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기분이 귀찮은 날

오늘은 여기까지

by 쑤기노트


"아부지 왜 거기 앉아계셔?"


아부지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식탁용 의자에 앉아계셨다.

생각의자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수그리고 느닷없이 마스크를 쓰셨다. 침묵시위를 하시는 거였다.


치매라는 말이 행동의 많은 것을 대신 설명해 주는 것 같지만
이 반응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병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몸에 남아 있던 반응의 방식에 가깝다.


내가 기억하는 기분이 귀찮은 날의 아버지는
늦은 귀가로 술냄새를 풍기거나,
아무 말 없이 등산을 가시는 것으로 반응하셨다.

그런 날은 어무니도 말을 줄이셨고, 나와 동생 셋은 안방출입을 하지 않았던 기억도 난다.


오늘 아부지는 박스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박스를 잘게 잘라놓느라 쓸데없이 먼지를 만들어버렸던가보다. 여기에 뒤치다꺼리하게 만든다며 어무니가 한소리 하셨다.

"내가 이런 것까지 간섭받고 살아야 되나?"

라고 아부지는 혼잣말하듯 한마디 던지고는

의자에 앉아 말문을 닫으셨다고 한다.


"아버지! 그럴 수도 있지 뭐~그럴 수 있어~"


생각의자의 아부지를 나는 얼러보려 했다.
아버지 어깨에 손을 얹어 주무르려는 찰나
“귀찮다.”하시며 어깨를 툭 빼셨다.


나는. 멈칫했고 이 순간부터는 내 감정을 꺼내 들지 말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찰나를 내 마음이 다치는 순간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나는 더 다가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귀찮음'을 오래 잡고 계셨고,

나는 그 곁에서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개입하지 않고, 상황을 바꾸려 들지 말자.'


치매는 상황인식은 둔할지라도 기분이 오래 남는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잊어도,
그 일이 불편했는지, 편안했는지,
누가 나를 압박했는지, 보호했는지는
몸에 남는다.


감정환기를 시켜야 하지만, 문득 이 순간은 아부지의 습관적 반응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의 아부지는 귀찮음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셨네. 침묵유지... 이제는 아부지의 기분이 귀찮은 날에도 술 취해 휘청이는 모습도 꼬릿 한 등산양말과 듬직한 배낭도 볼 수 없지만.

아직 살아있네 우리 아부지 기세~!!!


오늘은 아부지를 그대로 바라보았던 나의 선택이 무심함이 아니라 지금 내가 지킬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거리일 거라 믿는다.


생각의자에 앉아계시는 모습도 그리운 날이 있을 거다.

내 마음속에 저장. 꾹~


나의 80대는 오렌지색 황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