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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도시, 몬테 알반

70대에 홀로 나선 중남미 사진 여행기 12

by Segweon Yim

신들의 도시


몬테알반에서 몬테는 산이란 뜻이니 몬테알반은 알반산이란 말이다. 몬테알반의 산 위에는 커다란 도시 유적이 있다. 산 정상을 편평하게 깎아내어 넓은 광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십여 개의 신전을 포함해서 행정을 위한 건축물이나 주거용 건축물들을 지어 도시를 만든 것이다. 이를 몬테알반 유적이라 한다. 유적의 높은 곳에 올라서서 아래의 광장을 내려다보면 광장은 마치 산 위의 거대한 경기장 같다.


맨 땅으로 되어 있는 넓은 광장 한 복판에는 몇 개의 건축물이 있고 그 주변에 전개되는 광장은 마치 여러 종목의 필드 경기장을 모아 놓은 듯하다. 그리고 광장에는 스탠드까지 갖추고 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영화 벤허의 마차 경기장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이 스탠드는 관람석이 아니라 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지만.

사포텍 족이 이 산의 정상을 평탄하게 깎아낸 것이 기원전 500년 경이라고 하니 그들의 토목기술은 가히 신기에 가까왔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기술보다도 더 한 것은 2500년 전에 산 봉우리를 깎아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더 위대하다 해야 하지 않을까?


신전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신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이곳은 신들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만든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였다면 하나의 신전에 여러 신을 모셨을 법도 하다. 그런데 각각의 신을 위해 각각의 거대 신전을 만들었다는 것은 몬테알반이 사람이 살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신들을 위한 도시임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본 광장과 주변의 건물터들.
광장 주변에 있는 피라미드형 신전의 하나.
북쪽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평지가 있고 신전과 부속 건물들이 있다.


서울의 남산과 알반산

멀리 와하카 시내가 보인다. 몬테 알반에서 보는 와하카는 생각보다 엄청 큰 대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 신의 도시는 와하카 밸리의 중심부에 우뚝 솟은 산 정상에 있다. 몬테알반에 올라서서 사방을 돌아보면 사방 모두 급경사를 이룬다. 눈에 들어오는 아래쪽으로는 넓은 도시와 농사짓는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몬테알반은 해발 1940미터이고 산 밑의 평지에서 수직 고도로 400미터나 올라와야 하니 군사적으로도 천혜의 요새인 셈이다. 저 아래 넓은 평야의 한 복판에 우뚝 서 있으니 먼 옛날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왔을 것이다.

대체로 평지 한가운데 우뚝 선 산 치고 신성하지 않은 곳이 드물다.


몬테알반을 돌아보면서 나는 서울의 남산을 떠올렸다. 남산 위에는 이처럼 넓은 평지는 없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넓은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남산 또한 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내던 국사당이 있었다는 것도 이 산이 신성한 산으로 추앙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몬테 알반 동쪽 전원지대 위로 매 한 마리가 마을을 내려다 본다.
와하카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유적의 한 쪽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가 여유롭다.


구기장의 승리는 영광?


멕시코의 고대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기장 유적은 공놀이 하는 축구장이 아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 진행되는 경기에서 진 팀은 신에게 산 채로 바쳐지는 제물이 된다. 그들은 태양을 위해 그들의 심장을 바쳐야만 했다. 멕시코의 태양은 왜 인간의 심장을 요구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태양은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까지 모셔 왔는데 태양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심장을 내놓으라고 했다니. 태양도 지구에서는 곳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것이 많이도 달랐던 듯하다.


경기에서 이긴 팀이 태양에 몸을 바치는 희생물이 된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경기를 태만하게 운영하여 지면 될 일인데, 경기에 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태양에게 공양물로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필사적이었다고 한다.


지금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종교가 가지고 있는 내가 알 수 없는 측면에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영광스러운 일을 왜 제왕이나 귀족들이 하지 않고 피정복지의 포로들에게 시켰는지 알 수없는 일이다. 몬테알반에는 모두 다섯 개의 경기장이 있었다고 하니 십 수명의 신들에게 바칠 공양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기장이 있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정비 공사가 한창인 구기 경기장. 양쪽의 계단은 사람이 앉을 만큼 여유가 없다. 계단을 포함한 전체가 경기장으로 보인다.
경기장 복판에 있는 원형의 석판에 공을 닿게 하는 것으로 점수를 내는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벽에 새긴 역사


몬테알반에서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광장 중앙에 있는 건물 벽에 삽입되어 있는 기록물들이다. 기록물은 그림 문자를 새긴 석판으로 모두 40개가 넘는다고 한다.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사포텍 족이 정복한 지역의 지명들이 많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이 석판을 “정복 석판(conquest slab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정복지를 비석에 새기는 경우는 고구려의 광개토왕비 같은 경우와 비교할 수 있겠다. 정복지에 대한 기록은 당시의 통치자에게는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거나 대외적인 위세를 내세우는데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중앙 광장의 건물 외벽에 있는 문자가 새겨진 석판들

광장 북쪽의 건물 안에 있는 15번 기념비는 그림문자의 기념비로 완형을 가진 대표적 유물이다. AD.600-800년 사이에 세워졌다는 이 기념비에는 하나의 사건을 묘사한 그림과 두 개의 짧은 문장 그리고 달력과 관련된 단어와 지배 귀족들의 이름이 확인되고 있다.

광장 북쪽의 건물 안에 있는 15번 기념비.

또 하나 흥미로운 석판들은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형태를 새긴 것들이다. 이 석판들은 19세기까지 춤추는 인물들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에는 전쟁 포로나 점령지의 지도자들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물상들은 성기가 절단된 남성이 많은데 대부분 신에게 희생물로 바쳐진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기를 절단하여 신에게 바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성기가 가진 생산성의 상징을 빼앗은 후 신에게 바친 것인가? 그냥 상상해본 것이다.

성기가 잘려진 인물상

기념비의 종류 중에는 동양의 비석처럼 넙적한 판석을 마당에 높직이 세워 놓은 것도 있다. 18번의 번호가 붙은 높은 석비는 수 십 개의 조각으로 깨진 것을 한데 모아 복원한 것인데 상단부는 복원되지 못했다. 이것은 해시계라고 보고 있으며 하단부 측면에 달력으로 추정되는 도형이 새겨져 있다.


중남미 문화에 무지했던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것이 마야의 글자였다. 나는 잉카와 함께 마야도 당연히 문자가 없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만난 마야의 문자들은 우리가 문자에 대해 얼마나 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림 문자였으면서도 어떤 경우 음가를 가지고 있어서 소리로 읽을 수도 있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양의 비석처럼 판석을 수직으로 세운 기념비들. 오른쪽은 해시계로 추정하는 것이다.

몬테알반을 위협하는 것들


몬테알반은 점차 와하카 시의 확장으로 본래의 환경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턱밑까지 들어온 도시 외곽의 열악한 환경이 유적을 피폐하게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의 배기가스도 심각한 수준이다. 멀리 보이는 와하카 시가 스모그에 희미하게 보인다.


유적들은 끊임없이 보수 정비가 계속되고 있지만 유적의 대부분은 제한받지 않고 오르내릴 수 있다. 규모가 크고 어느 정도 원상이 잘 남아 있는 유적은 정비도 잘 되고 보존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러나 땅 속에 묻힌 채 일부의 유구들만 땅 위에 드러나 있어 관광객들의 구둣발길에 차이는 유적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백 년 유럽인들의 침략과 독립 이후의 험난한 근현대를 견디면서 지금까지 이만큼이라도 보존된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위대한 과거가 남긴 유적이 달러를 벌어들이는 상품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걱정을 자주 하게 된다. 기우였으면 좋겠다.


뿌연 스모그를 통하여 와하카 시내가 멀리 보인다.
유적의 복원 또는 정비 공사는 아마도 일년 내내 진행될 것이다.
귀족들의 거주지역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보인다.
여기서 보면 와하카는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도시다. 와하카 계곡이란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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