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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하루|예상치 못한 전개

by 녕녕

서른 중반이 훌쩍 넘어 결혼을 했고 두 살 차이 나는 그 남자는 아기는 부담스럽다 했다. 둘 다 일에 미쳐서 살고 있었고 아기가 없었다면 근 시간 내 둘 중 하나는 분명 나름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인생이 뜻대로 되나


초음파로 확인했을 때 아기는 이미 2달쯤 자란 상태였다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에서 털래털래 나오는 그 남자와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분명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기쁨과 벅참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알려줬었는데 현실은 알 수 없는 암담함뿐이었다. 최근에 그 감정을 무기징역, 종신형이라는 단어로 적절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튼 나는 무기징역이다. 세 번째 달이 지나고 병원에 갔다. 아기를 지켜보러 2주에 한번. 매달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 귀찮을 뿐이었다. 안 가도 아무 일 없지 않을까? 요란 떨고 싶지 않았다. 인스타 속의 많은 임신한 여자들은 아기 초음파 사진을 올려두고 감동에 벅차오르는 멘트를 적는 듯했다. 예비 워킹맘인 나는 감동을 나눌 시간 따윈 없었고 뱃속의 아기에게 너무나 무심한 여자였다. 내 마음이 그래서 그랬는지 뿌옇게 보이는 초음파 속의 아기는 한참을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남들은 쉽게 본다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지난 뒤에 보았는데 선생님이 그랬다


어머, 입술이 두껍네요


입술이 두껍다는 콤플렉스가 있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나의 그런 싫은 부분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런 게 유전자? 젠장. 고봉민 김밥에서 그 남자와 김밥을 먹으며 아무 죄 없는 의사 선생님을 욕했다. 욕하지 않고는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목메임의 하루였다.


쩝.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몇 달이 흘렀다

다니던 병원은 부인과라 아기 얼굴을 보기엔 적합하지 않은 기계를 가지고 있었다. 뿌연 상태로 8개월까지 아기를 만났고 의심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갔다. 이쯤 되면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을 옮길 법도 한데 난 그때까지도 산부인과가 아닌 부인과를 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닐까

머리숱도 많은 건 아닐까

키라도 컸으면 좋겠다

나처럼 건강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갑상선 암은 유전이라는데 혹시 다른 암으로 물려주는 거 아닐까


태교를 해도 모자를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너무나 나답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쁜 생각만 끊임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인과에서 산부인과로 이제 그만, 제발 가라는 명이 떨어졌고 나는 산부인과에 가면 제일 먼저 입술이 두꺼운지 다리가 짧은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3d 초음파를 할 참이었다. 인사를 하고 나와서 선생님이 추천해준 가락동의 산부인과로 갔다. 원장님은 오늘은 전체적인 검사를 하고 다음 주에 3d 초음파를 하라고 했다. 성별도 안 알려준다. 딸인지 아들인지 안다고 대수롭지않은 말투로 말해보았는데 안 넘어간다. 누군가 대신 꿔준 태몽과 전 원장님이 지긋이 알려준 성별은 너무나 만족스러웠으나 20주가 지나면서 혹시나 바뀔 수도 있단다. 계속 떠보았으나 원장님은 결단코 안 알려줄 셈이었다. 다음 주를 기약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작은 동네 부인과의 외로운 임산부였던 나는 21세기에 8개월이 될 때까지 아기 얼굴도 모르는 뒤쳐지는 엄마가 된 것이었다. 이곳은 서울의 입시 학원 같은 곳이었다. 저 산골에서 상경한 학생처럼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심지어 나라에서 하는 기본 검사도 안 받은 것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심기일전하는 심정으로 다음 예약을 기다렸다. 병원 예약일을 기다리다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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