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답답함은 지난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나'가 아닌 '며느리'에 포커스를 두고 살아와서 일거다.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살았으니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고 안 물어봐도 괜찮은 사람으로 치부되어 온 거지..
처음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생겼을 땐 최고의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시부모님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었나 보다. 조건 없이 잘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했다. 나의 호의가 어느 순간 당연한 권리가 되어 있음에 나는 지쳤고, 지금에 와서 내 목소리를 내는 건 이상한 일일만큼 포기하는 삶은 당연한 게 된 채 살고 있었다.
그 지침은 결혼 10년 차에 터져버렸다..
시간 : 5년 전
장소 : 우리 집 (침대에 누워 마냥 눈물이 흐른다.)
무기력하다.. 애들 밥 줘야 하는데 귀찮다..
몸도 무겁고 몸살 기운도 있어서 처음엔 감기겠거니 하고 집에 있는 약 먹고 누웠다.
잠은 안 오고 눈물이 계속 흐른다..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들고 너무 슬프다..
왜 이렇게 내가 처량하게 느껴지지? 아이들이 밖에 있으니 소리 질러 울지도 못하겠어서 답답한데
무엇보다 이유를 모르겠는 게 제일 답답하다.
(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을 지도..)
번아웃이 온 걸까? 지칠 만도 하지.. 미련하긴.. 불도저처럼 앞만 보고 살았으니 고장이 날 수밖에..
잠시 후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다. 순간 더 조여오 듯 답답해지고 전화가 받기 싫어졌다. 어머니가 이 우울감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게 분명하다.
전화벨은 계속 울린다. 난 계~속 받지 않았다.
밖에서 아이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엄마 아파서 자고 있어요"
잠시 후 아이가 방으로 들어와 전화를 바꿔준다. 잔다고 하는데도 굳이 굳이 바꿔달라고 하신다. 역시 배려가 없으시다. 점점 더 답답하고 열이 올라온다.
"네.."
"넌 왜 전화를 안 받니?"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 먹고 자고 있었어요"
"넌 전화도 없고,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하지도 않니?"
그렇다 며칠 전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다고 아버님께 들어서 알고 있다. 우리 어머니는 전화 한 통 없는 자식들에게 화가 나신 거다. 아들이 둘이고 며느리가 둘인데 늘 그랬듯 전화는 나에게 하신다.
우린 5분 거리에 산다. 시부모님이 편찮으실 땐 죽을 포함 해 다 같이 먹을 저녁거리를 사서 갔었다.
그런 행동에 어머닌 고마움보다는 당연한 권리인 듯 누리셨고, 당연한 말투와 행동으로 일관하신다.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뭘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늘 넘어갔었다.
못해도 주 5일은 시댁에 간다. '시장에서 족발을 사 왔는데 애들이랑 넘어와' '치킨 시켰는데 다 같이 먹게 넘어와' 'TV연결이 뭘 눌렀는지 잘 안되네 넘어와' 시시콜콜한 이유가 대부분이다.
'아니요' 말하면 되는데 그 말 한마디가 안된다..
이렇게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갔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번엔 안 했다. 아프시다고 들었지만 전화 안 했다.
내키지도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나는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어머니와의 밀당이 시작된 거다.
어머니의 세상은 온통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TV를 보다가 저 갈치 맛있겠네! 하면 나는 갈치를 주문했고, 이번주는 날이 좋네! 하시면 장소를 정하고 예약도 했다.
난 어머니의 언어가 입력되면 그걸 실행에 옮겼다. 처음엔 나도 아~ 맛있는 갈치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물어보신다. "주문했니?".....
어머니 만의 언어였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래~ 어려운 거 아니니 들어드리자. 불만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모든 걸 해왔다. 토 달지 않고 해 왔던 내 행동에 내 마음이 차츰차츰 고장 나기 시작했다.
당연한 듯 받아들이시는 어머니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부모님께 잘하겠다는 그저 그 마음이 이용당하는 듯했다. 그 예쁜 마음으로 시작한 모든 행동들이 미련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던데.. 부모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하는 분명한 선이 존재하는데..
여전히 내 의견은 묻지 않으시고 미안하거나 고마워하는 마음은 지난 그 어떤 날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음을 인지하고 폭발을 한다.
10년 만에 첫 목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어머니~~~
언제까지 그러실 거예요 언제까지 어머니 기준에 맞추기만 바라실 거예요. 미안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해서든 일하면서 육아하면서 앞만 보고 살고 있는 제가 안쓰럽진 않으세요? 언제까지 어머니 마음만 알아달라고 하실 거예요"
(있는 힘껏 소리치며 울었다. 꾹꾹 누르며 참았던 그간의 응어리를 뿜어냈다.)
"......."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아니요' '싫어요'를 한 적이 없다. 멍청하리만큼 순종적으로 살아왔다. 순종적인 사람이 예쁨 받길 기대한 건 큰 착각이었다. 더더욱 순종적이길 바라셨던 거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큰소리를 내어 봤어야 시원함을 알지...
샤우팅 한껏 내뱉고 나니 잠시의 개운함은 있었지만 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또 시작이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지겹다 왜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그렇게 말씀이 없으시던 어머니는 잠시 후 우리 집에 오셨다.
잠시의 정적이 지나고 어머니가 말문을 여신다.
"내가 20살에 시집와서 안 해본 게 없었어. 아버지는 일하다가도 동네 사람들이 부르면 약주 드시러 나가버리고 뒷일은 내 몫이었지.. 얘네들 키우랴, 깐깐한 시어머니 모시랴 어린 나이에 나도 고생 많았다.. 그렇게 힘들게 살다가 애들 결혼시키고 나니까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단단히 맘먹었지.. 그렇게 나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니까 너도 며느리인걸 생각 못했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인데.. 그렇게 바라던 인정인데.. 이렇게 듣게 되니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통곡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던 말인가? 이 방법 말고 더 현명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
10년 만의 포효 후에도 드라마틱하게 바뀐 건 없었고, 사과하셨던 어머니도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으셨다.
시어머니와의 일화는 제목글 만으로도 뒷목 잡게 되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저장글에도 제목이 넘쳐난다.
어차피 눈앞에서 시원~하게 말 못 할 거면 브런치 스토리에 원 없이 쓰고 잊어보자! 털어버리자! 싶어서 신명 나게 글을 썼다.
그런데... 쓰다 보니 현타가 왔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워낙 솔직하신 분이고 그 부분이 나와 안 맞았던 거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오해가 되고 상처가 된다는 말을 그 누구도 어머니에게 해준 사람이 없다. 그러니 어머닌 알 수가 없으셨을 거다.
나 역시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했었더라면.. 이렇게 골이 깊어지진 않았을 텐데..
1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어머니는 어머니만의 언어로 말씀하시지만 그럴 때 난 어설프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아요"라고 조금씩 말한다.
그럼 어머니는 "그래? 아님 말고" 라며 쿨하게 넘기신다. 이걸 왜 그간 못했을까...
어른의 말을 거스르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내 지난날이 이 응어리를 만든 게 아닐까..
이렇게 조금씩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보려 한다.
어머니 잘 지내보아요 제발요...!!
밤고구마에서 물고구마로 조금씩 변하고 있어요^^
(읽어주시느라 답답하셨을 텐데.. 사이다가 되는 그날까지 외쳐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