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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 Apr 24. 2022

<당신 얼굴 앞에서>와 <강변호텔>

결코 멀지 않은 죽음의 얼굴 앞에서 <당신 얼굴 앞에서>와 <강변호텔>​

  ‘상옥’의 모습에서 <강변호텔>의 ‘영환’을 떠올렸던 건 어쩌면 필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상옥’은 처음 보는 영화감독에게 예정된 죽음에 대해 툭 뱉는다. ‘영환’은 죽기 하루 전 일면식도 없는 두 여성에게 시를 읊어 주며 술잔을 들이킨다. 그 안에서 무엇이 곪아 가고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죽음 앞에선 초연한 이들의 태도는 서로의 얼굴이 두 영화에서 동시에 스치게 만든다.


  <강변호텔>은 시인 ‘영환’이 머무는 호텔로 두 아들을 부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시에 한 남성에게 배신을 당한 ‘상희’를 위로하기 위해 같은 호텔로 ‘연주’가 찾아온다. 다섯 인물에게 정확히 어떤 사연이 가려져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당신 얼굴 앞에서>의 ‘상옥’에게도 무슨 지병이 있는지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불친절함은 관객이 캐릭터에게 깊게 개입하는 것을 막고 그저 어떤 형태로든 죽음을 앞둔 한 사람을 관조하도록 만든다. 나아가 관객은 자기 자신을 ‘영환’과 ‘상옥’에 투영해 미래 한 편에 놓인 생사(生死)를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얼굴 앞에 있는 것만 제대로 본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영환’이 이미 내디뎠고 ‘상옥’ 얼굴 바로 앞에 놓인 어떤 마지막에 대해 우리는 알 턱이 없다. 그저 삶과 죽음이 주는 초연함과 두려움의 경계에 대해 가늠해 볼 뿐이다. 정말 두렵지 않을까? 과연 마주한 미래를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영화는 끝나지 않고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굴 앞에 놓인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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