야기가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서사가 아닌 무덤덤한 얼굴이다. 영화 <얼굴들> 속에서는 감정을 격정적으로 드러내는 이를 찾기 어렵다. 3년간 동거한 애인과의 살림을 정리하면서도 혜진의 얼굴에선 어떠한 감정의 흔적도 드러나지 않는다. 기선은 직업을 바꾸고 특집기사를 취재하는 도중에도 시종일관 그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유지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진수의 얼굴, 택배 일을 그만두는 현수의 얼굴에도 감정은 크게 표출되지 않는다.


기승전결을 알 수 없는 밋밋한 얼굴은 왠지 낯설지 않다. 영화는 일상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기억할 수 없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진 일상적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식당 종업원, 택배 기사, 지나가는 행인, 취객 등 우리는 일상에서 그들의 서사를 알지 못한 채로 마주한다. 이렇게 스쳐 지나간 얼굴들은 인식과 기억 속에서 하나의 얼굴로 뭉뚱그려 진다. <얼굴들>이 가리키는 얼굴은 어쩌면 영화를 바라보는 이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숱한 얼굴들 아닌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하리마치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영화의 태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영화음악의 부재다. 우리 삶에 배경음악이 존재하지 않듯, <얼굴들>은 많은 장면에서 영화음악을 배제한다. 이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거나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 정서를 일으키는 음악적 기능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대신 일상의 소음과 대화가 그 여백을 메운다. 마치 서사를 해체하고 얼굴에서 표정을 덜어내듯, <얼굴들>은 음악조차 영화다움을 거부하는 듯하다. 조금은 난해하기까지 한 <얼굴들>의 도전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얼굴들을 과장과 왜곡 없이 정직하게 담아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얼굴들>의 인물들은 제각각 자신의 환경 속에서 삶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것이 대단한 역경을 극복하는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의 동선에서 그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기선은 매년 애들 얼굴만 바뀌는 뻔한 미래를 맞이하고 싶지 않아 안정적인 학교를 떠난다. 길에서 에어로빅을 하는 아주머니 틈에 섞여 힘차게 몸을 움직이는 혜진은 쓰러져 있는 행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사라지는 얼굴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스며있다.


"어딜 가도 볼 게 많아가지고 심심하지가 않아." 어느 아파트 주민이 엘리베이터 안 TV 화면을 바라보며 택배기사 현수에게 건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볼 게 많고 심심할 틈 없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얼굴들은 어떤 얼굴일까? 많아진 볼 것들에 밀려난 얼굴들은 없을까? 볼 것으로 전시되는 얼굴들은 과연 진실된 얼굴일까? <얼굴들>은 ‘타인’이라는 영역에서 하나의 얼굴로 묶여 있던 이들에게 저마다의 얼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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