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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녕 Feb 26. 2023

나의 열정은 모두를 힘들게 했다

나의 하루 | 4년이 지나도 고민은 같다

[2019년 6월 1일의 일기]


2003년 12월 스물셋 겨울부터 2019년 6월 지금까지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쉴 새 없이 일을 해왔다. 강박이었다. 부모에게 벗어나 밥벌이하며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내 몸을, 내 정신을 이렇게까지 나를 망가트리며 일을 해온 것일까. 


십여 년 전에 쉴 수 있는 기회가 물론 있었다. 물론 가벼운 갑상선암이었지만 나름 3기였다. 쉬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수술 후 2주 뒤에 출근을 하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항암을 받으면서도 일을 했고 마치 누가 시킨 것처럼 묵묵하게 맹목적으로 일을 해왔다. 직장생활 십여 년에 사업 5년 차.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누군가 한 명은 육아를 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고, 신랑이 직장을 그만두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나는 어느 순간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한 가장이 되었다.


하루도 쉴 수 없는 나날들, 날 스스로 다그쳤고 일으켜 세웠다. 매 순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다음날 영원히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강박이 낳은, 일로 완벽하게 버무려진 단조로운 삶은 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난 왜, 이런 삶을 선택했을까. 그냥 신랑 따라서 지방현장으로 가서 오손도손 살았으면 그만인 것인데 잘 다니던 신랑 회사까지 그만두게 하면서 왜 난 이렇게 이기적일까. 그 와중에 선배들은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했다. 지친다고. 너무 버거워서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도 들리지 않았다.


작은 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열정과 정성, 그리고 시간이 있어야만 했다. 수준이 되지 않는 초보들인 친구들을 데리고 가르치면서 일을 해야만 했고 나의 멘탈과 시간을 갈아 넣어야만 했다. 직접 PT를 다녀야 했기에 내 실력도 키워야 했고 대학원까지 병행하며 회사를 운영했다. 또 사람 다룰 줄도 알아야만 했고, 내가 아는 것들을 공유하고 알려주고 싶었고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큰 그릇이 되어야만 했다. 


대리급의 직원 M은 자신에게 알려주지 말라했다. 알려주고 일 많이 시킬 생각 하지 말라했다. 다음날 제출해 달라는 발주처의 의뢰를 거절했다. 왜 작은 회사가 큰 회사처럼 일하려고 하냐 되려 물으며, 자신의 직급에 맞는 일만 하고 싶다 했다.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은 많이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말을 했다. 다 퇴근한 밤, 혼자 앉아 도면을 그려 보내야만 했다. 다음날 제출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의뢰를 하는 발주처가 미울 시간도 없었다. 


잘하고 싶어 일로 유난을 떠는 나를 보며 미워했고 직원들을 동요시켰다. 나의 열정이 너의 열정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같이 회사를 키워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내 잘못이다. 이제 고작 많아봤자 4-5년 차 되는 친구들에게 이해를 바라고 나랑 동일시한 것이 내 잘못이다. 이젠 포기하고 싶다. 




4년 전 브런치에 끄적끄적 써두고는 저장만 눌러둔 이야기들이다. 4년이 지나도 같으니 어쩌란 말이냐.. 

물론 그 뒤에는 똑똑한 친구들도 입사를 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그 친구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내려놓고 가만 지켜보니 나는 사업을 할 주제가 아니었나 보다. 내가 만든 체계 말고, 체계가 있는 곳에서 정말 일적인 능력만을 보여주며 나의 성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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